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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04-01)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

요한계시록 4장 1-11절


 한 어머니가 딸을 전도해서 교회로 대리고 왔습니다. 딸은 교회에 이곳저곳에 있는 새신자실과 각 부서실 그리고 식당을 살펴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싸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등을 들었습니다. 딸은 황급하게 어머니 손을 이끌고 교회 밖으로 나오면서, ‘이런 교회는 다니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첫날 많은 것을 보았구나! 지금까지 난 한 가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보았단다. 딸아! 예배드리고 가자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들을 많이 봅니다. 이 딸처럼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하나님만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요한은 지상교회들을 돌아본 후, 이제 천상을 돌아봅니다. 천상 교회를 통해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보좌 주위에 흰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쓴 24장로들이 24보좌에 앉고, 주변에는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과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상의 경험을 통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 하나님을 만나 뵈러 가겠습니다.

 

하늘 보좌로의 초대(1)

우리는 빠르게 변화되며 화려한 다양한 문화들을 봅니다. 자연스럽게 세상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마음에 두고 땅에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중요한 것을 놓치고 땅에 하찬한 것들을 집중하게 됩니다. 바울은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기를 바라십니다(골로새서 3:2). 땅의 교회들을 살핀 요한에게 이제 하늘 보좌를 보여주십니다.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1)

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소개했지만, 지상에 속한 교회는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요한에게 완벽한 천상 교회를 보여주십니다. 4장 이후에서는 범우주적 계시가 나옵니다. 첫 번째로 보인 것은 열린 하늘문을 통해 드러나는 하늘 예배입니다.

(1) 하늘 문(1a)

밧모섬에 있던 요한은(1:9) ‘성령에 감동되어’(2) 천상의 교회를 살펴봅니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말은 1:10처럼 ‘성령 안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1장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4장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 보좌가 있는 곳을 봅니다. 열린 하늘문을 통해서 본 환상은 2개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는데, 예배 이미지와 정치 이미지다.

(2) 하늘의 음성(1b)

요한에게 나팔 소리 같이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로 올라오라고 말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은, 앞서 요한에게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입니다(1:10).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왜 하늘 보좌로 올라오라고 하시겠습니까? 6-16장까지의 일곱 심판 시리즈는 하늘 보좌로부터 시행되기에 중요합니다. 다니엘 7장이 배경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네 짐승들에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네 짐승은 네 제국(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입니다(다니엘 2장). 고난 받는 하나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시고 짐승을 심판하십니다. ‘인자와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등장합니다. ‘옛적부터 계신 이’가 ‘인자와 같은 이’에게 열방(나라와 백성과 언어)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십니다. 다니엘이 하늘 어전회의에 참여했듯이, 요한도 하늘 보좌의 배에 참여합니다.

땅에 있는 교회는 로마제국의 압박 속에 생존의 기로에서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무소불위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고, 복음을 증언하기는커녕 타협하며 동화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복음의 신실한 중인이 되기 위해서는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돌파구는 바로 하늘 보좌의 시각을 가지고 현실을 전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 7장에서와 같이 대적을 정복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궁극적으로 세우신다는 계획을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늘 보좌의 예배는 화려하고 장엄한 예배를 경험하는 곳이 아닙니다. 감정의 위안을 얻는 곳이거나 현실의 피난처가 아닙니다. 하늘 보좌의 시각으로 현실을 전망하는 통찰력을 얻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하늘 보좌의 예배에 참여합니까?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서입니다(요한계시록 3:8). 하늘 보좌는 성막의 지성소를 상징하고, 하늘 문은 지성소 가까이에 있는 성소의 분향단을 상징합니다.

 

하늘 보좌의 구성원(2-8a)

지상 교회들이 세상에서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존재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어리석어 보인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영광이 밝히 드러날 때가 올 것입니다.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2-8a)

교회와 성도를 위협하는 황제의 권좌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의 왕좌(16:10)가 철옹성 같아 보여도 하늘의 보좌에 앉아 다스리시는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보좌에 앉아 계신 이의 영광은 벽옥과 홍보석과 녹보석 같이 빛나고, 무지개가 보좌를 두르고 있습니다. 이제 요한이 보았던 천상 교회와 ‘보좌에 앉으신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1) 보좌 앉으신 이(2-3)

먼저 요한의 눈에 집중된 것은 ‘보좌에 앉으신 이’입니다. 천상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보좌에 앉으신 이’ 주변에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벽옥과 홍보석과 녹보석’은 유대 문학에서 신적 위엄과 영광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에 있는 열두 개의 보석도 마찬가지 역할을 합니다. ‘무지개’는 화려함과 노아의 언약을 상기하도록 만듭니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초월성을 보호하면서도, 영광과 권세와 구원하시는 은총을 신비적으로 표현합니다.

(2) 이십사 장로(4)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 보좌 주위에는 24개의 보좌가 있고, 24장로가 흰옷을 입고 금관을 머리에 쓰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24장로들이 입고 있는 흰옷은 거룩함과 순결함을, 이들이 쓰고 있는 금관은 왕권과 같은 권세를 나타냅니다.

보좌 주위에 이 24장로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 위에 쓰여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21:12) 및 성곽의 열두 기초석에 쓰여 있는 12사도의 이름과(21:14) 연관될 수 있습니다. 24장로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걸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가능성이 큰 해석은 24장로를 천사와 같은 천상의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하늘에는 거룩한 자들의 모임이 있으며(시편 89:7)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좌우편에는 하늘의 만군이 있습니다(열왕기상 22:19). 24장로는 이들과 맞먹는 천상의 존재들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장로와 천사는 비슷한 일을 합니다. 예를 들면, 24장로와(5:8) 천사(8:3-4) 모두 성도의 기도가 담긴 향을 관장합니다. 또한 계시를 알리는 친사의 역할을(1:1) 장로가 수행하기도 합니다(5:5;7:13-14). 24장로가 흰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천사들 역시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8:3; 요한복음 20:12).

