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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03)


헛된 것들(2)-쾌락적인 측면

전도서 2장 1-11절


오늘날은 ‘fun시대’라고 합니다. 세상의 프로그램은 재미없으면 떠난 것 버립니다. 대표적인 예로 TV 프로그램은 내용은 상관하지 않고 흥미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봅니다. 재미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틀어버리기 때문에 무조건 억지웃음이라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은 교회 안에서도 적용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 프로그램이 싫증 나면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도들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세속적이지 않으면서도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될까?’라는 점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본문에는 솔로몬이 만족한 삶을 위해 두 번째로 ‘쾌락’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쾌락에 만연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말하는 쾌락은 육신적인 부분만 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만을 위한 육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인의 목표는 “먹고, 마시고, 즐기자!”입니다. 타인의 눈치 보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으면 다 좋다!’는 극도로 이기주의적인 쾌락 생활 속에 살아갑니다.

 

유희(개그)를 통한 만족(1-3)

인간이 인간됨에 필요한 것은 밥만 먹는 동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미’와 ‘보람’을 먹고 사는 의식적인 존재입니다. 자신의 삶에 의미와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의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이 누군가에 의미 있는 존재와 보람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람된 존재가 되었을 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1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2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3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1-3)

솔로몬은 서론에서 ‘이 세상 존재한 모든 것들은 헛된 것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 속에 세상에서 만족을 줄 만한 것들을 찾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로, 첫 번째는 ‘지성’으로 지식을 추구하며(1:12-18). 다음은 ‘쾌락’으로 감성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2:1-11).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입니다(2:12-28). 이러한 것들로 세상에 존재한 모든 것은 헛된 것이라고 서술해 나갑니다.

본문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내가’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경험을 소개함으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해보았는데’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반성하는 존재’, ‘사유(思惟)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의식(自意識)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존재입니다. 전도서에서는 자신을 의식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세상에 지혜나 지식적인 것들을 쌓으면 쌓을수록 번뇌와 근심을 더 하여 헛된 것이라면(1:18), 이제 그 헛된 인생을 극복하기 위해서 즐기면서 살아보아야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1)라고 즐거움(enjoy)을 추구한 인생도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소개함으로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헛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육체적인 즐거움을 만끽해봅니다. 그는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2)라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즐거움을 두 가지 영역에서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술’과 ‘유흥’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포도주에 맡겨서 즐거움을 얻고자 시도한 행동을 ‘나는 내 몸을 포도주로 이끌어보고자 내 마음에 애썼다’(3)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솔로몬이 종종 최고의 파티를 열었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 10:21). 그리고 파티에 최고의 음식을 준비했고(왕상 4:22-23). 최고의 포도주로 만찬에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파티에 재담가들을 세워서 흥을 돋구도록 했습니다(2:8). 이렇게 파티를 여는 동안에서 흥겹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파티가 끝나고 모든 사람이 썰물이 빠져 나간 것처럼 빈자리에는 쓸쓸하고 고독했습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파티들도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쾌락적인 파티를 통해서 만족을 얻으려는 것은 ‘미친 짓’과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솔로몬이 왕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주관하고 행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마음 중심에서는 공허가 빌려왔고 행복하질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속사정에 대해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4:13).

그리고 솔로몬은 “지혜를 갈망해 온 나는,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하고, 낙을 누려 보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렇게 사는 것이 짧은 한평생을 가장 보람 있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3, 새번역성경)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술을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쾌락’이라고 합니다. ‘쾌락’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세상의 쾌락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자극적인 쾌락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인성이 파괴되고, 욕망 속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그는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3) 인간 욕구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알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포도주로 즐거움을 얻는 것은 순간적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음을 멈추고, 다시 지혜로 인도받고자 노력했습니다.

 

사업을 통한 만족(4-8)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편안한 침대 위에 평안한 잠을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안한 침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까! 그리고 편안한 침대 위에 잠을 청해보지만, 그 침대를 얻기 위해 부딪쳐야했던 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4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7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8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10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4-10)

솔로몬은 술과 유희의 쾌락은 헛된 것들을 치유하지 못하고 악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지혜를 얻기 위해 시도한 것은 무엇입니까?

(1) 전도자의 수고(4-6)

솔로몬은 다음으로 추구한 것을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4-6)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었으며, 과수원을 만들어서 열매 수확을 하고, 삼림을 만들어 사업을 일구어 보았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후대 사람들은 이 전도서를 솔로몬이 기록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행적은 개인적으로 먼저 그는 자신을 위해 집을 짓고 집 주위에는 만족할만한 정원을 만들고(대하 8장), 또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만들었고(아가 8:11), 연못도 파고 물을 댈 수 있는 관계시설까지 만들고 그것에 관상용 고기도 길렀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부유했던 솔로몬은 자신의 집을 어떻게 꾸몄겠습니까? 자신의 만족을 위해 최대한 아름답고 호화롭게 꾸몄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까지 건축하였습니다(왕상 5장 이하). 이 성전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역사적으로 위대한 건물로 손꼽힐 정도였습니다.

(2) 수고의 결과로 얻은 부(7-8)

솔로몬은 수고한 결과로 이전의 오느 누구보다 더 많은 재산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재산은 금, 은, 소, 양 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7-8). 그는 당시에 전 세계에 최고의 부자이며, 최고의 지혜자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러한 사업을 감당하기 위하여 수많은 노비도 거느렸고 솔로몬은 처첩도 후궁이 700명이요 첩이 300명이나 두었었습니다(왕상 11:3). 솔로몬은 이처럼 인생에서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한 삶이 자신에게 만족을 줄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일들은 계속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큰 만족을 위한 세상적인 추구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항상 만족할 수 없고,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없었습니다.

(3) 선한 것을 추구한 결과(9-10)

솔로몬은 위에서 수고한 결과 선한 결과를 맺게 되었습니다. 모든 결과를 통해 세상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들에 대해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9)라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누렸던 것들이 자신의 선조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10)라는 표현은 전도자의 허랑방탕함과 향락의 추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반절에 “나의 모든 수고”와 연결하여 이해한다면, 4-6절에서 언급된 각종 사업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소유를 통해 부를 축적해 보았지만, 그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만족을 추구한 결과(11)

오늘날 사람들이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잠시 기다림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즉시 이루어지므로, 소유된 것에 대해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므로 자신의 소유에 대한 만족을 느낄 시간이 없습니다. 세상의 것에 대한 행복은 유효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솔로몬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모두 다 가졌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한 진정한 만족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11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11)

전도서는 뿌린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 원리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규범적 지혜의 원리가 작동하는 수많은 예가 있습니다. 솔로몬 스스로도 좋은 것들을 심어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것을 통해서 기쁨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해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다 무익한 것은 아닙니다. 잠깐 기쁨(쾌락)은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점점 쾌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인생의 뒤안길에서 그 일들을 돌아보게 되니깐,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11)고 하였습니다. 자기 일을 돌이켜 보니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과 자신이 이루려고 애썼던 모든 수고가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로 결론짓습니다. 전도자가 시험한 그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복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 왕으로서 행복을 만들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복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누리지 못한 가운데 이런 말을 했다고 부러워서 말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누려보았습니다. 누려본 결과, 이 세상의 일들은 ‘헛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경험을 통한 말은 정답입니다.


이 세상 것을 통해서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느껴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야 합니다. 일시적인 기쁨은 잠시 동안 만족(쾌락)을 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진정한 영원한 기쁨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것을 얻기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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