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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7-02) 

 


애굽에 새로운 기근 정책을 편 요셉

창세기 47장 13-26절


 무능력하거나 사심 가득한 지도자만 만나고 백성들을 살필 줄 아는 지도자를 만나지 못할 때, ‘복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지도자는 백성들을 곤경에서 건져줄 실제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성취하는 자입니다. 요셉을 볼 때 주를 따르는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기근이 심각해지자 요셉은 저장해둔 곡식을 팝니다. 요셉은 이미 흉년 첫해부터 애굽 백성과 가나안 일대에 식량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41:54 이하). 결과적으로 애굽의 모든 현금이 마지막 동전까지 거두어져 국고에 쌓였습니다. 그것은 도두 바로의 재산으로 귀속됩니다(14). 이렇듯 그는 판매 대금을 충성스럽게 바로에게 바칩니다. 이것은 요셉이 언제니 주인에게 정직했으며 충성을 다한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심화된 기근과 요셉의 새로운 국정 계획(13-17)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무기력합니다. 아무리 애굽과 같이 강한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기근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바로의 종이 되고 토지 역시 바로의 소유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통해 애굽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자연재해, 전염병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13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13-17)

더욱 심각해진 가뭄과 식량난이 상세히 묘사됩니다. 3년째 가뭄으로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때 아마 이미 구상해 놓은 치밀한 계획을 단계별로 실천에 옮깁니다. 그것의 최종 목표는 애굽 토지의 국유화입니다.

그는 3단계로 이 일을 진행합니다. (1) 백성이 현금으로 곡식을 사게 하여 모든 은전을 국고로 귀속시킵니다(13-14); (2) 백성이 가축으로 곡식을 사게 하여 모든 가축을 매입합니다(혹은 저당물로 삼는다; 15-17); (3) 백성이 몸과 농토로 곡식을 사게 하여 토지를 국유화하고 백성을 소작농으로 만듭니다(18-26).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세 번째 단계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적 과정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마지막에 백성이 토지를 팔면서 소작농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후에는 백성이 비록 소작농이지만 자신의 농업과 경제 활동으로 다시 돈을 벌고 가축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금과 가축의 몰수는 최종적으로 토지를 국유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요셉의 토지 국유화 시도와 그 과정이 그의 폭압적 정책인지, 아니면 선한 정책인지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기로 합니다.

요셉은 창고를 열어 식량을 팔기 시작합니다. 그는 모든 판매 대금을 바로에게 바칩니다. 그는 여전히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종입니다. 현금이 동난 백성은 식량이 떨어지자 다시 요셉을 찾아와 간곡히 식량을 구했습니다(15-16). 그러나 요셉은 이번에는 백성이 기르는 가축을 요구했습니다. 백성은 모든 가축을 현금 대신 지불하고 그 해를 버틸 식량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백성의 가축이 단지 담보물로 저당 잡혔을 수도 있습니다. 은전과 토지는 요셉이 모두 바로에게 돌렸다는 말이 있으나 가축의 경우 그것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가축은 고기와 우유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농사를 비롯한 다양한 생산 활동과 일상생활에 필수적이었기에 저당물로 잡힌 채로 계속 키우거나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한 해 동안 비축해둔 식량을 판매하여 공급함으로써 백성의 생명을 보존하며 ‘이끌었다.’(나할;17).

 

애굽 전 토지를 국유화하는 요셉(18-22) 

성도들은 세상의 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세우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성실로 모든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는 모두에게 생명과 복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도와주고 약한 자들의 처지를 살펴야 합니다. 사심을 버리고 지혜와 성실을 다해야 합니다.

18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18-22)

사람들은 한 해를 그렇게 버텼으나 가뭄은 새해에도 지속되었습니다. 현재 이것이 가뭄 몇 년 째 상황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이제 식량을 구입할 재원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력과 농토를 내놓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현재 식량난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곡식의 종자까지 다 먹어 치운 상태입니다. 가뭄이 끝나면 심을 종자마저 없기에 그들은 종자를 달라고 요청합니다(19).

언제든 비가 오면 씨를 심어야 밭이 황폐화하지 않고 살아날 것입니다. 요셉은 결국 애굽의 모든 농토를 사들여 바로에게 바쳤습니다. 21절의 의미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마소라 본문을 따라 요셉은 애굽 끝에서 끝까지 모든 백성을 도시들로 이주시켰습니까? 그렇다면, 광활한 농토에서 농사는 누가 짓습니까? 70인역은 이것을 백성이 국가의 노예로 전락되었다는 뜻으로 번역했으며 이러한 해석은 앞서 백성이 자신들을 바로의 종으로 팔겠다고 말한 것과 잘 어울립니다. 따라서 애굽 땅 전역의 백성이 ‘종들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애굽 모든 농부는 국가에 귀속된 소작농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급여를 받았기에 그들은 토지를 팔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세운 애굽 토지법(23-26)

