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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9-01)

 


자녀들의 앞날을 예언하는 야곱(1)

창세기 49장 1-12절


누구나 저주보다 복을 원합니다. 하지만 축복과 보상을 원하면서 자기 삶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의로운 행위에 대해서는 합당한 보상을, 불의한 죄에 대해서는 혹독한 저주를 선언합니다. 축복된 삶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곱의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모든 아들들을 불러들인 뒤 그들의 미래를 축복하면서 각자의 운명을 선언합니다. 기나길 시 형식의 예언을 대단히 난해합니다. 왜냐하면, 희귀하게 사용되는 많은 고어들의 잔재가 남아 있고 전형적인 간결한 시 형식의 문장들로 인해 해석이 어려우며 또한 무엇보다 숱한 비유와 상징 언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야곱의 예언은 신명기 33장의 모세의 예언과 비교하며 해석해야 합니다.

 

야곱의 예언: 르우벤(1-4)

부도덕함은 사람의 내면의 결점을 드러내 줍니다. 훈련이나 자제력 등의 부족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결점은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게 상체를 입히고 고통을 주며,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이끌어 가는 능력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도덕함을 심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1-4)

르우벤 임종을 앞둔 야곱은 모든 아들들을 불러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그것은 아들들의 미래 운명과 그들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어떤 아들들에게는 축복이 아닌 사실상 저주가 선언됩니다. 야곱은 자신의 두 이름을 모두 사용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2). 49장의 이해를 돕는 서론의 도표 <야곱의 12아들과 12지파>와 <12 아들과 12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창 49장)과 모세의 예언(신 33장) 비교>를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야곱은 레아의 아들들로부터 대체로 출생 순서를 따라 예언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장남 르우벤입니다. 그는 장남의 위상에 걸맞게 야곱의 ‘능력’, ‘기력의 첫 열매(시작)’라는 칭송을 듣습니다. 그의 위세와 권능은 출중합니다. 그러나 그는 ‘물처럼 요동을 치는’ 불안정한 인물입니다. 이것은 통제되지 않는 그의 경망스러운 행동을 가리킬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즉 그분의 신성한(카도쉬) 결혼 관계를 더럽혔습니다(할랄). 이것은 르우벤이 빌하를 범했던 사건을 가리킵니다(35:22). 그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출중(탁월)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의 탁월한 지위, 즉 장자권이 박탈된다는 선언입니다.

4절 마지막 문구 ‘그가 내 침상에 올랐다’에서 2인칭 단수 문장이 3인칭 단수 문장으로 갑자기 바뀝니다. 이 난해한 짧은 히브리어 문장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지만, 단순하게 이것은 여기서 야곱의 연설 대상이 르우벤에서 아들들로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르우벤이 장남으로서 지위는 유지하나 그의 장자 권리는 박탈당합니다(대상 5:1). 그 결과 어떤 예언자나 사사, 제사장 혹은 왕도 르우벤 지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야곱의 예언: 시므온과 레위(5-7)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태어나지만,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지고 출생하기도 합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데 미흡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탁월함을 구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을 주의 뜻대로 실천하면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5-7)

이어서 레아의 다음 아들들인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미래가 선언됩니다. 둘은 잔인한 폭력행사에 의기투합한 형제였습니다. 그들의 범죄인 세겜의 학살 사건은 창세기 34장에서 언급됩니다. 그들은 ‘무기(칼)’(메케라)를 폭력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메케라’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칼이 할례용 칼이었는데 야곱의 예언은 그것이 무기로 사용된 것에 대한 징벌이라고 이해합니다. 일부 랍비들은 이 단어가 ‘칼’을 뜻하는 헬라어 마카이라(χαιρα)에서 차용된 단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야곱의 시의 고대성을 고려해 볼 때 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원이 무엇이든 이것은 ‘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6절은 야곱 자신은 시므온과 레위의 학살극을 허가한 적이 없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분노하여’(분노대로) 세겜 사람을 학살했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그들이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는 것은 세겜 사건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축들을 노략했을 뿐입니다(34:28-29). 따라서 이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었습니다. 가능한 해석으로 가나안에서 소는 지도자를 가리킬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소는 세겜의 지도자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월키는 야곱 가족은 농부가 아닌 이유로 목축을 위해 양과 염소만 약탈하고 소는 모두 살처분했다고 해석합니다. 말하자면, 정착민인 세겜 사람들에게는 농사가 중요했기에 그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소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들의 과도한 분노와 폭력 행사는 이제 그 대가를 지불받습니다. 그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7), 구체적으로 시므온과 레위는 이제 분리되어 더 이상 연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 레위 지파 전체가 성소 직무를 위한 별정직으로 선별되어 임명되기에 시므온 지파와 자연히 분리됩니다. 무엇보다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음행 사건 당시 제사장 비느하스(레위 지파)는 집단음행의 주동자인 시므온 지파 지도자를 처형합니다.

