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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02-02)


죽음 앞에서 가치 없는 지혜

전도서 2장 12-17절


사람들은 무엇인가 한 번 꽂히면, 주변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경험한 사람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해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가령 ‘도박은 패가망신이다.’, ‘마약은 중독되며 파멸이다’라고 하는데, 본인은 그 원칙에서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듭니다.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멈추면 그만큼 복을 누리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들은 해를 당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들이 진리라면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입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모든 사람들이 삶의 가치와 의미가 될 것이라고 여기며 추구하는 지혜와 수고로 이룬 성취에 대해 말합니다. 지혜와 무지는 계속 존재해왔고 이후에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무지한 자보다 나은 점이 있더라도 모두가 이 세상에 잠시 있을 뿐입니다.

 

절제된 생활 방식(12-14)

전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바삐 달려가고 있는 삶을 잠시 멈추라고 하고 계십니다. 잠시 멈추어서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이루려고 하는 그것이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얻어도 만족할 수 없는 인생입니까? 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12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12-14)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하면 자신의 분야에서 많은 것을 성취하고 업적을 쌓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노년에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12a)라고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도구입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어떤 사람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서 좋게 사용할 수 있고, 나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와 어리석음이 왕궁에 같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많은 것을 성취했습니다. 때로는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께 죄악된 일들도 망령되게 행하고 어리석은 짓들까지도 행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돌아보니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도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은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슬픈 사실 때문이었습니다(12). 지혜로운 사람들이 만든 업적이나 물건들을 본인이 죽고 나면 연속성이 끊어집니다. 아무도 관심을 같지 않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조차 생각도 안하고 이용합니다. 차나 비행기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탈 때마다 그냥 타지 누가 만들었는지 감사하다 하면서 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솔로몬은 수많은 것들을 창작하고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 자녀들이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왕상 11:43).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나와서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라고 간청합니다. 르호보함은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12:5)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는 솔로몬의 신하들인 노인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12:6). 그들은 솔로몬의 지혜처럼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라고 권고합니다(12:7). 그는 또 젊은 신하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왕이 왕답게 단호해야 합니다.’(8-9)라고 조언을 듣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누구의 조언을 들었겠습니까? 노인들의 조언을 버리고, 젊은 사람들의 조언을 취해 버립니다. 그 결과 북쪽 지파들 중심으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누어져 버립니다. 르호보암은 자기 아버지가 쌓아놓았던 모든 업적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에까지 수고합니다. 그 일을 이루면 얼마나 뿌듯하고 쾌감이 있겠습니까! 성취하는 순간,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 것입니다.

일에 대한 성취감의 쾌감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일을 뒤로 미루어 놓습니다. 그리고 변명이 ‘이것만 하고 나면, 다음에는 충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란 끝이 없습니다. 일하다보니 젊은 날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그로 하여금 쾌락과 노동의 대가를 현명하게 누릴 수 있게 한데 반해(3,9), 방탕한 쾌락주의(12)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론짓기를, 지혜에는 진정으로 유익한 점이 없다고 했습니다(13).

어리석은 자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넘어지는 것처럼 곤경에 빠지는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14).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같은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14). 모든 사람들은 죽고, 또 죽으면 사람들이 두 다 잊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어리석게 살지 않고 현명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진정한 우얼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15).

솔로몬 역시 어리석은 짓들을 시도했으나 단지 망령됨을 발견하였다고 말합니다. 즉 짐승처럼 오직 본능에 의해 사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인간이 해야 할 최선은 모든 일을 제대로 판단하여 바른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세상 지혜의 마지막(17)

오늘날 이 시대는 구약의 ‘지혜’를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며, 신약의 지혜 또한 거절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가장 어리석고 상투적인 말만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현실도피자가 되는 것은 지독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솔로몬은 현실도피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 사람들처럼 쉽고 안일한 삶을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17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17)

솔로몬은 올바른 일을 행하는 인생이라도 결국 비참하게 마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성적으로 바르게 판단하여 탁월한 삶을 살더라도 결국 하나님께 반항하는 삶으로 끝마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리석은 자로 사나 지혜로운 자로 사나 참된 기쁨을 발견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점점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우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후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먼저 간 사람들의 사후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과 일반인들이나 둘 다 죽게 되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영웅호걸이었던 사람도 죽으면 모두 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간 것을 본 것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솔로몬은 삶을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주므로 사는 것을 한탄한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만약 사람이 어떻게 살든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고, 아무것도 가치 있는 일이 없다면 삶의 모든 것과 삶에서 이룬 모든 성취는 헛되고, 무의미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결론지었습니다(참조, 1:14, 17, 2:11, 17, 26, 4:6, 16; 6:9).

솔로몬은 자신이 시도했던 모든 경험을 우리에게 알려주면서 오직 한 가지를 주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자신의 피조된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13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3)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지니셨던 삶의 자세는 현실로부터 동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붙들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께서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삶을 살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는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 11:19)라고 빈정거렸습니다.


우리 주님의 모든 생애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결과 주 예수님께서는 결코 지치신 적도 없었고, 포기하신 적도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을 향해 냉소적이신 때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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