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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02-03)


헛된 것들(3)-물질적인 측면

전도서 2장 18-26절


어린 시절 땅따먹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땅을 큰 네모를 반듯하게 그린 후에 병뚜껑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노는 놀이입니다. 놀이할 때 보면, 욕심이 많은 사람은 큰소리쳐가면서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큰소리치고 싸워서 얻은 땅이라도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모두 다 제자리에 두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음 날은 처음부터 또다시 시작합니다. 소유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면, 싸움이 없이 양보하며 사이좋게 놀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말년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최고의 권세, 최상의 물질, 최고의 명예도 누렸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으로 얻어진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마음껏 누렸던 결과는 후회뿐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많이 쌓아 두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이 솔로몬이 갔던 헛된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진짜로 행복하겠습니까?

 

사후에 남은 업적들(18-23)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남겨 주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감정입니다. 부모들이 많은 것을 남겨 주려고 해도, 그것 또한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신이도 여호와이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욥 1:21-22). 솔로몬이라 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던 탁월한 지혜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18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18-23)

계속해서 전도자는 수고하여 이룬 업적이나 부의 가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앞에서 죽음 앞에서는 지혜도 그 가치를 상실해서 헛되다고 주장을 했었습니다. 이제 전도자는 평생 수고하여 이룬 업적이나 많은 재물, 또한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 없는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1) 타인에게 갈 수고의 열매(18-20)

전도자 솔로몬이 궁그적으로 불쾌하게 본 것은 삶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노동 또한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전도자가 평생 애쓰고 수고하는 결과들을 보고,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18)라고, “미워하였노니”란 ‘싫어졌다’, ‘허무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나는 나의 모든 수고를 미워한다’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평생 수고하여 어떤 것을 성취하여 놓았지만, 수고한 것들이 영원히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죽으면 그 수고의 결과를 자신이 다 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허무하다는 것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평생 수고를 통해 성취된 것이든, 죽은 후에는 그 수고의 결과물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고는 자신이 하는데, 그것을 즐기는 것은 다른 사람입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평생 고생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이제 먹고살만하니깐, 큰 병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모습에 정말 안쓰러워합니다. 인생은 대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가치 있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수고롭게 이룬 것이 지속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죽은 뒤에 그것을 자기 뜻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19). 자기 뜻에 따라 지속적으로 관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평생 수고하여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죽은 후, 수고의 결과가 다른 사람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대는 열심히 재산을 축적해 놓으면, 2대는 아버지의 수고를 알아서 조금은 전략해서 사용하지만, 3대째는 재산의 의미를 모르고 무조건 있는 줄 알고 함부로 사용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생각할 때 전도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절망은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죽음으로 모든 것이 가치 없고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지만, 이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생에 걸쳐 수고하여 뭔가를 이루고자 하지만 수고하여 얻은 그 결과들을 채 누리지도 못한 채 죽고 맙니다. 더욱이 그가 애써 이루어 놓은 것들을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은 자가 거저 누리게 될 때, 그의 수고는 정말 허무한 것이 됩니다.

(2) 수고를 누리지 못하고 죽음(21-23)

여기서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는 것은 수고하여 얻은 것을 전혀 수고하지 않은 자에게 넘겨 준다는 뜻입니다. 부를 쌓기 위해 일생 아끼고 노력하지만, 그는 부를 채 누리지도 못하고 죽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후손이 그것을 물려받게 됩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죽음 앞에서는 인간의 수고도 헛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믿는 자가 진정으로 후손에게 물려 줄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없이 수고하여 쌓은 부나 업적이 죽음 앞에서도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적 업적과 재물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그것을 잘 관리되고 지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믿는 자가 자손에게 물려 주어야 할 유산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신의 수고는 물론 수고로 이룬 어떤 것을 후손의 몫으로 남겨 줄지라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인생의 수고가 헛된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최선의 삶(24-26)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십니다.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물건, 동물이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인정한다면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대할 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욕구와 소원을 만족시키려면 많이 누리여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그러한 세상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2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24-26)

인간의 노동 열매가 유한하다는 견지에서 솔로몬은 인간이 그 열매를 즐겁고,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2:10) 자기 일에 만족하는 것(참조 3:13; 5:18; 8:15)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으로 그 삶을 끝내게 될 인간에게는 지혜도, 수고로 이룬 업적이나 부도 모두 헛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제 전도자는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 아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인가를 생각합니다.

(1) 물질의 근원이신 하나님(24-25)

이제까지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던 전도자는 본문에서 물질을 누리는 삶의 즐거움과 보람에 대해 말합니다. 즉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신이 하는 수고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고 주장했던 전도자가 삶 자체를 긍정하며 거기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에 대해 말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삶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삶의 근거를 하나님께 둘 때 헛된 것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모든 일이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며, 그러한 인생이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보람과 기쁨이 되는 이러한 축복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겠습니까? 전도자인 솔로몬은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25)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육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다 누려보았습니다. 하나님 밖에서 누려보았지만, 헛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26)

전도자는 물질을 성취하는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에 대한 만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후의 삶이 아니라 현세에 이루어지며, 영원한 것이 아닌 잠정적인 보상을 포함한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에 관해 분명하게 26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26a) 여기서 “기뻐하다”는 단어는 ‘좋은, 선한, 정직한’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 좋은 사람, 정직한 사람,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자들입니다(잠 3:5-6). 이런 자들에게 주시는 삶의 축복이 지혜와 지식과 희락입니다. 하나님께 삶의 근거를 둔 이런 자들에게는 삶이 결코 헛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죄인”에게는 모든 것이 헛되고 그들이 이룬 것은 남의 것이 됩니다(26). 이 같은 사실은 헛된 삶이야말로 하나님 심판의 결과임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된 인생은 그 삶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지 않으므로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없는 자들, 즉 죄인들은 삶 자체가 이미 심판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수고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26). 죄인의 관점에서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됩니다.

사람의 행복지수는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까? 삶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자신만 위해 사용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과 별만 다를 바 없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위해 쓰시길 바랍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살아계시는 동안 잘 쓰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허랑방탕하게 사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에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 건설하는 데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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