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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01-0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8절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장차 속히 이루실 일들을 보여 주시며 그 내용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계시록을 읽을 때,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해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하면 왠지 어렵고 무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을 접하길 꺼려합니다. 어떤 시대에는 요한계시록을 금기 서적으로 취급하기도 했지만,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서 덮어두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을 주신 이유는 이 책을 기록한 당시에는 성도들이 로마에 의해 고난과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곧 다시 오실 것이며, 그들을 새하늘과 새땅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인내로 믿음을 끝까지 잘 지키라고 부탁하신 위로하고 격려하는 편지입니다.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에게 계시를 주신 이유(1-3)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아무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인간적으로 지식과 총명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새로운 영의 눈으로 영의 것을 보아야만 충분히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 책은 대표적인 계시의 책입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주셔야만 합니다. 먼저 그 계시를 주신 분이 누구인지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1-2)

본문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첫 절에서 요한계시록과 계시의 순서 및 계시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전달과정을 설명합니다. 사도 요한이 전하는 계시록은 말씀의 권위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말해 줍니다.

 (1) 표제(1a)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라고 계시록을 시작합니다. 본 편지는 요한의 계시가 아니라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 친히 받은 계시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계시라는 뜻입니다. ‘계시’를 아니라 ‘묵시’라고 해야 옳습니다. ‘묵시’는 계시이고 예언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의 늪에서 피어오르는 소망의 꽃이 묵시입니다. 그래서 초월적입니다. 하늘로부터 시공간을 뚫고 질곡의 현실을 돌파할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문자적인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상징과 은유의 세계로 초대하여, 현실을 넘어설 통찰력과 비판력과 저항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의 묵시는 구약 이스라엘의 선지자 전통에 서서 예언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2) 계시의 경로와 증언(1b-2) 

요한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일어날 일은 언제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초점은 어느 시점에 묵시가 성취될 것인지에 있지 않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가까움과 빠름이 아닌 즉각성을 의미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장차 속히 될 일들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을 다 기록하므로 증언합니다. 이 말씀의 원천은 하나님이시고, 말씀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전반적으로 장차 예수님의 재림과 승리 그리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감추어진 것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이성으로 모두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만 사람들이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영안이 열려지지 않는 타락한 이성으로 요한계시록을 접근한다면 무리수입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난을 받은 성도들에게 ‘장차 될 일’(1:1;19)을 들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로마제국의 핍박 때문에 기독교를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소망을 주기 위해 쓴 책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현재와 임박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보이시려고 계획하신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그 계획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를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사말-기원과 축원(3-6)

과거 잘못된 종말론자들의 주장 때문에 한국교회 안에는 종말에 대한 논의 및 거론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점차 너무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메시지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 그만큼 세상의 종말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져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의미에서 준비된 성도를 만들어 갑니다. 이제 요한은 이 편지에 대한 수신자들을 소개합니다.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3-6)

밧모섬 있던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당시 편지 형식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서두에서 자신이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기록함으로 이 편지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된 계시임을 밝힙니다. 이 편지를 통해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하나님과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과 일곱 영이신 성령님의 이름으로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1) 지복(至福) 선언(3)

요한계시록에는 7가지 복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그 첫 번째 복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3)라고 소개합니다. 본문은 두 종류의 사람을 전제합니다. ‘예배 중에 말씀을 읽는 사람’과 ‘그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목적입니다. 즉, 성도들에게 계시의 내용에 합당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그 이유는 ‘때가 가깝다’는 것으로 종말론적 긴박감을 더합니다. 신구약의 지복 선언(예:시편 1:1; 마태복음의 팔복, 누가의 사복사화)은 반전의 언어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번의 지복 선언이 있습니다(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일곱 지복선언은 예언 메시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실 충만한 시적인 축복을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나타난 7가지 복
1)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켜 행하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2) 계 14:13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3)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계 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5) 계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6)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으리라.
7) 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2) 수신자(4-5a)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는 먼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온 소아시아, 즉 지금 터키에 해당하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당시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장차 될 일이므로 이후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편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기원(5b)

요한은 서두에서 요한계시록의 근원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소개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기록함으로 이 편지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로 기록한 계시임을 밝히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짜 나라인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진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며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➀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십니다. 이 표현은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계시하신 의미를 풀어놓은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란 표현은 바로 ‘여호와’로 지칭하는 하나님의 고유명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며, 역사의 시작이며 끝이십니다.

‘오실 자’는 하나님께서는 미래적 실존이 아닌 구원과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도래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사탄이 가짜임을 폭로합니다. 사탄은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자’(17:8,11)입니다. 사탄의 세력으로 세워진 로마제국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러도, 여호와 하나님과 견줄 수 없는 짝퉁 나라임을 증명합니다.