우리는 주님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지만, 큰 일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만은 아닙니다. 기회가 되어 높은 자리에 올라서 나라를 섬길 수도 있지만, 서민들로서 자신의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각자의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생명과 복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애굽에 새로운 토지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3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23-26)

요셉은 전 농토를 국유화한 다음 농부들에게 종자를 배급하여 뿌리도록 합니다. 아마 이것은 드디어 가뭄이 끝난 상황을 가리킬 것입니다. 요셉은 새로운 조세법을 마련하여 시행령을 내립니다. 백성은 수확의 1/5을 국가에 상납해야 하며 남은 4/5는 그들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애굽 백성은 ‘주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로 1/5의 납세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하며 기꺼이 바로의 소작농이 되겠다고 자청합니다(25). ‘애굽인들은 요셉을 독재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 간주합니다(45:7; 47:15,19을 보라)’.

요셉은 제사장의 농토를 제외하고 백성의 농토에서 수확된 생산물의 1/5을 바로에게 바치는 새로운 애굽 토지법을 마련했으며 이 법이 저자의 시대인 ‘오늘날’까지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저자의 ‘오늘날’의 시점에 대해서는 오경의 저작설과 맞물려 여러 견해들로 나뉩니다.

비평학자들은 애굽의 토지 제도가 요셉 이야기에 삽입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이러한 애굽 토지 제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드보(R. de Vaux)는 이 배경을 애굽의 영향으로 왕권을 절대시하여 백성에게 중노동을 시키며 과도한 세금을 거둔 주전 10세기의 솔로몬 시대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배경의 정확한 시기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고대 애굽에서는 거의 전 시대에 걸쳐 제사장의 토지를 제외한 모든 영토가 바로와 공공기관의 소유였으며 사유지는 거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합니다.

흥미롭게도 애굽에서 토지의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은 구약 이스라엘에서 토지의 사용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과정과 약간 차이가 나지만 병행을 이룹니다. 참고로 구약 이스라엘에서는 토지의 소유권은 결코 찬탈될 수 없으며 잠시 사용권만이 넘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져갚을 돈이 없으면 빚을 채울 때까지 채권자에게 단기적인 종이 되어 최대 6년간 노동력을 제공합니다(출 21:2-11; 신 15:1-18). 빚이 과도하면 땅이 채무자에게 저당 잡혀 일시적으로 넘어갑니다(레 25:25-34; 그러나 희년에는 모든 땅이 원주인에게 돌아온다). 땅값으로 빚을 충당하기 부족하기 부족하면 최종적으로 채무자는 채권자의 장기적인, 혹 종신 노예가 되어 빚을 감당해야 합니다(레 25:35-54; 그러나 희년에는 모든 노예가 사면됩니다). 또한 애굽 전 국토가 바로의 소유인 것과 이스라엘의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 병행을 이룹니다. 말하자면 둘 다 사유지가 허용되지 않은 채 애굽 백성은 바로의 소작농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작농입니다. 애굽 농부들은 수확의 1/5을 바로에게 바쳤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1/10)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참고로 랍비들을 따르는 유대교 전통에서는 신명기 12장의 십일조는 민수기 레위기의 십일조와 별개로 결국 제2의 십일조가 존재하므로 이스라엘도 십의 이조, 즉 1/5를 성소에 바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며 신명기의 십일조는 궁극적으로 민수기의 십일조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애굽에서는 제사장만이 유일하게 사유지가 허용되고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농토가 부여되지 않고(단지 레위인에게 일부 목초지만 제공된다) 백성의 십일조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자신의 권력욕과 야망을 위해 폭압적인 토지법을 마련했습니까? 그래서 요셉 역시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까? 본문은 백성의 반응과 이 법이 도출하는 최상의 결과를 통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요셉의 토지법은 레위기 25장의 희년법과 토지법의 그림자요 암시일 수 있습니다. 애굽의 실제적인 통치자는 바로가 아닌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 즉 신적 지혜에서 기원한 정책을 가지고 국정을 이끕니다. 그에게 통치의 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애굽에서 요셉을 통해 일시적으로 신정국가의 통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토지 개혁은 레위기 희년법의 전조로서 바로 신정국가의 실현이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중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인 대리 통치자일 뿐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바로가 받은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바 그들의 후손을 통해 열국이 복을 누릴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보내 위기에서 백성을 건져주시고 나은 삶의 조건을 부여하십니다. 애굽 백성들의 생명도 소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책 입안자들에게 주를 경외하는 마음과 백성에 대한 사랑을 주셔서 사람들의 삶을 살리는 정책을 펼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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