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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1-03)

 


애굽의 총리로 등극한 요셉

창세기 41장 37-57절


역사는 하나님의 활동 무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텍스트입니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지 않는 신은 관념의 산물일 뿐입니다. 요셉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존재감이 애굽 제국에 어떤 식으로 증명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에 의한 요셉의 꿈 해몽에 모든 신하가 놀라며 그의 비상함을 인정합니다(37-38). 특히 바로는 ‘이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놀랍니다. 이 반어법적 질문은 요셉의 득보적인 능력과 비상함을 더 크게 부각시키면서 그를 국정 책임자로 임명할 것을 독자들에게 예고합니다. 바로는 요셉의 능력이 그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총리로 등극한 요셉(37-45)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종을 사용하실 수 있는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믿어야 하며 순종해야 하며 따라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높이셔서 그를 애굽의 으뜸가는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37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37-46)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심으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바로와 그 정부 각료들은 틀림없이 충격을 받고 놀랏을 것입니다. 나라가 기근 때문에 경제적인 공황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무서운 생각이었습니다.

(1) 요셉에 매료된 바로(37-41)

요셉의 해몽에 바로와 모든 신하가 매료되었습니다. 그들이 ‘좋게 여긴지라’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눈에 좋았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의 외모는 보디발 아내의 눈에 좋았으나 요셉의 지혜는 바로와 신하들의 눈에 좋았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칭합니다.

‘하나님의 영’(루아흐 엘로힘)은 창조기사에(1:2) 최초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신(영)’ 이었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영은 성막 건설의 현장 감독직에 임명된 브살렐에게 임합니다(출 31:3). ‘하나님의 영’은 정교한 (대)제사장의 옷 제작에 필요한 놀라운 기술을 제공하는 ‘지혜로운 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출 28:3). 무엇보다 ‘여호와의 영’은 ‘지혜와 총명’과 ‘비상한 지혜’의 신입니다(사 11:2; 단 5:14). 이 지혜의 영은 잠언 8:22 이하의 천지창조에서 등장하는 인격화된 하나님의 지혜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신령한 해몽에 놀란 바로는 즉석에서 그에게 애굽의 국정을 책임지는 지위를 부여합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40). 이 직책이 단순히 왕실의 집정관 수준이 아니라 총리직이었다는 것은 이어지는 진술에서 드러납니다.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할 것이며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다.’ 요셉에게 부여된 직책은 분명 바로에 이은 2인자 자리, 곧 애굽의 국정 전반을 통솔하는 국무총리가 분명합니다. 실제로 이집트 역사에는 파라오를 보필하면서 이런 역할을 한 총리직이 존재했습니다.

(2) 애굽의 총리로 등극한 요셉(42-45)

바로는 즉석에서 요셉에게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서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걸어줍니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고위직을 세울 때 실행했던 일종의 임명 예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의 왕은 흔히 이 반지를 인장으로 삼아 중요한 문서들과 물건들에 표시했습니다(에 3:10,12; 8:2,8). 요셉에게 입힌 세마포 옷은 삼베옷으로, 부자와 고위층은 가장 고급스런 삼베옷을 입었을 것입니다. 아마 바로가 직접 입힌 이 옷은 위엄 있는 형태의 긴 외투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 이야기의 핵심 요소인 옷이 부각됩니다. 옷이 벗겨져 비참한 상황에 빠졌던 그에게 권세 있는 옷이 입혀집니다. 요셉에게 바로의 ‘버금 수레’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바로의 여벌의 수레를 뜻할 수 있는데, 왕실의 최고급 의전 차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꿈 해몽 외에 아무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이방인 젊은이를 총리로 전격 발탁한 바로의 결정이 너무 성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국의 왕들은 마술과 점술, 신들의 신탁에 크게 의존하며 국정을 이끌었기에, 바로도 요셉에게서 어떤 놀라운 신적 능력이 발현되는 것을 보고 그를 즉석에서 발탁했을 것입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모든 백성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합니다.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을 것이다’(44).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바로는 즉시 요셉의 애굽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에게 애굽식 이름을 부여하고 제사장의 딸과 결혼시킵니다. 요셉의 애굽 이름 ‘사브낫바네아’의 뜻은 정확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애굽의 관행이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셈족인 힉소스의 통치기인 주전 1600년경부터 주전 1200년경에, 셈족 관료들에게 이집트식 이름이 부여된 사례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요셉은 온(On)의 제사장 딸과 결혼합니다. 온(On)은 그리스 도시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로, 이집트 카이로의 북동쪽 11킬로미터 지점이며, 오늘날 카이로의 신도시가 들어선 곳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곳은 태양신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의 아내 아스낫은 이름 외에 알려진 것이 없으며, 요셉의 애굽 이름도 여기서만 소개됩니다. 이것은 요셉이 결혼과 사실상의 귀화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간직하려 애썼음을 암시한비다. 이것은 훗날 그가 죽을 때 자신의 뼈를 반드시 고향 땅에 묻으라고 유언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요셉이 풍년기에 식량을 비축(46-4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지혜롭게 능력 있게 만드실 권능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무장시켜서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실 권능이 있습니다. 우레에게 인생의 직업과 직무를 감당할 수 잇도록 은사들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움직이셔서 풍성한 곡물을 생산하도록 하셨습니다.

