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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01-01)


인생에 있어 마지막 결산

전도서 1장 1-11절


연말연시면 자신의 지난 한 해를 돌아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년 초에 세웠던 목적들을 얼마나 성취했는지, 일 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시기입니다. 먼저 글을 읽지 전에 지난 인생은 후회 없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삶의 목적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그 목적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전도서는 처음부터 세상에 대한 무의미함을 말합니다. 전도서가 기록한 의도는 성도들이 세상에 대해 비관주의(pessimism)에 빠지도록 인도한 것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읽어야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부분만 읽고 나면 염세주의(厭世主義)에 빠지기 쉽지만, 마지막까지 읽고나면 하나님의 깊으신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전도서에서 말하는 무엇이 그렇게 헛된 인생일까요? 그것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전도자의 소개(1-2)

‘잠언’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전도서’는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전도서’는 ‘잠언’과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잠언’은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교훈이 중점으로 기록되어 있고, ‘전도서’는 ‘인생무상’과 ‘염세주의’가 그리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서 중 하나입니다. ‘전도서’에서는 지혜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입니다.

1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솔로몬은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소개부터가 범상치 않게 소개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소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겸손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소개는 기록자인 ‘솔로몬’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전도자’라고 소개합니다. ‘전도자’의 개념에 대해 12장에서 ‘9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전 12:9-10)고 소개합니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설교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기록자는 자신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겸손히 소개합니다. 더 나가 ‘이스라엘의 왕’보다는 ‘전도자’라고 소개합니다. 왕적 자격으로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가르치는 한 지혜자로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기 친 것입니다.

‘전도자’인 ‘솔로몬’은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고 위대한 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정도로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누려보았지만,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헛된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영광스러운 업적이나 부귀가 아니라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지 않는 것으로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솔로몬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면서 기록한 책입니다. ‘솔로몬’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듭니까? 그는 이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 고백이 인생의 헛됨을 노래합니다.

전도서 전체를 통해, 솔로몬은 ‘헛되다’는 말은 38번이나 기록합니다. 그럼 ‘헛되다’는 말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저 언덕 넘어 있는 무지개와 같다는 뜻입니다. 무지개는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것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은 솔로몬이 누렸던 재물, 명예, 권세들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솔로몬처럼 성공해보고 싶고, 당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부유를 누려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의 모든 것을 이것들에 걸고 전력투구합니다. 오직 이것들만을 얻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열중해서 사업하고 그리고 쉼 없이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성취했던 솔로몬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솔로몬은 한마디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문장에서 다섯 번이나 ‘헛되다’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헛되다(לבח헤벨)’는 많은 개념을 가진 단어입니다. ‘바람’ 또는 ‘입김’에서 비롯된 단어로 ‘불안정’, ‘무상함’, ‘허무함’, ‘긍정적인 기대와의 불일치’ 등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지개처럼 무엇인가 그럴 듯하게 보이만, 실제로 취해보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들을 통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보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얻어 보면 너무나도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이 후진국보다는 자살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어 행복할 것 같은 사회 부유 지도층들의 자살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풍부함이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성취했지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화려해 보였던 정상에 올라갔지만, 그곳에 도착해보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평생을 투자해서 달려왔지만 무지개와 같은 허상(虛像)뿐이었습니다. 주변을 돌이켜 보니깐, 저편 건너편에 또 더 화려해 보이는 무지개가 존재합니다. 또 그 무개기를 찾으려고 뛰어야 합니다. 그래서 뛰어 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행복한 삶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이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평생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무지개와 같은 것을 얻기 위해 뛰었지만, 막상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가치관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자기 괴멸을 참지 못합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것을 선택해서 자살하고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겠습니까?

 

유익함에 대한 질문(3)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금은처럼 비싼 만큼 변하지 않습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영원한 것은 없는가?’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누렸던 솔로몬이 영원한 것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3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3)

전도자 솔로몬은 ‘헛됨’에 대해서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많은 것들을 쌓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헛된 일을 행한 것입니다.

헛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 천지만물은 변함없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자연 법칙인 하루 24시간과 사계절은 변함없고 산천 만물은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유한(有限)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왔다가 또 조상들처럼 그 길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유한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무엇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모든 것들 즉, 시간 물질 그리고 젊음 등을 투자합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같이 명성을 얻는 진시황제나 알렉산더 대왕, 스티브 잡스 그리고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게 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죽고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 영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수많은 것을 투자합니다. 예를 들어서 보면, 육체의 아름다움을 위해 좋은 화장품, 좋은 보약, 몸매를 고정시키는 기능성 속옷,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한 성형수술 등이 있습니다.

더 나가서 늙지 않는 불로초(不老草)를 찾습니다. 옛날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 서불에게 명하여 500명의 선남선녀를 대동하여 불로초를 찾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모양만 다르지 불로초를 찾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제도 50세도 못되어서 죽은 아이러니컬한 일을 만났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동일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다 누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노력하지만 대부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것들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쉼 없이 수고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것들을 얻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피해의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금까지 인간으로서는 누릴 것을 모두 누려본 사람입니다. 모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려보았지만 만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죽음 앞에 서있는 자신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까지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외모지상주의(Lookism)가 자리 잡았습니다. 직장을 취직하는데도 실력보다는 미모를 더 중요시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외형을 깎고 다듬고 칠합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미가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Miss Korea’, ‘Miss World’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탱탱하던 피부가 노후화가 됩니다. 미안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지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수명을 다하게 되면 늙어서 죽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은 모두 한시적인 존재입니다. 영원히 살 사람은 단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靈魂)입니다.