➁ 성령 하나님

성령님을 ‘그(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으로, 또한 성령님을 4:5에서는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을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소개합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계십니다. 보좌 앞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동등한 권세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성령님을 ‘일곱 영’으로 표현했겠습니까? 이사야 11:2와 스가랴 4:2-7을 결합하여 인유(引誘)한 표현입니다. 이사야 11:2에서 성령은 지략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과 여호와를 아는 영으로, 또 스가랴에서는 이는 성전 안의 일곱 가지가 달린 금촛대(메노라)로 표현합니다. 이사야에 따르면 성령은 교회에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메시아의 종말론적 통치를 확립하기 위한 장비를 구비하도록 하십니다. 스가랴는 일곱 영을 4번 언급한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축은 힘으로도 아니고 능으로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가능합니다(스가랴 4:6).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는 짐승과 같은 세상 힘이 아닌 신적일 영으로 이뤄집니다. 스가랴 4:3에서 일곱 등물은 여호와의 일곱 눈으로 일곱 영이신 성령님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감찰하십니다(역대하 16:9). 성령님께서 선택한 자는 무엇이든지 강력하게 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세상의 짐승이 명백하게 불가항력적인 힘과 세계적인 힘을 과시하는 세상에서 성령은 여전히 신실한 종을 찾으시고, 능력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확립하십니다.

➂ 성자 하나님

요한은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성자 그리스도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5)라고 소개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성부 하나님과 그 의 능력과 권세를 이 세상에 실현하실 성령 하나님,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시고 완성하실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땅에 온전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고백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먼저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세 가지 표현으로 설명되는데, 1) 충성된 증인 2)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 3) 땅의 임금들의 머리이십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죽으심 그리고 부활로 증인이 되셨습니다. 다음으로 이 세상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십니다. 이사야 43:10-13과 시편 89:27,37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사야는 고난 받는 종 그리스도가 죽음에 이르는 핍박을 당하시만, 아버지에 대한 신실한 증인으로 참고 견딘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일어나 신실한 증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이사야 43:10-13). 사망 권세를 이기고 우주의 통치자로(이사야 55:4) 하나님 보좌 우편에 등극합니다(시편 110:1).

(4) 축원(6)

요한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6)라고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를 사랑하고, 둘째,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하셨으며, 셋째,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형식으로는 영광송이지만, 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시고 안부를 전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나라와 제사장’으로 이중직분을 수행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나라와 제사장’은 출애굽기 19:6과 베드로전서 2:9을 반합니다. 이스라엘은 왕 같은 제사장 또는 제사장 나라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모델로 하여 이중직을 수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실한 증인으로 죽기까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하며 증언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왕으로 통치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개시입니다. 교회도 이방 사회 가운데서 신실한 증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죽기까지 고난과 순교를 당하고 복음을 말과 삶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신실하게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소명이 그리스도에게서 완수되었습니다. 이제 교회가 옛 이스라엘의 직무를 전수받아서 수행하여야 합니다.

 

선언과 계시(7-8)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분으로서 이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신 분입니다. 모든 세상과 민족들은 하나님을 세상의 주관자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어야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보다 먼저 다가오셔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7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7-8)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타락한 세상을 보시면 한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상과 민족들과 다시 회복하시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속죄양으로 죽으심으로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1) 선언(7)

요한은 송영에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7)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대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사도행전 1:9-11). 실제로 그리스도를 처형했던 자들과 대적했던 자들이 비록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경건한 남은 자들은 그들이 찌른 자를 보게 될 것입니다(스가랴 12:10).

이 경건한 남은 자들은 민족을 대표할 것입니다. 역사적 이스라엘의 범위를 초월하여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7)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영접한 열방이 참 이스라엘입니다. 열방이 주께 돌아온다는 소망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이 실현되는 방법에 대한 계시는 전적으로 새롭습니다. 이때까지 봉함된 두루마리의 내용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개시되었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열방의 멸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열방의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7절은 교회가 여기에 동참하라는 선언입니다.

(2) 하나님의 자기 계시(8)

요한계시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8)라고 계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이신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역사의 원천이요 목표이십니다. 영원하신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과 함께 인사말을 끝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림은 초라한 베들레헴에 오셨지만, 재림은 장차 구름을 타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오시지만, 예수님께서는 본 모습 그대로 오신 것입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은 승리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볼 것이고,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던 성도들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될 것이며, 짐승을 따르던 자들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개로 인사말을 마무리합니까? 묵시를 받은 종은 계시한 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위임을 받은 자는 누구의 권위로 직무를 수행하는지를 확신해야 합니다. 로마제국에 핍박을 받고 있던 교회는 짓눌려서 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타협과 순응과 동화만이 살 길로 보이지만, 교회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고 세상에 파송 받았습니다. 교회는 로마제국과 대결할 신분과 사명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 있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분명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은 영광중에 재림하시는 모습에 대한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까? 등과 기름이 준비된 신부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 마지막 날이 오늘이라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임하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 분을 따라 살아가면 진정한 행복한 삶을 맛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심판주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 준비는 인간의 방법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신대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방법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대로 순종하여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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