46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46-49)

요셉이 총리로 등극할 때의 나이가 30세였습니다. 한 유목민의 어린 아들이었던 17세 청년이 13년 후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예언대로 애굽에 7년 동안 대풍년이 지속되었습니다. 계획대로 요셉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면서 그 기간 동안 각 지방의 성읍에 막대한 식량을 비축했습니다. 쏟아지는 곡물은 더 이상 집계를 할 수 없을 만큼 ‘바다 모래같이’ 많았는데, 이 표현은 ‘하늘의 별들’과 더불어 셀 수 없는 수자를 가리키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요셉에게 태어난 두 아들(50-52)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백성들의 개인적인 생활을 축복하실 수 있는 권능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아주 풍성하게 한량없는 축복으로 넘치도록 만들어 주시셨습니다. 요셉은 그 때 두 아들을 축복으로 받았는데, 그들은 장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지파들 중의 둘이 될 것입니다.

50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50-52)

풍년 기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곡식의 풍부한 소출과 더불어 요셉의 자녀들의 출생이 평행을 이룹니다. 애굽에서도 토지의 생산과 자녀의 출산은 신의 은총의 산물로 간주되었습니다.

7년 동안의 풍년기에 태어난 두 아들은 마치 ‘하늘의 별들’처럼 많은 곡물의 생산과 더불어 그들을 통해 ‘하늘의 별들’처럼 많은 후손이 태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요셉은 장남과 차남의 이름을 각각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지었습니다. ‘므낫세’는 어두운 과거의 청산과 관련된 이름이고 ‘에브라임’은 희망찬 미래와 관련된 이름입니다. 첫 아들 ‘므낫세’는 ‘잊음’을 뜻하는데, 그의 과거 고통이 이제 끝났음을 첫째 아들의 이름에 담았습니다. 둘째의 이름은 ‘에브라임’인데, 이 이름은 어근에 비추어 볼 때 ‘번성’을 뜻합니다. 이 이름은 쌍수 혹은 쌍수형의 복수 어미를 지녔으므로, 두 배 혹은 몇 배의 번성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대로 에브라임의 후손은 훗날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가장 강성한 지파로 성장합니다. ‘에브라임은 만만이요 므낫세는 천천이 될 것이다’(신 33:17). 두 아들에게 히브리식 이름을 부여한 요셉은 자녀들을 애굽인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분명 아버지의 집과 인연을 끊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흉년기에 식량을 공급(53-57)

하나님께는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백성들의 필요들을 채우실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사람들의 필요들을 충족시키길 원하십니다. 그분은 요셉을 사용하셨으며 따라서 그분은 우리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 일어난 일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우리의 필요들을 충족시키시며 얼마나 놀랍게 사용하셔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들을 충족시키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53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53-57)

7년간의 대풍년 기간이 끝나고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뭄은 애굽에 국한되지 않고 주변 국가들을 포함한 세계적 재앙으로 발생했습니다(54).

애굽 지역은 원래 강수량이 극히 낮은데, 나일강 상류인 중부 아프리카 지역의 엄청난 강우로 인해 정기적으로 홍수가 발생하고 수량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만일 수원 지역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가뭄을 피할 수 없었고, 실제로 역사 속에서 그런 재앙이 반복적으로 찾아왔습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석회암 지역의 토양과 우기 때만 흐르는 계절천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기 때의 장기적인 강우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우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가뭄은 아마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인근의 레반트(Levant) 전 지역까지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애굽과 레반트 지역에 동시적으로 가뭄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따라서 애굽을 제외하고 ‘온 땅에’(개역개정은 ‘각국에’) 식량이 없었습니다(54). 흉년으로 식량이 떨어지자 애굽의 모든 백성은 굶주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요셉이 비축해둔 식량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곡식 창고를 열고 백성에게 식량을 배급하여 팔았습니다. 나아가 각국의 백성이 기근에 고통당하며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달려왔습니다.

막대한 식량이 비축된 애굽은 노아의 방주와 같고, 요셉은 승선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선주 노아와 같습니다. 한편, 세상을 구원하는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이 낮아져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후 높아지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감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제국의 총리로 올라선 요셉이 세상을 구합니다. 승귀하신 그리스도께 모든 나라가 무릎 꿇듯(빌 2:10), 높아진 요셉에게 모든 나라가 무릎 꿇습니다(43, 57).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의 꿈의 해몽자와 수행자인 요셉에 의해 그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십니다. 역사에서 그분이 갖고 있는 지분 전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현상시키도록 부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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