당신이라면 같은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들 중에 투자한다면 무엇에 투자하겠습니까? 대부분은 영원한 것에 투자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 것입니까? 육신입니까? 영혼입니까? 무엇에 대해 당신의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 어느 정도 투자하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4-11)

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각 사람들에 따라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처럼 귀중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쓰레기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소유의 많고 적음이 행복을 만들어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정말 귀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4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4-11)

인생의 모든 수고, 즉 세상만사가 헛되다는 사실을 선언한 전도자는 실제적인 현상들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반복되는 인생사와 순환하는 자연 현상들을 통해 모든 것의 덧없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물론 자연 현상도 같은 변화가 반복되는 순환을 할 뿐 근본적으로 변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생의 덧없음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합니다.

(1) 오고가는 세대(4)

사람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보다도 더 영속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없습니다. 이는 수고로 이루어진 인생이 헛될 수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어떤 것을 세상만큼 확실하다고 말할 때, 이것은 지구(땅)의 영속성에 대한 솔로몬의 확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4)

사람의 유한함을 비해 땅은 영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역하던 땅과 길들은 변함없이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왔다 갔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사람의 연수가 길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시 90:10). 그 후에는 죽어 땅에 묻힘으로써 그 존재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땅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라는 말은 태어나고 죽는 일이 계속됨으로써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지만, 한 인간의 삶은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명시합니다. 사람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태어나고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들이 무한한 만물을 향해 탐욕을 불립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수중에 넣을 것인지, 더 많은 것을 누가 획득할 수 있는지, 수많은 보석, 많은 땅, 높은 직위, 많은 학식 등을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 때문에 만물은 피곤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이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큰 재앙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 것들 중에 무엇을 욕심내고 있습니까? 바른 물질적인 가치관이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유한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성(城)을 획득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헛된 일이 되어 집니다(잠 16:32).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탐욕으로 세상의 것을 취하려 하면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점점 세상에 대한 갈증을 느낍니다. 불만족스러운 사람이 행복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을 통치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생활 속에 부족함을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⑵ 반복되는 자연 현상의 덧없음(5-7)

전도자는 땅과 비교해서 인생의 유한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현상에 눈을 돌립니다. “5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5-7)

시간이 흘러도 항상 그대로 있는 땅과는 달리, 해와 바람과 물은 끊임없이 4계절을 변화합니다. ‘해’는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집니다. ‘바람’도 돌고 돌고 돌아서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라는 계절로 돌아옵니다. ‘강물’도 흐르고 흘러서 바다로 흐르고, 바다에서 하늘로 증발해서 비로 다시 내려옵니다. 이렇게 자연 현상의 움직임으로 어제와 오늘이 이어지고 세상은 변화 속에서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엄청난 변화가 있겠지만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이러한 자연 현상의 변화가 반복되는 ‘순환’일 뿐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쉬지 않고 변화를 일으키는 자연 현상도 사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그런 움직임이 반복될 뿐 근본적으로 바꿔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해는 뜨고 짐으로써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고 끝나지만 실상 오늘은 어제와 같은 하루의 반복일 뿐입니다. 바람은 임의로 이리저리 불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자연 현상의 변화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전도자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덧없음과 단조로움, 즉 아무런 목표도 성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순환의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순환 과정을 반복할 뿐입니다. 이러한 단조로운 반복 속에는 말할 수 없는 피곤함만 있을 뿐 안식은 없습니다.

(3) 만물의 피곤함(8-10)

아무리 좋은 컴퓨터를 구입했더라도 6개월 후에 새로운 제품이 나와서 후회스럽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것들 중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굉장히 새로운 것 같지만, 겉모습만 바꾸어질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새로운 유행과 새로운 스타일을 찾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새로운 가구, 새 전자제품, 새 주방용품, 새로운 자동차, 첨단 컴퓨터 등등... 그러나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합니다. 진짜 새로운 것은 무엇입니까?

자연 현상조차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가 반복되는 것일 뿐 새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던 전도자는 이러한 만물의 덧없음을 가리켜 “만물의 피곤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에게 만족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를 가리켜 전도자는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관계된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감각이나 욕구는 늘 새로운 자극이나 만족을 원하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 즉 그 존재의 유한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은 물론 그 지식이나 기억, 감정 등 인간의 모든 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것에 대해 호감과 욕구를 나타냅니다. 이미 예전에 있었던 일이나 생각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또 다시 어떤 일을 하거나 생각하면 새롭게 받아들이며 환호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것도 낡은 것이 되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실제로 인간들이 이룬 발명이나 창의적인 결과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발견’한 것일 뿐 ‘존재하지 않던 어떤 것을 있게 한 것’은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 세계에서 인간이 발견해내거나 조합한 것으로서 본질에서 변형된 상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8절 참조)

하나님만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헛된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십니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안고 살아갑니다(롬 6:4).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시 40:3). 새로운 길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습니다(히 10:20).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것입니다(계21:1).

지금까지 솔로몬이 이렇게 말한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의 것은 아무런 쓸모없으니깐, 이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으로 가라는 말입니까? 절대로 그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에 목적으로 두고 세상의 것에 낙을 두는 사람들은 ‘헛된 것’을 쫓아가는 거란 것입니다. 무지개를 좇는 사람들은 아름다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⑷ 기억되지 못할 세대(11)

기억은 불멸을 가능한 하나의 형식입니다. 따라서 ‘이전 것들에 대한 기억함’과 ‘그것을 실천해야 할 세대들은 없습니다. 우주의 영원성에 대비되는 인간의 무상성을 극명하게 다시금 자각하게 합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 간구하고 있습니까? 혹시 솔로몬이 체험한 후에 ‘헛되다’고 한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바울사도도 이러한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8). 당신은 이 배설물을 얻기 위해 좇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쫓아왔습니까? 영원히 편지 않고 진정한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마지막 때까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까지 당신에게 남아 있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아 떠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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