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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01-02)


인생에게 헛된 지혜

전도서 1장 12-18절


세상적인 지식을 많이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을 ‘엘리트’라고 합니다. 대부분 많이 배우면 사람노릇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많이 배웠기 때문에 엘리트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많이 배운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적극적으로 반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전도해 보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자신들의 가진 지식 때문에 교만해서 하나님을 영접치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본문은 전도자가 ‘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락(1:12-2:26)의 첫 부분입니다. 전도자는 ‘왕으로서’ 시도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소개합니다. 그가 탐구하려고 했던 많은 시도들 가운데 특별히 ‘인간의 행위’와 ‘지혜’에 관한 언급이 중심 내용으로 다루어집니다. 전도자는 그러한 탐구적 노력과 시도들에 한계가 있음을 자각합니다.

 

인간 행위의 한계(12-15)

선한 씨를 뿌려도 악한 열매를 거둘 때가 있고, 곡식을 심은 자리에서도 가라지나 엉겅퀴가 날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에 근원과 뿌리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야기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안에 있는 탐욕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은 많은 수고를 하도록 만들지만, 그 수고가 영혼의 평안과 만족과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수고에 수고를 더 할수록 인생은 괴로워집니다.

12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12-15)

솔로몬은 모든 학식과 지혜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능통한 사람으로 수많은 잠언과 글들 그리고 시들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 지혜로운 솔로몬이 사람들의 지혜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왕이 된 솔로몬(12)

삶의 헛됨을 절감한 전도자는 지혜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라고 소개합니다(12).

전도자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하기 위해 자신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개합니다(12).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당시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도시로서 이곳에 왕이었다는 사실은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삶의 가치를 궁구하는 일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는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최상의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논할 만한 자격과 조건이 충분했고, 이를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은 최선의 것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지혜와 총명을 선물로 받기까지 했으므로 인생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신뢰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인생을 깊이 궁구한 결과는 한마디로 “헛되다”입니다.

(2) 인간행위의 한계(13-15)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여 인류의 역사와 인간사를 살펴보면서 얻은 결론은 “13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말합니다(13-14). 전반적으로 관찰한 결과가 ‘헛된 것’이며, 그것은 ‘괴로운 것’이라는 것이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헛되고 괴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이유가 창세기 천지창조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창 1장).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사람들의 마음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괴롭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곡식과 열매를 맺었던 땅에서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과 저주로 뒤엉키게 되었고, 질병과 고통과 죽음이 찾아오면서 세상은 혼란을 통한 불안과 두려움과 저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수고하고 애를 써도 수고의 결과를 맺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창 3:15-18).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헛된 일입니다.

사람들이 지식을 얻기 위해 얼마나 뜁니까! 뛰는 것이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식을 위해 평생 동안 자신의 인생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바람은 잡을 수 없습니다.

지식의 결과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5절에서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고 합니다. 구부러진 철사는 사람들이 노력하면 반듯하게 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노력하면 구부러진 길을 반듯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쌓은 지식을 통해서 인간의 구부러진 마음은 바르게 잡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노력하고 수고하면 부족한 창고는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공허한 빈 마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만물이 잘못된 결합들을 바르게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까? 솔로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인간이 아무리 지혜를 다하고 수고를 해도 결코 도달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계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영혼의 만족과 영혼의 진정한 행복은 수고와 노력과 사람의 지혜로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인 결과입니다. 모든 만족과 평안도 없습니다. 오직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세속의 욕심과 정욕과 이기심에 노예가 되어 헛된 수고만 반복할 뿐입니다. 그 수고는 스스로를 착취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스스로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될 뿐입니다. 욕심의 노예 된 삶을 끊어버린 것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만족, 자신의 수고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고 사실을 인정하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깊게 고백할 때, 삶에는 진정한 평안이 찾아오고 삶의 만족과 여유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이 많아지고 놓아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냅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수정 보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조언을 드려서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까? 세상의 지식은 시간이 가면 인간에 가장 쾌적한 환경의 유토피아 세계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과학이 에덴동산을 만들 수 있습니까? 과학이 발달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파괴합니다.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바벨탑을 만들어 나갑니다. 하나님께 심판하실 때는 아무런 것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지혜의 한계(16-18)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문제에 시달리며 수고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이러한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세상적 지혜는 문제를 더욱 부각시킬 뿐 해답을 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지혜자들이 삶과 존재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애썼지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16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18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16-18)

살아가는 일의 헛됨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언급했던 전도자는 이런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하지만 지혜 역시 해답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난날들의 지식을 회상해 봅니다.

(1) 탐구에 대한 이중적인 진술(16)

솔로몬의 지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월등히 풍부한 지혜와 지식의 사람이었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자신이 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 선물로 지혜를 주셨습니다(왕상 3:4-12).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리고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의 중년과 노년을 향해 가면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러한 지혜도 헛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16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16)

많은 지혜를 얻으려는 것이 어리석고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잠언에서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3:15)라고 했고,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4:7)라고 잠언에서 지혜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본문 전도서에서는 반대로 ‘지혜를 얻는 것도 헛되도다’고 말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솔로몬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나라를 통치할 때,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은사와 은혜를 감사하지 아니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것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나온 냥 우줄거렸습니다.

하나님을 기초로 해서 사람의 지혜에 외교술을 더합니다. 인간의 사특한 방법을 더하여 외교적인 방법으로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두면서, 그는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지혜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에 겸손함이 더하지 않으면 그 지혜는 잔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겸손한 삶의 태도와 같이 가야 진정한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로 오만하고 교만하게 판단하고, 또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낮추어 보았던 솔로몬은 마침내 중년에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진짜 지혜는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래서 언제나 판단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함과 우매함을 고백할 때, 비로서 하나님께서 지혜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의 명성은 솔로몬의 열조보다 지혜가 뛰어난 왕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많은 주변국가의 왕들과 사람들이 솔로몬에게 찾아와 지혜를 찾아와서 문의할 정도였습니다(왕상 4:29-34). 사무엘하 9장에 보면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살피기 위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근동에 있는 더 지혜와 지식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의 결정체가 솔로몬 ‘잠언’이라는 금과 같은 귀한 교훈을 모아놓은 성경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상의 지식들이 사람들에 만족과 풍요와 자유를 주는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아니며 ‘헛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지식은 아무런 쓸모없기 때문에 허무하다고 허무주의(nihilism)에 빠지도록 한 것입니까? 그는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의 한계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로 접근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세상 지식의 결과(17-18)

세상의 지식의 한계성을 알아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지식적인 것을 쌓아 ‘엘리트’라고 자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진정한 유익을 줄 수 있습니까? 외적인 모습은 엘리트화 되어 갈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지식이 자신의 영혼을 맑게 해줄 정화제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무지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잡을 수 없습니다. 지식적으로 많은 것을 쌓은 것이 사람들에게 부러워 보일 것입니다.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안습니다.

17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17)

솔로몬이 말하는 하나님을 떠난 지식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밖에 있는 지식을 솔로몬은 아주 심한 표현으로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을 밝게 해주고 행복을 주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부담을 주고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워야 하면 사람 노릇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만 사람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야 창조된 인격이 형성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만 새롭게 만드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곳을 통해 놀라운 만족이 있습니다.

지혜로써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무런 소득이 없는 헛수고입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지식과 지혜를 구하지만 결국 이로써 얻는 것은 더 많은 문제로 인한 혼란뿐입니다. 즉 지혜와 지식을 쌓을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그것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뿐입니다.


예배나 성경공부가 성경의 지식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학습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진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수 밖에 영적 상태로 성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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