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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0-01)


감옥에 갇히게 된 요셉

창세기 40장 1-23절


꿈은 하나님의 습격입니다. 무의식의 발로로서의 꿈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시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고 하나님의 창조의 자리임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의 삶에서 꿈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습니까?

  

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날짜가 적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기간을 유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후에’, 즉 요셉이 옥에 갇힌 후 어느 날 두 정치범이 새로 수감되었으며, 또한 다시 여러 날이 지나(4) 두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고위 관료들이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어 나간 후 2년을 더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 수감 기간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정확 상 요셉은 20대 중반 즈음에 유혹녀의 능간으로 옥에 갇혔을 수 있습니다.

 

옥에 갇힌 요셉(1-4)

형편이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그 상황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고난을 당하고 상처를 입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고난을 당하고 인생의 시련들을 통과하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1-4)

두 정치범은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입니다. 두 직책을 편의상 ‘주정관’(酒正官)과 ‘주방장’으로 호칭하기로 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주정관’은 특히 중요한 직책으로, 왕의 최측근이었다고 알려집니다.

참고로 느헤미야가 바벨론 왕실의 주정관으로 봉직했습니다(느 1:11). 왕들은 독살을 염려하여 가장 신뢰하는 인물을 주정관과 주방장으로 임명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부유했으며 정치적 영향력이 지대했습니다. 바로의 주정관과 주방장의 범죄 내용은 적시되어 있지 않으나, 독살 의도를 의심케 할 만큼 왕에게 큰 탈을 일으킨 술과 음식이 관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혐의에 대한 최종 판결을 위해 옥에 갇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범죄 혐의가 무엇이었든, 그들은 하늘의 주인인 하나님과 땅에서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에게 아무런 죄를 범하지 않은 요셉과 대조됩니다.

두 정치범이 친위대장의 집에 있는 옥에 갇혔습니다. 친위대장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가 보디발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한 7절의 ‘그 주인의 집’이라는 표현도 그 친위대장이 보디발임을 암시합니다. 앞서 감옥의 간수장은 투옥된 요셉을 신임하여 그에게 옥중제반 업무를 맡긴 바 있습니다. 현재는 친위대장이 중대한 정치범인 왕실 고급 관리의 시중을 맡깁니다. 그 친위대장이 여전히 보디발이라면, 요셉에 대한 그의 신뢰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두 정치범이 투옥되고 다시 상당한 시간이 흐릅니다(4).

 

꿈을 해몽하는 요셉(5-19)

겸손은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참으로 겸손한 영을 가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들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한 것들을 통해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하고 범죄하며, 병들거나 사고당합니다.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9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5-19)

요셉은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들을 감지함으로 더욱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투옥 경험을 사용하셔서 더욱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그것처럼 꿈을 믿고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 오는 것처럼 꿈을 믿고 있었습니다.

(1) 술 관원장이 꾼 꿈의 해몽(5-15)

두 관원장은 같은 날 특이한 꿈을 꿉니다. 동시에 꿈을 꿨다는 것은 그들이 꾼 꿈이 범상치 않음을 알려줍니다. 두 사람은 꿈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그 비슷한 내용에 놀라, 꿈에 자신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하여 안절부절 못합니다. 당시 애굽에서는 기이한 꿈을 꾸면 전문 해몽가를 찾아가 그 뜻을 문의했는데, 그들은 지금 옥중에 있었기에 감정이 요동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에서 꿈은 흔히 하나님의 중요한 계시 수단입니다(창 20:3; 31:3-55; 41:25). 특히 꿈은 요셉 이야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짝을 이룬 세 가지 꿈이 나타납니다. 요셉의 두 꿈(37:5-11),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꿈(40:1-23), 바로가 꾼 두 꿈(41:1-40). 하나님께서는 이 꿈들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자신이 통제하고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요셉은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하면서 자신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합니다(8). 그들의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꿈은 지식과 기교를 지닌 해몽가와 점술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주정관이 자신의 꿈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9). 주정관과 이어지는 주방장의 꿈 내용에서 숫자 ‘3’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면서 두드러집니다. 포도나무에 세 개의 가지가 있고, 포도열매가 맺히는 과정이 세 개의 동사로 묘사됩니다. 11절에서 주정관은 바로의 이름과 잔을 각각 세 번 언급합니다. 주정관이 포도즙을 짜서 바로에게 바치는 동작이 세 개의 동사로 묘사됩니다. 이어지는 주방장의 꿈에서는 세 개의 떡 광주리가 나타납니다. 주정관의 꿈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그는 세 개의 가지를 가진 포도나무를 보았고, 포도를 따서 바로의 잔에 담아 그에게 바쳤습니다. 요셉은 즉석에서 주정관의 꿈을 해몽하기 시작합니다. 세 개의 가지는 사흘을 의미하며, 그는 사흘 안에 바로에게 불려가(‘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사면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옥에 갇히기 전처럼 바로의 잔을 맡는 일로 복귀할 것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어로 ‘당신의 머리를 들고’라는 표현이 두 사람의 꿈 해몽에 다 사용되는데, 문맥상 ‘부르다, 소환하다’로 이해됩니다. 아카디아 상당어도 ‘왕의 면전에 사람을 부르다’를 의미합니다.