또한 시므온과 레위는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집니다. 시므온 지파는 제비뽑기로 가나안 땅이 분배될 때 무슨 연고인지 유다 지파 영역 내에 더부살이 하는 방식으로 땅을 할당 받았습니다(수 9:1-9). 나중에 그들은 남북이 나뉠 때 북쪽으로 흡수되며 흩어져 분산됩니다. 이러한 그들의 운명은 신명기 33장 모세의 예언에서 놀랍게도 그들이 아예 누락된다는 사실에서도 암시됩니다. 레위지파는 성소 직무를 위해 구별되었기에 독자적인 땅을 할당받지 못하고 대신 그들에게는 48개의 레위 도성이 주어져 결국 사방에 흩어집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나중에 시내산 아래의 금송아지 사건에서 주동자들을 처단하는 데 앞장서는 공로로 성소의 직무를 맡는 지파로 승격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땅을 받지 못하고 흩어진다는 예언은 유효하기에 전국에서 레위 도성들을 받아 이스라엘 전역에서 더부살이를 합니다.

 

야곱의 예언: 유다(8-12)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는 사람을 인정하시고 책임지는 자를 책임지십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책임지는 자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큰 복을 내려주십니다. 유다와 그의 가족에게 선포된 예언적 축복을 주목해 보시길 랍니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8-12)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에 대한 예언이 주어집니다. 장차 모든 형제들이 그를 찬송할 것입니다. 유다는 장자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나 강한 리더십을 갖춘 대장 지파가 될 것입니다. 그의 군사적 기개 앞에 모든 형제들이 그에게 절을 할 것입니다(참조. 삿 1:1-2; 20:18). 유다는 어린 사자와 다 큰 사자에 비유되니다. 새끼 사자가 먹이를 잡아먹고 올라가는 것처럼 그는 적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어서 암수 사자들이 엎드리고 웅크려 있는 것은 휴식을 위함입니다. 잠자는 사자를 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유다가 바로 그런 두려운 지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장차 유다에게 궁극적으로 왕권이 주어질 것입니다.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규와 지팡이는 ‘실로가 올 때까지’ 유다의 것이 되어 모든 백성(즉 모든지파)이 복종할 것입니다. 참고로 규(珪, scepter)는 왕이 지니고 다니는 지팡이의 일종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한편, 나귀를 포도나무에 맨다는 것은 나귀가 포도열매와 잎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지는 격입니다. 품종이 좋은 나귀는 왕과 같은 고귀한 사람이 타던 짐승이었기에 포도를 마음껏 먹게 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유다는 그만큼 귀한 나귀를 탈 것입니다. 포도주와 우유의 비유는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옷을 포도주와 포도즙(문자적으로 '포도의 피)에 빤다는 것은 귀한 포도주가 넘치도록 풍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다의 눈빛은 포도주보다 더 진할 것이고 그의 이빨은 우유보다 더 하얄 정도로 그는 생명력이 충만할 것입니다.

참고로 ‘실로가 올 때까지’는 ‘구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해석의 난제(crux interpretum)’로 간주됩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아드키 야보 실로’(실로가 올 때까지). ‘아드키’는 ‘~할 때까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18:1에서 ‘실로 성막안치’확인되는데 유다 지파는 실로가 올 때까지만 홀을 잡은 게 아니라 그 후 솔로몬 때까지 계속 유다가 12지파 전체의 홀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르호보암 때 10지파가 떨어져 나가 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홀을 놓칩니다;

(2) ‘아드키 야보 샤이 로’(조공이 그분에게 올 때까지). 이것은 ‘실로’를 ‘샤이 로’(조공이 그분에게)로 수정한 것에 근거합니다. ‘샤이’는 ‘선물, 조공, 공물’의 뜻입니다. 이것은 결국 다윗을 내다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3) ‘아드 키야보 쉘로’ 그것[규]이 그에게 속해 있는 분이 올 때까지, וֹל󰚆(쉘로) = וֹל(그에게) + 󰚆(관계대명사)). 이것은 부분적으로 에스겔 21:27에 근거해 있습니다. 거기서 현재의 이 문구와 거의 축어적으로 동일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마땅히 (그 왕관을, 26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실로’는 마소라 사본의 여백에 대안적 철자인 ‘헤’가 빠진 ‘실로’가 제안되므로 쉘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재구성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매력적인 대안입니다.

어느 견해가 되었든지 이 문구는 공통적으로 결국 다윗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나아가 먼 훗날 영원한 홀을 들고 오실 가장 위대한 메시아 왕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유다의 계보를 통해 오십니다.


 야곱은 자기 후손들의 미래를 예언했습니다. 이는 희망 사항이 그치지 않습니다. 언약의 계승자로서 그 특성과 행위에 걸맞은 예언적 진술을 한 것입니다. 정 많은 아비이기 이전에 무거운 책임을 진 언약 상속자이자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위임받는 권한과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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