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09-01)
결과를 아는 여유
시편 9편 1-20절
참된 빛은 번쩍거리지 않는다며 ‘지금 너무 눈부시고 찬란한 빛을 경계하라’던 박노해 시인의 시구처럼, 한낱 사람인데 별인 척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별들의 진위를 가려 그 광도를 조절하실 것입니다. 가짜 변들은 꺼뜨리시고 숨은 별들을 띄우실 것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악인을 심판하시며 압제 당하는 자들의 요새가 되시며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원수를 고발하고, 구원을 요청하며, 찬양과 신뢰를 고백하고, 맹세를 표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다윗은 압제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무죄한 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악인들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찾아내 심판하심으로 정의가 성취되기를 희망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주님을 찬양(1-4)
하나님의 원수들은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에 의한 것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무고하게 공격을 받고 불의한 일을 당하는 것에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성도들의 송사에 대해 의롭게 판결해 주십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찬양합니다.
1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1-4)
본 시에는 감사와 찬양도 나오지만 간구도 나옵니다. 현재 다윗이 간구하는 맥락 속에서 감사와 찬양을 어떻게 봐야할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합니다. 다윗은 감사와 찬양하겠다고 선언하며 찬양을 시작합니다.
(1) 여호와의 기이한 일을 찬양(1-2)
두 절의 시행은 각각 히브리어 첫 자음 ‘알렙(א)’으로 시작됩니다. 각 시행의 ‘알렙’은 모두 1인칭대명사로서 ‘내가 찬양합니다.’, ‘내가 전합니다.’, ‘내가 기뻐합니다.’, ‘내가 찬송합니다.’로 시작하여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었습니다. 다윗은 ‘전심으로’, 곧 ‘내 온 마음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주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모든 일들을 자세히 말하겠다는(1) 결연한 의지와 각오를 표현했습니다.
이후 다윗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2). 지존하신 분, 곧 주님의 이름이라는 표명입니다(7:17; 47:2; 78:35). 그리고 곧바로 가장 높으신 여호와를 기뻐하고 찬양할 이유를 제시하듯 주님의 행하신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찬양합니다.
(2) 정의로운 판결을 하신 여호와를 찬양(3-4)
3절의 시행은 둘째 자음 ‘베트(ב)’로 시작하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주님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기이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말하는데, 3절에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원수들이 이방나라들이 침략했으나, 주님 앞에서 패배하고 멸망하게 되는 일입니다.
다윗은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 당신 앞에서 멸망할 것입니다.’(3)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이 보좌에 앉으셔서 나의 송사와 판결을 내리실 때, 정의로운 판결을 하시기 때문입니다.’(4) 이것은 다윗이 법적인 송사에서 재판장이신 주님의 개인을 믿는다는 표현입니다. 다윗이 원수의 파멸을 아직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의로운 판결을 내리실 미래의 구원을 기대하며 표명한 것입니다.
공의와 정직으로 열국을 판결하시는 여호와(5-8)
하나님께서는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은 철저하게 심판하심으로 완전히 살라져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후에 후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원수들은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뿌리째 뽑힌 나무나 풀들이 다시 살 수 없듯이 주께서 심판하신 성읍들은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5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5-8)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하신 일들과 미래하실 일들에게 대한 한 가지 기대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과 이방 나라들에게 과거에 하셨던 것처럼 미래에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과 이방 나라들의 죄악을 물으시고 그 악을 갚으시되 전쟁 등을 통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1) 악인의 멸망(5-6)
5절 시행은 히브리어 셋째 자음 ‘김멜(ג)’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주님이 열방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셔서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음을 선포합니다(5). 다윗은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통치권과 열국을 심판하실 대법관으로서의 주님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옛적 이스라엘을 위해 원수와 뭇 나라들을 멸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주님이 그 이름을 지우셨다는 것은, 악인들이 후세대에 의해 잊힌 존재로서 이 땅에 살았던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철저한 파멸을 뜻합니다.
다윗은 곧이어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했고, 주님이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다고 합니다(6). 다윗은 옛적 조상들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심판으 자기 백성을 괴롭힌 이방 민족들의 도시를 파괴한 일뿐 아니라 그들이 도무지 회복할 수 없게 만드신 일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이름’을 지우신 것처럼(5), ‘기억’에서 지워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옛적 이스라엘이 광야에 거주할 때 아말렉 족속에게 내린 저주였습니다(출애굽기 17:14). 그러나 이때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모세를 제외한 백성들은 똑같은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신명기 17:14). 언약 백성도 하나님을 떠나면 공평한 재판장의 판결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2) 공의롭고 정의로운 판결(7-8)
7절은, 심판을 위해 보좌를 준비하시고 영원히 앉으시는 여호와를 상상하는 묘사입니다(7). 여호와는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는 분이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십니다(8). 지금까지 다윗은 여호와를 ‘당신’으로 호명하며 관계적 거리를 좁혔지만, 이제 3인칭으로 ‘여호와’를 언급하면서 객관적인 거리를 설정하고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말합니다. 개인의 송사를 변호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4)는 온 세상을 재판하실 하나님으로 확장시킵니다. 무엇보다 심판을 위해 여호와가 보좌에 ‘영원히’ 앉으셨다는 것은, 사람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태초의 시간부터 미래의 알 수 없는 시점까지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9편을 기록한 시인도 그분이 공의와 정직으로 만민을 심판하고 판결하실 것을 믿습니다.