요셉은 주정관이 사면될 것을 확신하면서, 그에게 옥에서 나가면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원래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당 했다는 사실은 철저히 감춰 형제들의 명예를 보존합니다. ‘나를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이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14). 요셉이 사용한 표현들은 오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셨다’(참조. 출 20:2).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요셉을 기억하고 은혜를 베풀어 그를 건져주실 분은 하나님입니다. 실제로 그 주정관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기억해낼 뿐이기에, 은혜를 베풀어 그를 옥에서 건져낸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바로로 하여금 이상한 꿈을 꾸게 하셔서 요셉이 구출되도록 해주셨습니다.

(2) 떡 관원장이 꾼 꿈의 해몽(16-19)

왕실 주정관의꿈이 길몽임을 알게 된 왕실 주방장이 기대감을 품고 이어서 자신의 꿈 해몽을 요셉에게 부탁합니다. 그의 꿈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흰 떡 세 광주리가 머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중 맨 위 광주리에 바로를 위한 다양한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그 위에 내려앉아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방장은 ‘그 새들을 쫓을 기력도 마음도 없다’. 머리 위의 새를 쫓아내지 못하는 것은 불길한 징조를 암시합니다(15:11).

요셉의 해몽이 시작됩니다(18). 떡 세 광주리는 앞서 주정관의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흘을 가리킵니다. 사흘 안에 바로가 그 주방장을 소환할 테지만, 바로는 그를 나무에 매달아 사형에 처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들이 그의 살을 모두 뜯어먹을 것입니다. 결국 머리 위의 흰 떡 광주리에 새가 앉아 떡을 쪼아 먹은 것은 그의 처참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사형수를 나무에 매달아 처형한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새 떼가 뜯게 했을 것입니다.

 

현실이 된 관원들의 꿈과 잊힌 요셉(20-23)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가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실망시켰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 생활에 고통을 주십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어버렸다는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20-23)

그 후 3일째 되던 날입니다. 그날은 바로의 생일이었고,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바로의 ‘생일’은 연례행사로, 이집트 문헌들은 이런 날에 대사면령이 내려졌음을 언급합니다. 바로는 자신의 생일에 수년 째 투옥된 왕실 주정관과 주방장을 옥으로부터 소환했습니다(‘머리를 들게 했다’). 요셉의 해몽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정관은 사면되었으나 주방장은 사형되었습니다.

해밀턴은 둘 다 유죄였는데 왜 한 사람만 사면되었는지 내레이터가 말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것은 내레이터의 목적과 관심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은 누명이 벗겨졌거나 혐의가 경미해 사면되었지만, 떡 맡은 관원의 혐의는 매우 중대하고 명백해서 사형에 처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요셉의 해몽은 정확히 성취되었고,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석방된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월키는 그의 망각이 정신적 방치가 아니라 도덕적 방치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기이하고 강렬한 경험을 결코 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처음에 고의적으로 이 사실을 바로에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는 현재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상태이기에, 사면된 신하가 이방인 죄수의 꿈대로 사면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면 바로가 불쾌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 요셉은 관원장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2년을 더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41:1).


 요셉의 꿈(바람)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꿈은 여전하였습니다. 꿈은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겠다는 표시이고 당신의 주권 주장입니다. 자신의 꿈에 하나님이 포박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꿈이 내 삶에 이루어지도록 순종해야 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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