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시편(007-01)


어려운 세상을 견디는 하나님의 힘

시편 7편 1-17절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웨런 위어스비 목사는 ‘하나님께는 시련과 시험에 대한 계획이 있다. 혹시 고난에 처해 있다면 그저 견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보고 당신의 마음을 점검하라.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당신의 삶에 어떤 영역을 개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당신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시도록 의뢰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 중에 하나가 이유없이 고통을 받을 때입니다.
 
시편 7편도 다윗이 기록한 개인적인 애가, 곧 탄식시입니다. 이 시는 무죄한 사람이 원수들의 거짓 고소로부터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무죄를 항변하며 자신의 결백이 입증되고, 자기에게 누명 씌운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공의로운 재판장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1-5)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새앆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만약 자신이 잘못이 있다면,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고 뉘우쳐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 때문이라면, 하나님 안에서 풀어야 합니다. 본 시의 주인공인 다윗은 사울의 신하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1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셀라)(1-5)
다윗은 사올 왕의 핍박을 피하여 도망하면서 탄식하며 기도하는 시입니다. 그는 원수들에 의해 찢고 뜯으려고 위협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주께 피하면서, 구원하고 건져 주실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1)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1-2)
다윗은 먼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자기를 추적하는 모든 자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암살자들의 추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내가 주께 피하오니’(1a)라고, 사울의 심복 중 한 사람으로 ‘베냐민인 구시’라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를 도와주실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고백이요 간절한 호소입니다(삼상 24-26장).
둘째, 소절을 히브리어 어순 그대로 살려 읽으면 더 생생합니다.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1b) 피한다는 것은 구원과 구출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원하다’라는 말과 동의적인 의미로 사용된 ‘구출하다’라는 말은 붙잡거나 낚아채고 움켜쥐는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1절은 시인의 긴급한 마음과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과 개입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2) 자신의 무죄 항변과 천명(3-5)
다윗은 여호와 이름만 부르지 않고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 친밀한 언약의 이름 여호와뿐만 아니라 우주의 창조자이며 주권자이자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호명하여 다윗 자신과 밀착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계심을 인정합니다.
다윗이 신속한 구원을 요청했지만(2)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무죄 천명을 위해 최고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개입을 바랍니다. 이 때문에 시인은 일관되게 ‘만일…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행했다면’을 세 번 반복합니다(3,4,5). 그러니까 자신이 죄를 지었으면 원수가 자기 생명을 땅에 짓밟고 자기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해도 괜찮다는(5) 항변입니다.
그러면 시인이 이만큼 결의를 다지며 잘못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인은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3),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4), ‘땅에 짓밟히고 명예를 잃어도’(5) 묵묵히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무죄를 맹세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베냐민 지파인 사울 왕과 관련된 거짓 증거로 다윗을 옮아 매려 했던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 요청(6-13)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을 받고 직접 모의 훈련에 참여하는 이유는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훈련을 통해서 어려운 순간에도 습관처럼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평상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살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찬양의 시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6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6-13)
어려운 상황 속에 있던 다윗에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시며 악을 심판하시며 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이 가장 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실 재판장이십니다.
(1)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 요청(6-9)
다윗은 무죄 맹세를 하고서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정당한 판결을 요청합니다. 먼저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시길 직접 간청합니다.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6). 다윗이 무죄 맹세를 위해 ‘만일 ~했다면’을 반복한 것처럼(3-5), 세 개의 명령어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합니다.
다윗은 ‘당신의 진노로’, ‘대적들의 격분’에 맞서 일어나도록 청합니다. 여호와의 분노와 대적들의 격분을 경쟁시켜 여호와가 꺾어 멸하시기를 호소하는 표현입니다. 그러고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판결하신 듯이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6)라며 정리합니다. 이후 다윗은 민족들의 모임에서 재판장으로 일하시는 법정 장면을 상상하며 하나님께 중재와 재판을 청합니다. ‘높은 자리에 돌아오십시오’,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십시오’,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판결하십시오’(7-8), ‘악인을 끊어주십시오’, ‘의인을 세워주십시오’ 그러고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9)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셔서 악이 끝나기를 구하고, 의인이 세워져 정의가 수립되길 소망합니다. 시인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이고 법적인 문제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속사람’, 곧 가장 비밀스러운 내면(‘마음’과 ‘성질’)을 면밀하게 조사하시고 숨겨진 마음의 깊은 동기를 시험하시는 분으로 명시하여 하나님의 신속한 개입을 촉구합니다. 시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재판장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2)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10-13)
시인을 보호하는 방패는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선언합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다’(10). 방패는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도구입니다. 마음과 의지와 생각과 양심이 곧고 바른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시인의 방패입니다. 이것은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판결하시기를(8) 요청한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나의 의로우신 재판장’이라는 선언은 하나님은 매일 분개하는 분(11)이라는 선포와 연결됩니다. 시인에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악에 분개하시고 호통치고 꾸짖으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칼을 가시며, 활을 당기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12). 정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을 무장한 전사처럼 묘사한 것입니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칼을 갈고 계시는 하나님은 상상만으로도 무섭습니다. 전사처럼 묘사된 하나님은 죽음을 부르는 살상무기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무기는 불타는 불화살입니다(13). 고대 사회에서 불화살은 포위된 도시를 불태우는 무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불붙은 화살이 날아갈 준비를 마친 상황 묘사는 악인들이 심판받을 시간이 임박했음을 표현합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을 찬양(14-17)

