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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04-01)


디모데에게 하는 바울의 명령

디모데후서 4장 1-8절


‘유언’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긴 부탁입니다. 당신은 ‘유언’을 남긴다면 무슨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바울에게는 오늘 본문이 사실상 유언입니다. 가장 남기고 싶은 것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남겼을 것입니다. 가장 미더운 사람에게 남겼을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앞부분 3:16-17에서 성경의 교육적인 기능과 능력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그것은 복음 선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합니다. 지금까지는 바울이 그 일을 감당해왔지만, 이제 디모데가 이어받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명령(1-5)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지혜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주는 유일한 능력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르게 하여 선을 행하기에 온전한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1-5)

복음 전도자는 말씀을 들은 청중들을 기쁘게 하기보다 심판하실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청중으로 모시고 받은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그 나라 백성에 어울리도록 전하라고 엄히 명령합니다.

⑴ 말씀을 전파하라(1-2)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사람을 바르게 하여 선을 행하기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디모데는 마땅히 그것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선포 사명과 명령을 엄중히 부여하고 있습니다. ‘엄중하게 명령한다’는 것은 맹세와 함께 명령한다는 뜻입니다.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가 공정하게 규칙을 지키면서 경기하겠다고 선서하듯이, 바울은 디모데가 맹세하게 하면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맹세를 할 때는 그걸 증명할 어떤 사람 앞에서 하든지 혹은 무언가를 걸고 합니다. 바울은 맹세의 신실함을 증거할 증인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재림, 하나님의 나라를 제시합니다.

이것은 디모데에게 주어진 복음 선포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명령한다는 것은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디모데에게 주어진 사명의 엄중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언급은 디모데가 선포하는 복음이 지금 이 세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며, 복음의 미래지향적인 특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입니다(디모데후서 4:18). 그러므로 디모데는 이 세상에서 복음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에 대해서 너무 슬퍼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2)라고 다섯 개의 명령법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모두 디모데에게 주어진 복음 선포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복음 선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힘쓰라.’는 명령은 항상 준비된 상태로 있으라는 뜻이며, 언제든지 복음을 선포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이 준비 태세는 때와 관련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복음을 선포하기 좋은 때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때는 아마도 3-4절과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경책하라는 명령은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여 교정하라는 뜻이 있는데,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행위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책망하라’는 명령은 좀 더 일반적인 불순종에 대한 책망입니다. 마지막으로 ‘권하라’는 명령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에서 성도들이 행해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3:16에서 말한 성경의 역할에 대한 재설명입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에 대한 바울의 명령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연관성이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여 가르치되,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은 경책하여 돌이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책망하여 올바른 길을 가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⑵ 말씀 전파에 힘써야 할 이유(3-4)

바울은 2절에서 명령한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떼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복음을 전하고, 경책하고, 책망하여, 권면해야 할 이유는 앞으로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붙들기 싫어하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미 말세의 특징으로 사람들이 더욱 탐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디모데후서 3:1-5). 탐욕적인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은 핍박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줄 거짓 교사들의 허탄한 이야기를 더욱 듣기 좋아하고, 그것을 따라갈 것입니다. 허탄한 이야기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에 부합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것은 가려운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처럼 탐욕적인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⑶ 신중하게 직무를 감당하라(5)

바울은 노파심에서 다시 디모데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성도들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디모데 자신이 허탄한 이야기에 미혹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신중하라’는 명령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라가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하고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고난을 받으라’는 말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것은 고난을 견디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부러 고난을 택해서 받을 필요는 없지만 고난이 있을 때는 견뎌야 됩니다. 고난을 견디라는 것은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것입니다. 신중하게 고난을 견디면서 복음 선포의 직무를 다하라는 명령은 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상대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아주 적절한 권면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도들이 잘 속았으며, 그들은 무정하고 모함하며 사나운 자들이었기에 디모데가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중함과 인내입니다.

 

바울의 유언적 고백(6-8)

사역의 마지막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느냐가 아니라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면 두려울 것이 없고,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이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심판이 있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유언 같이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6-8)

바울은 평생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후회 없이 싸웠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신앙의 경주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였습니다. 네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참된 재판장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습니다.

⑴ 바울이 죽음을 예감함(6)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한 모든 것은 사실 지금까지 바울이 해왔던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이제 자신의 사역을 디모데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진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나온 표현인데,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자신의 삶을 드러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⑵ 바울의 삶에 대한 회고(7)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전력투구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운동선수의 삶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전제로 부어진 삶의 비유가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운동선수의 비유는 5절에 있는 ‘네 직무를 완수하라는 말을 상기시킵니다. 선한 싸움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마라톤 경기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미 자신이 달려가야 할 모든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운동 경기는 법대로 해야 하는 것인데, 바울이 지켜야 했던 법은 믿음입니다.

그는 믿음을 지키면서 모든 경기를 마쳤기에 승리의 면류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믿음을 버린 자들입니다.

⑶ 의의 면류관을 기대함(8)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회상한 바울은 이제 자신 앞에 놓여있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기에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경기의 심판자는 주님,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디모데후서 4:1). 그는 의로운 재판장이므로 공정하고 의롭게 판단하십니다. 이 세상의 심판들은 뇌물에 매수되어 불의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만, 주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사실 바울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많은 재판을 받으면서 불의하고 억울한 판결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공정하게 판단하셔서 지금까지 바울이 당한 모든 억울함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에게 감옥은 옹골지고 알찬 신앙으로 창조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받을 소망을 향해 비상하는 도약대였습니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몸을 입고 누리는 참된 ‘자유’와 ‘해방’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는 자신의 유언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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