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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01-02)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장 9-20절


병든 부모님께서 계시면 자녀들이 수고합니다. 자녀들은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간호합니다. 열심히 간호의 결과로 부모님의 건강이 좋아졌다면, 그 동안에 자녀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건강해진 것 하나만으로도 그 동안 수고에 대해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복음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모든 고난을 씻어줄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사역했던 친 제자입니다. 그는 지중해 있는 밧모섬에서 성령에 감동으로 계시를 받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인자’ 같은 이로 나타나신 그리스도 환상을 보고 그분이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듣습니다. 이 부분은 시각적인 환상으로 주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요한의 자기소개서(9-11)

‘사명자는 고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는 데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역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뜻을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동참시켜 사역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사명을 감당하며 시련을 견뎌내는 공동체로 성장해야 합니다.

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9-11)

사도 요한은 안락한 환경에서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유배를 당해 밧모 섬에 갇혀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밧모 섬에서 기도하던 중에 이 환상들을 보고 본 것입니다. 본 환경을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1) 요한과 그의 소명(9-10)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모든 교회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곳마다 거친 박해의 파도가 휩쓸고 있었습니다. 요한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이러한 소개는 요한이 영적 권위로 지시하거나 교육하려 들지 않고, 다만 수신자들과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당시 성도들과 함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밝힙니다. 편지를 읽는 수신자들과 함께 고난을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도’이지만 성도들을 향해 동일하게 ‘형제’라고 부릅니다. 다른 지역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처럼 요한 자신도 동일한 고난에 동참하며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이해한 호칭입니다.

유배당한 밧모 섬에서 바울은 계시록을 받았습니다. 계시를 받을 당시를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0)라고 회상합니다. ‘주의 날’은 ‘주님에게 속한 날’ 즉, 그분이 부활하셔서 그분의 날로 인정된 일요일을 가리키는 ‘주일’입니다. 그는 주일날에 예배드리면서 성령의 특별한 방식으로 계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성령의 영감아래 있던 것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성령을 통해 ‘나팔소리’와 같은 큰 음성으로 계시가 임했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크고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요한이 받은 환상은 하나님께서 직접 예언하신 말씀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1:19, 4:1,2; 17:3; 21:10).

(2)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라는 명령(11)

요한은 초자연적인 ‘나팔 소리’와 같은 속에서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당시 고난당한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물론 당시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당시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고난당한 모든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장차 심판의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거짓 선지자들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에게는 위로의 책이지 공포의 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만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요한처럼 고난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로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보시고 인도하심을 알게 될 때, 더욱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모습(12-16)

예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감찰하시고 최종적인 심판의 권능으로 온 우주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생명을 위협하며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그들마저 심판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충성하면 주님께서 먼저 싸워 주실 것입니다. 요한이 환상 속에서 본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2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12-16)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핍박을 견디지 못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사람까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위로 편지를 보내라는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 위로는 고난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무관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과 함께 계심을 밝힙니다.

(1) 일곱 금 촛대 환상(12)

요한은 뒤에서 들리는 ‘편지를 보내라’라는 소리에 몸을 돌이켰습니다(12). 틀림없이 그 큰 음성으로 말씀하신 분이 위대하고 위엄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요한은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와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요한이 처음 본 것은 일곱 촛대입니다. 일곱 촛대는 하나의 줄기에 일곱 자기 모양을 한 촛대인데, 스가랴 4장에서 온 것입니다(스가랴 4:1-14). 스가랴에서는 일곱 촛대가 하나님의 일곱 눈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일곱 영들은 촛대로 상징된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입에 참여하십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인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20).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촛대에 임재하시고, 일곱별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2) 인자와 같은 이의 환상(13-16)

요한이 보았던 환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분은 다양한 모습으로 비추어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영광과 능력(6)을 회화적으로 묘사합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초월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일곱 촛대뿐만 아니라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를 봅니다. 이 ‘인자 같은 이’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분은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촛대 사이를 다니신다는 것은 모종의 방식으로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함께 계심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은 모습은 대제사장이 입던 옷입니다(출애굽기 25:6; 28:4; 29:5; 39:29; 에스겔 9:2; 28:4; 39:29; 다니엘 11: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직접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금띠는 왕의 권세와 부요함을 상징합니다. 이런 모습은 자신이 구약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완성자이심을 알리십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으로서 온 인류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끄시는 중보자이심을 보여줍니다.

더 나가서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은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부리는 분이라는 것이며,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은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또한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비단 얼굴뿐만 아니라 그분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요한이 본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인 양털, 눈, 불꽃, 청동, 큰 물소리와 같이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 권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위엄 찬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서, 압도되어 그리스도의 발 앞에 요한은 쓰러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나라인 메시아 왕국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완벽하게 성취해 가십니다. 오늘도 대제사장으로서 성도들과 교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핍박당하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겠습니까! 외형적으로 핍박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영광의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교회 사이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최후 승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들이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간에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주인으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며 교회를 보호하고 인도하십니다.

 

요한의 반응과 예수님의 명령(17-20)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만물의 시작과 끝은 아래 있고, 부활의 권능으로 죽음의 권세까지 무력화하셨습니다. 삶과 죽음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난을 인내하는 성도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요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7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17-20)

성경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본 사람들마다 모두 그 위엄 앞에 엎드려졌습니다. 죄인들이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함부로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쓰러졌습니다. 요한 또한 그 영화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한 행동이 동일합니다. 

(1) 요한의 반응(17)

요한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지금까지 지상에서 사역하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분의 초월적인 모습 앞에 요한은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모습을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입니다(에스겔 1:28; 다니엘 8:17; 10:9; 마태복음 17:6; 사도행전 26:14). 자신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인자’로 계시된 ‘권세가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 환난에 동참하던 신실한 종이었지만, 순결하고 거룩한 예수님 앞에서 서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현현하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하신 첫 말씀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요한뿐만 아니라 고난당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의로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를 줍니다. ‘처음과 나중’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근원이며 역사의 마지막 되는 분이시기 때문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에 현현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와 소망을 북돋웁니다. 반면에 짐승(로마 제국)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현현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2) 그리스도의 현현(18)

첫째, 예수님께서는 ‘곧 살아 있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영존(永存)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천국뿐만 아니라 사망과 음부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8)라고 소개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로마 제국의 권세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 안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패는 사탄의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결과, 고난을 통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졌습니다.

(3) 그리스도의 미래(19)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8-19)고 그가 본 것을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이 본 사건들을 엄격하게 시간 구분을 가리켜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이 어구는 ‘예언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공식’입니다. 요한이 본 요한계시록에 나온 전체 환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기록하여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속히 일어날 일들에 관한 것이지만(1), 그것은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도 망라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4) 요한이 본 환상의 설명(20)

요한은 자기가 성령에 인도하심으로 본 것들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요한이 본 ‘일곱 금 촛대’(12)은 일곱 교회를 가리키고, ‘일곱 별’(16)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사자’란 단어는 (anggeloi/앙겔로이)인데 ‘사자’란 번역은 애매모호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공동체의 수호천사들을 의미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차선으로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하늘의 대응 천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고난에 처한 일곱 교회를 살피고 지키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교회의 주인입니다. 세상은 악한 자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바라보고 통치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에 당한 고난은 바로 믿는 증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장차 받게 될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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