사람이 아무리 의롭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만한 공정한 판결과 공의를 행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알고 계십니다. 한순간도 악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분노하십니다. 악인들을 심판하려고 항상 준비하십니다. 선인에게는 방패가 되시지만 악인에게는 칼이 되고 불화살이 되고 무기가 되십니다. 다윗은 이제 공의로운 심판하실 하나님에 대해 찬양합니다.
14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14-17)
불합리한 현실로 고통이 밀려올 때, 고통 그 자체에만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 넘어 있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때가 되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윗은 공평하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1) 심은 대로 거두는 악인(14-16)
악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까? 시인은 ‘보라, 악을 잉태한 자는 분쟁(재앙)을 임신하고 거짓을 출산했다.’(14)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잉태와 출산 은유로 악의 끊을 수 없는 파괴적인 생산성을 역설합니다. 또한 악을 잉태한 자는 남을 넘어뜨리기 위해 웅덩이를 판 사람과 연결시킵니다(15a). 악인은 또한 짐승을 잡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곧 자기가 만든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15b).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진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시인은 좀 더 강하게 악의 연결 고리의 순환적인 성격을 묘사합니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린다(16)는 말로 악의 본질을 밝힙니다. 남을 해치려는 악한 마음과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재앙이 ‘머리’로 돌아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정수리’에 내리게 되니 치명적입니다. 이는 악의 결말과 심판의 철저성을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악인 스스로 파멸의 주체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악인의 악을 갚으시는 방식이며, 하나님 심판의 엄중함을 제시합니다. 시인뿐만 아니라 옛 지혜자는 악인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을(잠언 26:27; 시편 9:16; 57:6; 141:10) 삶의 보편적 원리와 정의로 받아들였고, 이는 오랜 세월대중 속에서 회자된 진리입니다.
(2)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 찬양(17)
무죄를 항변하며 정의로운 재판장 하나님께 악인의 심판을 청구한 시인은 하나님께 찬미와 간절한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시인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17a). 시인은 앞서 ‘내 의와 내 성실함을 따라 심판해주십시오’(8)라고 말했었는데 이제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고 찬양합니다(17). 이 감사는 재판장이신 여호와의 '공평'에 대한 고백과 찬미입니다. 시인은 정의로운 판결을 앙망하며 높은 자리로 돌아오시기를 청했고(7), 절박한 상황에서 ‘의로우신 재판장’(11)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확신하며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선포합니다. ‘내가 가장 높으신 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17b). 여호와를 ‘가장 높으신 분’으로 호명하면서 악기로 연주하며 찬양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온갖 억울함을 해결하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통치와 정의를 신뢰하며 높이는 찬양이며 증언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분의 공정한 재판장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결백하면 자신은 아직 썩지 않았다고 자신을 변호할 뿐 아니라 주님도 썩지 않았다고 변호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썩은 나무를 도려낼 것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