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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03-01)

   


마지막 때의 나타나는 현상들

디모데후서 3장 1-9절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세에 불의한 자들이 행하는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그들의 유혹으로부터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의 행위로부터 완전히 떠나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죄에 대해 어떠한 타협도 안 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속성 상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에서 돌아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에 죄를 이기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친분관계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어떤 것을 제안한다며 또 그런 환경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영혼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고 가르치기를 잘하는 종이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모습에 대해서 폭로합니다. 디모데는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들로부터 자신과 성도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다고 상기시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불의한 일들(1-5)

지금은 끔찍할 만큼 고통스러운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좀 더 편하게, 좀 더 성취하고 누리며 살겠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위장된 거짓 만족이요 남는 것은 고통뿐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은 분별력과 순결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1-5)

어지러운 말세에 성도답게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 고통은 진리를 거절하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시선을 디모데도 공유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진리 편에서 거짓 진리가 주는 고통을 기꺼이 받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두려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어떤 모습이 성도답지 않는 모습으로 피할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⑴ 종말에 대한 예언(1)

지금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종말의 시대의 특징을 ‘고통의 때’로 묘사합니다. 종말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유대적 전통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만약 지금이 종말의 시대라면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하는 ‘고통’은 성도들은 그 시대를 살지만 그 시대의 풍속을 따르지 않고 거스르기 때문에 겪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단에 매어서 스스로 자기 고통을 만들어내는 모든 인류가 겪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고통의 시대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 재림하시기 전까지 기간인 이 말세의 가장 큰 특징이 될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종말의 때가 곧 이를 것이다’라고 미래 시제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임박한 것이어서 이미 종말의 시대가 시작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의 고통은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 때문에 생기는 고통, 즉 진리의 실현 때문에 겪는 고통입니다. 바울은 2-4절에서 종말의 특징인 여러 불의한 일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이는 모두 에베소 교회가 당면한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런 불의한 행위로부터 돌아서라고 명하는데, 여기서 돌아서라는 명령은 현재 시제입니다. 종말이 현재적인 실재지만 미래 시제로 표현한 것은 종말의 특징인 불의한 일들이 앞으로 갈수록 더 심해질 것임 을 암시합니다. 디모데가 현재 경험하는 불의와 고난은 지금이 종말의 때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종말의 때가 완전히 도래한 것은 아니며 앞으로 더 큰 고통의 때가 올 것입니다.

⑵ 종말에 일어날 악한 일들(2-4)

바울은 왜 이 시대가 고통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종말의 특징인 불의한 일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모두 열여덟 개의 악을 열거합니다. 이런 목록은 디모데가 현재 경험하는 에베소 교회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① 자기를 사랑, 돈 사랑(2a)

종말의 특징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은 이기적인 자기 사랑에 집착하여 하나님과 이웃 대신 자신과 돈을 사랑합니다.

자신과 돈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랑과 교만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신을 드높이는 자랑과 교만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주 경고하신 대표적인 불의한 행위입니다.

②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것(2b)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것’도 이기적인 자기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자기애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③ 감사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은 것(2c)

‘감사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의한 태도입니다. 불의한 자들의 특징은 자신을 향해서는 자랑과 교만으로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비방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감사하지 않고 거룩하게 행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난다.

④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는 것(3)

계속해서 불의한 자들의 특징을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불의가 말의 비방을 넘어 악한 행위로 표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정함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사랑의 마음조차 상실한 악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⑤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는 것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적인 본성을 가진 타락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모함하며’라는 단어는 2:26의 마귀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마귀의 특징은 속이고 모함하는 것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특히 성적인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6).

⑥ 사나운 것과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사나운 것과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불의한 자들의 난폭하고 악한 본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결코 지도자의 자질이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온유함으로 거역하는 자들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디모데후서 2:25).

