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01-02)
아름다운 복음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장 9-18절
‘죽음의 협곡’이란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한 연인이 산을 등반하다가 그만 여자 친구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다가 다행히 줄을 잡았습니다. 줄만 놓으면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습니다. 하지만 점점 손에 힘이 빠져 떨어지는 죽는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잡고 있는 줄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안전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그 안전함에 평가는 그 사람이 잡고 있는 줄이 얼마나 견고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줄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줄을 잡고 있습니다.
바울은 8절에서 디모데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제 왜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지를 설명합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복음 선포자로 부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분면하다면,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9-10)
어려운 현실만 보면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 안에 감추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게 되면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복음이신 예수님 때문에 부끄러움과 고난을 당한다면, 부끄러워 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9-10)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나 고난당한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숨기려 합니다. 특히 믿음이 깊지 않으면 신앙으로 인해 어려움이 닥치면 떠나버리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권고했는지 설명합니다.
⑴ 거룩하신 부르심(9)
바울은 먼저 자신이 감옥에 투옥된 사실을 말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디모데를 복음 사역자로 부르신 것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따라 부름을 받았다면 그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바울은 갇혀 있고 디모데는 거짓 교사들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은 로마의 네로(주후 54-68년) 황제가 기독교인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기독교를 범법단체로 낙인찍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로마 대 화제 사건을 기독교인의 소행이라고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도 인간적으로 볼 때 자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십자가의 복음과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면서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바울도 실패한 것 같아서 디모데도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면,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계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지금 당하는 고난의 상황은 실패가 아니라 그의 뜻에 따라 된 일이고 성취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려운 현실만 보고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보고 담대해지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투옥이나 디모데가 두려워하는 현실이 자신들이 무능해서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마땅히 일어날 일이었고 심지어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⑵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복음(10)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설명한 후 이제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합니다. 복음의 위대함을 깨닫는다면 그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복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복음은 무엇을 드러냈습니까? 사망을 멸하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을 드러냈습니다. 사망을 멸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음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뜻입니다. ‘사망을 폐하신’라는 표현은 사망을 완전한 정복한 결과로 영원한 생명이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장차 성도들도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0-24, 50-54).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만을 바라보고 부활하심을 보지 못하면, 복음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바라본다면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디모데는 이 복음의 실체를 정확히 깨닫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음(11-14)
처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부끄러워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도 단순하게 수준 낮은 복음이나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오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11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1-14)
바울은 두려워하는 디모데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자인 것과 사역자로서 자부심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자세를 소개합니다.
⑴ 복음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음(11)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광스러운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세우심을 받은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는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움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바울의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자신이 행할 사역을 ‘선포자’, ‘사도’, ‘교사’ 등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소개합니다(참고 디모데전서 2:7). 여기서 ‘선포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의미하며, ‘사도’는 복음 전파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위임받은 제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사’는 기독교 진리를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복음의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⑵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12)
바울은 복음 전파자로서 감옥에 갇힌 자 되었지만(8), 그러한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복음의 선포자로 부름 받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부끄럽게 하실 분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의탁한 것’은 아마 죽음을 앞두고 바울의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10절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의 생명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지켜주실 것임을 확신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바울은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조차 바울을 두렵게 할 수 없었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망의 권세를 멸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타나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⑶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것(13-14)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설명한 후, 이제 디모데도 그것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는 것은 바울이 선포한 복음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가리켜 ‘바른 말’이라고 표현한 것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가르침이 아무리 그럴듯하고 지혜롭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속이는 것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바른 진리의 말씀은 오직 바울이 선포한 복음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가르친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7절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사실은 교만하고 비방하고 거역하며 무정하며 모함하는 자들입니다(디모데후서 3:2-5).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4)고 권면하면서 복음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아름답고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지키는 것은 단지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다시 10절에서 말한 것처럼 성령은 우리게 주신 능력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시는 능력으로만 우리는 복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의 모범(15-18)
진정한 믿음이란 항상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악한 사단의 세력들은 끊임없이 믿음을 꺾기 위해 공격과 유혹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진정한 믿음을 변치 않고 굳게 지키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터 위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믿음은 결국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5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15-18)
근신(勤愼)하는 마음이라는 바른 삶을 살고자 절제하고 조심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굽은 마음을 곧게 하며 악한 마음을 의롭게 합니다.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가꾸어가며 다른 사람 또한 바른 마음을 가지도록 근신케 하는 마음입니다.
⑴ 바울을 떠난 사람들(15)
마지막으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례를 소개합니다. 디모데가 어떤 모범을 좇아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먼저 바울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그를 버리고 떠나버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면서, 대표적으로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⑵ 바울을 찾아온 사람들(16-18)
반면에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찾아와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 출신이면서 로마까지 와서 바울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바울을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서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오네시보로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디모데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분명해졌습니다.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또 자신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도리어 열심히 찾아 만났던 것처럼, 디모데도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그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바울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디모
데는 마음속에 있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은 떨쳐버리고 담대하게 바울이 전한 복음을 선포하고 지켜야 했으며, 바울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바울을 부끄러워한 것은 사실상 복음을 부끄러워한 것이고,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바울 자신에 대한 돌봄이나 관심을 촉구하는 말이 아니라, 디모데가 바울이 전한 복음과 그리스도를 어떤 상황에서도 따르고 신뢰하라는 격려인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는 소식입니다. ‘보기에 심히 좋다’하신 하나님의 잔잔한 탄성을 다시 듣게 하겠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정하는 착한 사람 같이 울어주고 믿어주고 어깨를 빌려주고 잘되기를 빌어주는 가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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