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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02-03)


일곱 교회(4) :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장 18-29절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는 죄를 범하고도 회개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를 베푸십니다. 지속적으로 성숙한 신앙을 보여 오던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을 용납하여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경고의 말씀을 통해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는 지혜를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두아디아 교회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의 교훈으로 위기에 처한 교회입니다. 두아디라는 소아시아의 경제 중심지였습니다. 바알의 경제사상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경제적 풍요와 성장을 추구하다가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두아디라에 나타난 그리스도(18)

주님께 칭찬 받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아 성숙해 가는 교회입니다. 우리의 섬김과 인격이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 자라 가야 합니다. 또한 종교적 열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신비 체험에 이끌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그 말씀을 제대로 지키는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18-29)

두아디라 교회는 일곱 교회들 중에 교차대구 형식의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당시 교회의 신앙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평균치입니다. 두아디라 지역은 무역에 최적화된 곳으로 제조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수많은 상인들이 상주해 있었으며, 바울이 두아디라에서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났듯이(사도행전 16:14) 이곳은 옷감의 재료인 양털 제조업도 성행했습니다.

(1) 수신자(18a)

요한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18)고 밝힙니다. 두아디라는 산업의 중심지로서 노동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어 곳이었습니다. 주석을 제련하여 많은 철모를 생산하였고, 각종 섬유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산업을 길드의 수호신인 아폴로(Apollo)가 돌봐준다고 믿었습니다.

또 주후 83년에 죽은 도미티 아누스 황제의 아들은 별이 되어 제우스의 아들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일곱 별로 둘러싸인 장갑 위에 앉아있는 형상의 데나리온이 두아디라에서 주조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모습(18b)

이러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는 ‘눈이 불꽃같고,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랑과 믿음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업, 즉 행위를 알아주십니다. 심판을 하시고 적들을 짓밟을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분이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한 곳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님은 자신만이 유일한 왕이요, 시편 2:7에 예언된 주권자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의 칭찬(19)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지상명령인 사랑 및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믿음의 본을 보인 교회였습니다. 게다가 ‘섬김과 인내의 행위’로도 칭찬을 받습니다. 이 행위는 단지 그리스도인의 섬김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사역도 포함합니다. 인내 혹은 참음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에게 줄곧 요구되는 중심 주제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랑과 믿음과 더불어 행위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 행위보다 나중 행위가 더 많아지는 신앙의 진전을 보였습니다. 이 점이 주님의 칭찬을 받을 교회였습니다. 행위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처음보다 더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며 그들의 행위가 약해진 것과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습니다. 신앙생활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신앙의 진보가 있다는 것은 근성, 내공이 있다는 뜻입니다.

(4) 그리스도의 책망(20-21)

두아디라 교회는 핍박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사탄은 핍박만 하지 않았지만,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여러 가지 유혹의 미끼를 던집니다. 강한 전투력을 가진 신앙인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는 사탄의 차선책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① 이단을 용납(20)

먼저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라고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미혹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깨달음이 적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와 행음으로 이끈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정신을 따랐던 것입니다(열왕기상 18:4-19; 열왕기상 9:22).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며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14-15), 두아디라 교회에도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미혹에 넘어가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세벨은 남편 아합과 함께 바알 숭배를 부추긴 인물입니다(열왕기상 16:31). 자칭 사도(2)와 자칭 유대인(9)같이, 이세벨은 자칭 선지자일 뿐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행음은 육체적 죄와 더불어 영적 죄를 가리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성장을 추구하다가 기독교 교리가 부족하여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퇴보가 아닌 진보, 쇠퇴가 아닌 성장은 좋습니다. 그러나 진보와 성장에 집착하다 보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교회는 주변 사회 환경과 동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영향을 받는 온도계가 아니라 영향을 주는 온도조절기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② 이세벨 용납(21)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라고 이세벨의 교훈을 용납했습니다. 이세벨은 발람, 니골라 당을 주관하는 목자이며 거짓 선지자입니다. 어떤 교훈을 했는지는 명백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이세벨은 악성 바이러스와 같았습니다. 한번 들어오면, 몸 전체를 망가트립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합의 시대로 돌아가면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과 결혼하여 북이스라엘에 바알 숭배가 가득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극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종교는 사회 경제를 통해 그 본성을 드러냅니다. 종교와 정치, 경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 증거는 나붓의 포도원 사건입니다. 이세벨은 바알 종교와 더불어 페니키아의 경제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견지하던 경제관은 희년 경제법입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사고팔 수 없는 유업입니다. 바알의 경제관은 토지는 사고팔 수 있는 상품입니다. 유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본소득의 본질입니다. 토지는 그 핵심입니다. 토지를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면, 삶의 터전을 잃은 사회적 약자는 영구적으로 취약 계층으로 내몰립니다. 불평 등이 극심화 됩니다. 북이스라엘에 도입된 바알 경제법은 오므리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 개혁을 담당한 예후 왕가에도 그대로 존속되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 그 영향력은 극대화되었습니다. 그때에 활동한 선지자들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입니다. 미가는 바알 경제관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경고한 때에,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의 집으로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른다’(미가 6:16)고 책망했습니다. 이것이 북왕조 멸망의 이유입니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남조 유다의 여호람과 혼인하여 6년간 통치하면서, 희년토지법을 붕괴시켰습니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이세벨의 문제는 우상숭배만이 아니라, 경제의 기본을 붕괴시키는 바이러스입니다.