가난한 자를 기억하시는 시온의 주를 찬양(9-14)
고대 왕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들 중에 하나는 백성을 재판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세상 왕들은 제대로 된 심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공의로운 심판으로 선한 힘이 없는 자들을 끝까지 돌보아 주십니다. 다윗은 구원받는 날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저 악인들이 유린하는 시온의 성전에서 구원의 역사를 다 전하겠다고 선포합니다.
9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9-14)
하나님께서는 주를 찾는 사람을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기에,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주님만 의지합니다. 연약한 자들이 언제든지 문을 두드려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피난처를 제공해 주십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억울한 빛들을 기억하시고, 작은 신음도 놓치지 않습니다.
(1) 압제 당하는 자의 요새(9-10)
다윗은 압제당하는 자, 여호와를 찾는 자, 가난한 자를 위해 여호와가 요새가 되어 구원해주시길 기도하며 찬송합니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보좌에 앉으신 의로운 재판장의 비유로 말했다면, 이제 여호와가 ‘요새’,곧 ‘높은 곳’에 위치한 ‘피난처’ 되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9).
다윗은 높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재판장 하나님께서 압제당하는 자의 높은 요새가 되셔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도움을 청하려고 당신을 찾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10).
(2)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심(11-12)
다윗은 ‘시온’에 앉으신 이, 곧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분의 행하신 일들을 열방 중에서 선포하자고 청합니다(11). ‘시온에 계신 여호와’(11)는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12)입니다. 그는 백성들을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십니다(12). 시인은 하나님을 타인을 해치는 자들을 끝까지 색출하시고 보복하시는 피의 보복자로 묘사합니다. 이는 압제 당하는 자와 가난한 자를 잊지 않고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보복하시고,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3) 시온의 문에서 구원을 기뻐함(13-14)
이제 다윗은 간절하게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아룁니다(13-14).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십시오, 나의 고통을 보십시오.’ 이렇게 부르짖는 다윗은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이 가하는 고통을 봐주시기를 기도합니다(13).
다윗은 주를 향한 모든 찬양을 속속들이 전부 전할 수 있도록, ‘시온의 문’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14). 시온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인 만큼 시인은 ‘시온의 문’과 ‘사망의 문’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생명과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보좌를 강조합니다.
악인과 이방 나라의 심판을 구하는 기도(15-20)
악을 행한 자들은 그 악이 자신들에게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을 모든 이방 나라들이 알게 하십니다.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다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결과입니다. 악인의 심판과 함께 의인의 구원은 동전에 양면과 같습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자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15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17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15-20)
여호와께서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시면 다윗은 사망의 문에서 일어나지만(13), 하나님을 잊은 열방은 심판을 받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찮은 인생인지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1) 악인의 멸망(15-16)
악인들과 이방 나라들이 자기들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걸려 넘어져 멸망하기를 바랍니다(15-16; 참조. 5:11). ‘열방은 자기들이 판 웅덩이에 빠졌고 자기가 숨긴 그물에 발이 걸렸다’(15). 평행을 이루는 ‘웅덩이’와 ‘그물’은 둘 다 짐승을 잡기 위해 사냥꾼들이 만드는 함정입니다. 다윗은 열방이 자기들이 만든 함정에 스스로 빠진 것을 여호와의 심판 때문이라고 믿습니다(16).
(2) 이방 나라의 심판 요청(17-20)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은 열방의 최종적인 심판과 멸망을 간청합니다. 그들이 ‘스올’, 곧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청합니다(17). 스올은 어두운 땅이며 죽은 자들의 세계입니다. 반대로 다윗은 궁핍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잊히지 않고 영원히 실망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18).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는 경제적인 궁핍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빈곤은 사회적인 억압과 착취당하는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적극적으로 요청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십시오! 인생이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십시오’(19a), ‘인생’은 ‘사람’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대조되는 인간의 연약함,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힘자랑하는 ‘이방 나라들’(열방)이 ‘사람’일뿐임을 각성시킵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착취와 억압으로 고난당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열방이 두려워 떨기를 간구합니다(20).
오늘날에도 공의로 세상을 다스려주시길 탄원하는 기도가 만연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를 섬기는 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주는지, 주를 거역하는 자들을 어떻게 멸망시키는지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큰 일을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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