⑦ 배신하며 조급한 것

‘배신하며 조급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은 2절에서 말했던 자기 사랑과 교만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의 대상이 여기서는 하나님 대신 쾌락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거룩하고 경건한자가 될 수도 있고, 불의하고 악한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⑶ 종말의 특징인 위선적인 신앙(5)

바울은 악에 대해 열거한 후에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권고합니다. 이러한 악을 저지른 자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돌아서라’고 권고합니다. ‘돌아서라’는 ‘~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자신을 돌이키라’는 매우 강한 뜻을 지닌 것입니다. 즉 지금 즉시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2-4절에서 언급한 모든 악의 목록들을 행하는 자들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거짓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악의 목록들은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을 드러내는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경건의 모양으로 그러한 불의를 덮고 있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말과 행위는 아주 종교적이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속에는 복음의 진리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위선자들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돌아서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지금 디모데도 조심하지 않으면 그러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위선적인 신앙은 특히 목회자들이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불의입니다.

에베소 교회 내에서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방향이 잘못된 곳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와 돈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쾌락을 사랑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돈을 사랑했고, 하나님 없는 영혼의 공허함을 돈으로 채우려고 했습니다. 첫 인류가 하나님을 버린 것도 하나님 밖에서 자기 사랑을 추구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거짓 교사(6-9)

진리의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도 진리를 외면하면 거짓과 위선이 찾아옵니다. 십자가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참 능력을, 그럴듯한 분주한 활동으로 흉내만 내게 됩니다. 단호하게 인간의 욕심을 지적하고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않으면 더 자기 확신이 강한 위선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6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6-9)

모든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신과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쾌락을 더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척하는 위선의 시대입니다. 그런 자들이 다수입니다. 오히려 경건하게 하려고 하는 자들이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말세에 고통을 주는 자들이 어떻게 교회를 유린하고 미혹하는지를 보여줍니다.

⑴ 미혹하는 자들(6-7)

바울은 이제 직접적으로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의 불의한 행위 중 한 가지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성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자기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집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성도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방문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몰래 들어가는 도적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몰래 들어갑니다. 어리석은 여자는 단지 지능이 떨어지거나 많이 배우지 못한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형적인 분별력이 없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11-15에서 정욕적인 젊은 과부들에 대해서 말했는데, 어리석은 여자는 이런 여자들을 말합니다. 이런 여자들은 오랫동안 정욕으로 인해 음란의 죄를 지어온 여자들입니다. 그들은 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배워도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여자들입니다.

⑵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8)

바울은 이런 거짓 교사들을 얀네와 얌브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를 대적 했던 애굽의 술사들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보낸 자이지만, 얀네와 얌브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과 디모데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일 뿐 결코 복음의 사역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논리로 무장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속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부패해 있었습니다.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거짓 교사들의 이러한 정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며,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을 버린 자들입니다.

⑶ 그들은 패망할 자들(9)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런 거짓 교사들은 결국 오래지 않아 멸망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얀네와 얌브레의 경우처럼 거짓 교사들도 불의한 정체가 곧 드러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짓 교사들이 득세해서 많은 성도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을지 몰라도, 오래지 않아 버림을 받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갈수록 더 악해질 것입니다. 거짓 교사의 본색이 모든 사람들이 알만큼 명백하게 들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고 미혹하지 못할 것이며,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거짓 교사들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는 디모데에게는 희망적이고 격려가 되는 말입니다. 따라서 디모데는 거짓 교사들의 일시적인 성공을 보면서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면 결국 진리가 거짓을 이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거짓 가르침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교회와 진리는 넘어지지 않고 든든히 지금까지 서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기지 않고 지금도 위세를 떨치는 세력은 번영과 탐욕의 신 바알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들이 할 일은 그 허위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성도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단이 축복이라고 하는 미끼를 던지고, 또 그것을 위해서 봉사하는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시대가 가까우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바보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진리를 따라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빛이 더 빛을 발한 것입니다. 겉을 꾸미려 하지 말고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진짜로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세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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