일곱 교회 메시지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면류관과 흰 옷과 통치권을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24장로는 이기는 자로서 약속의 신실함을 증명합니다. 누구나 이기는 자는 이 약속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장로들의 보좌와 면류관은 정치적인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하늘 어전회의의 구성원입니다(이사야 24:23).

(3) 일곱 영(5)

요한은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5)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곱 영’들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및 권능을 상징하면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에는 우레, 번개, 구름, 큰 나팔 소리 등이 동반되었고,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출애굽기 19:16). 번개, 음성, 우레(=지진)'는 하나님의 신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묵시문학의 표현 방식입니다. 심판이 하늘 보좌에서 명령이 하달되어 땅에서 실현됨을 시사 합니다.

하늘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 스가랴 4장에서 하나님의 영은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입니다.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역대하 16:9). 7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이므로 충만한 상태로 존재하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요한계시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요한은 1장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1:10), 4장에서는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 비전을 봅니다(2).

(4) 네 생물(6-8a)

요한이 또 바라본 것 중에 하나는 보좌 주위에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었습니다. 이 ‘네 생물’은 에스겔 1장과 10장에 묘사된 내 생물, 즉 그룹들 및 이사야 6장에 묘사된 스랍들을 연상시킵니다. ‘네 생물’은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같고, 독수리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 생물은 피조물 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들을 나타냅니다. 네 생물이 쉬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합니다.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또한 ‘네 생물’의 여섯 날개와 가득한 눈은 이들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늘 깨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네 생물’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며 찬양합니다.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하늘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용된 다양한 표현들과 더불어, 이 표현은 하나님의 또 다른 초월적 속성을 나타냅니다. 하늘에 있는 투명한 유리 바다의 모습은 이 세상의 혼탁한 바다의 모습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하늘 보좌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고 하나님의 위엄이 온전히 나타나는 고요한 곳입니다.

 

하늘 보좌의 예배(8b-11)

모든 영광과 존귀는 오직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만 경배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성도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이미 천국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린도후서 4:15). 이제 요한은 하늘에 속한 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8…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8b-12)

천상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에 24장로들과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의 대리인으로서 ‘많은 눈으로’ 세상을 살피며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1) 네 생물의 찬양(8b-9)

하늘 보좌의 예배는 네 생물과 24장로가 주도하여 끊임없이 드립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경배로 영광을 돌려드림이 그 초점입니다. 먼저, 네 생물은 온 우주의 생명체를 대표하여 찬양을 드립니다. 창조의 목적에 따라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찬양은 영광을 돌려드림입니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능자이십니다(1:8). 역사에 대한 주권은 주 만군의 하나님께 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십니다. 출애굽기 3:14(‘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짐승인 로마 황제를 패러디합니다. 반면에 짐승은 ‘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고 장차 올 자’(17:8)입니다. 짐승은 현재에 어떤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예배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로마 황제를 바로와 같이 모조품으로 전락시키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삼중 거룩송입니다. 3은 하나님의 완전수입니다. ‘거룩하다’ 삼중송은 로마의 제국적 본성에 대한 저항적 찬송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안식의 거룩을 파괴하는 체제에 저항합니다. 24장로들은 진정한 예배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에게 보여야 하는 태도는 ‘엎드리고, 경배하고, 자신의 면류관을 드리는’ 자세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갑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집니다. 장로들은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고대 도시의 대표들이며 하늘 어전회의의 구성원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의 상징인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져버립니다. 포기하며 갖다 바칩니다. 둘째,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 속에는 새 장조에 대한 기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현재 피조세계는 죄악으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이 땅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는 ‘처음 것은 다 지나갔다’(21:4)를 거쳐서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21:5)로 발전되어 완성됩니다. 창조에서 새 창조로의 여정에는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간절합니다(이사야 43:18-19; 65:17). 첫째 창조는 퇴보하였지만 완전히 소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행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됩니다. 이 기대가 장로들의 찬양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2)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10-11)

오한계시록 4장의 예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구심력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중심에 계십니다. 성령과 네 생물이 예배자의 중심입니다. 여기에 24장로와 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는 많은 무리’와 모든 피조물(5:13)이 점차 동참합니다. 둘째는 예배의 형태가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밤낮 드리는 찬양 예배입니다. 찬양 속에는 계시록의 창조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창조와 역사와 생명의 절대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절대 유일성, 창조주의 진정한 초월성이 그것입니다. 새 창조에 대한 기대를 듬뿍 담고 있습니다. 셋째, 예배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예배는 감정도 미학도 논리도 아닙니다. 예배는 저항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군왕들과 우상들에게 돌리는 숭배 행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를 지배하거나 억압하고 얽매는 모든 것에 대한 저항과 전복 행위가 예배입니다. 장로들도 자신의 면류관을 보좌 앞으로 던지며, 명예와 권위를 포기하고 봉헌합니다. 교회의 예배는 국가 권력을 절대화하고 횡제를 신격화하는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누구를 경배할 것입니까? 진정한 예배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짐승(제국)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세계 권력 구조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항하고 전복하고 대안을 만들어갑니다.


세상의 고난과 핍박이 가득한 땅을 보면 비참할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 나라를 볼 때, 성도들은 희망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통치하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자신의 뜻을 세우시면 반드시 이루어가지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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