두아디라는 소아시아에서 경제적 허브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무역 길드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산업 모두가 길드에 가입하여 경제 활동을 했습니다. 모든 길드는 수호신을 숭배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유대교와 같이 길드의 수호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헌물 봉헌에 참여할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도시의 축제는 부도덕한 행동들이 동반되었습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은 종교와 경제를 분리시킵니다. 우상숭배만 하지 않으면, 경제 문제는 타협해도 되고, 영과 육을 분리시킵니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은 육체적으로 무슨 짓을 해도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버가모와 두아디라는 비슷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버가모에서는 거짓 교사가 침투할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에서는 교두보를 확보하고 견고한 성을 만들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5) 회개를 촉구(22-23)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라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큰 환난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 환난의 때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모든 영적 간음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내에 경제적 동기로 우상승배를 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예레미야 17:9-10),

두아디라 교회는 왜 우상승배에 연루되었습니까? 경제적 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지속적으로 이세벨의 죄에 참여할지, 회개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세벨이 당한 결말을 똑같이 당할 것입니다.

 (6) 약속(24-28)

교회 공동체가 신앙적 성장을 이뤄가는 가운데, 교회를 무너뜨리는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은 사단과 깊은 교제에 참여한 자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 만족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세벨의 교훈을 거부한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현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교훈은 ‘사탄의 깊은 것’과 관련되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팽팽히 나뉩니다. 첫째로, 이세벨이 노골적으로 사탄의 깊은 것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짐작건대 이세벨은 사탄의 깊은 것을 아는 것이 신앙생활에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세벨은 아마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주장을 펼 폈을 것입니다. 둘째로 이 표현은 이세벨의 교훈에 대한 냉소적 비판일 가능성도 큽니다. 아마 거짓 선지자인 이세벨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안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사탄의 깊은 것에 불과했다는 말입니다(9). 마찬가지로 자칭 선지자인 이세벨이 겉으로는 하나님의 것을 안다고 가르쳤지만, 실상은 사탄의 깊은 것을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해석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지 않으려면,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① 만국을 다스림(26-27)

‘이기는 자’, 곧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자들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받은 것과 같은권세를 이기는 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메시아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것이고(12:5)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것입니다(19:15). 이기는 자 역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듯 한 것입니다. 이는 시편 2:9을 인용한 것입니다. ‘운명의 역전’은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따르느라 환난을 겪은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신원해주시는 날, 자신들을 박해한 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② 새벽별(28)

‘이기는 자’는 새벽별(morning star)을 받을 것입니다. 22:16에서 ‘광명한 새벽별’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을 책임지십니다. 지금까지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표현 뒤에 이기는 자에게 상급을 약속했지만,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부터는 그 순서가 바뀝니다.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이세벨의 교훈과 행위를 따르지 않은 신실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실과 위협을 감수하며 지조를 지킨 이들을 크게 칭찬하십니다. 돈과 음행은 여전히 강력한 유혹이며, 이단은 교회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세력입니다. 남은 자로서 신앙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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