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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9-01)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39 1-23


꿈을 받은 것밖에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것이 무슨 죄란 말입니까? 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위를 살핀 것 때문에 미움을 받고 살해 위기에 처하고 결국 짐짝처럼 팔아넘겨져야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정녕 세상의 죄악에 무고한 사람이 당하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무대는 다시 애굽으로 바뀌어 요셉이 애굽에서 어느 귀족의 집에 펼쳐집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시무한 기간(1-6)과 그의 수감 기간을 포함한 전체 기간은 18-30세까지의 약 12년으로 보입니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그의 나이가 30세이기 때문입니다(41:46). 그러나 본문은 그가 몇 세에 옥에 갇혀 몇 년 동안 수감되었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 그의 나이 20대 중반에 발생했다면, 그는 5년 정도 옥에 갇힌 셈입니다.

 

요셉의 인생 역전(1-6)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처지에서든 또 누구를 통해서든 또 누구를 통해서든 자기 백성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자신 처지나 주변의 형편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통해서 그곳에 하나님 나라의 복이 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요셉에게 주인 보디발도 은혜를 베풉니다.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1-6)

내러티브는 39장에서 다시 요셉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꽤 시간이 흘렀으며 요셉은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2).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표현은 39장에 빈번히 나타나는데(2,3,5,21,23), 요셉 이야기에서 줄곧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45:5;50:20).

여호와의 은혜로 그는 형통한 자가 되며(2), 또한 범사를 형통케 하는 자가 됩니다. 동사 찰라흐 성공하다’, ‘번영하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요셉의 만사가 잘 풀렸음을 의미합니다. 주인 보디발은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이 보기에도 요셉을 범사에 형통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인 보디발의 큰 호감을 산(은혜를 입은) 요셉은 충성스럽게 그를 섬겼으며 결국 주인은 그를 가정 총무로 삼아 집안의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요셉은 수십 명의 종을 관리하는 시종관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요셉의 손을 통해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 하셨고, 보디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그의 손에 주어 자신의 모든 일을 형통케 합니다(5).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성취된 한 측면입니다.

보디발은 자기 집의 모든 재산과 경영을 요셉에게 맡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해밀턴(Hamilton)은 이것이 이스라엘과 애굽의 음식물 차이 때문이거나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인을 부정하게 여겨 겸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일부 랍비들은 9절을 근거로 이 음식을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완곡어법(euphemism)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단순히 사적인 용무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 모든 것에 대한 재량권을 주었다는 말에서,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금지하고 모든 과일을 허용하신 것이 연상됩니다. 유혹에 넘어가 결국 금단의 열매를 먹었던 아담과 하와와 달리, 요셉은 하나님이 정하신금지된 선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어지는 요셉에 대한 인상적인 외모에 대한 묘사는 그의 외모 때문에 당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모함을 당하는 요셉(7-19)

신앙적인 매력은 그에게 형통함을 주었지만, 신체적인 매력은 큰 유혹과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죄는 항상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것이며, 그분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것입니다.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7-19)

요셉은 유혹을 통하여 더욱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유혹을 받도록 허락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자기 부인과 자제력을 배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필요했던 것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몸, 생각, 감정을 제어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1)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7-10)

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18세 즈음에 애굽으로 팔려온 요셉이 이제 전개되기 시작하는 사건에서는 20대의 청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귀공자와 같은 미남 요셉을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합니다. 유혹녀는 그의 주인의 아내로 소개될 뿐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노예이지만 그 여자는 욕정의 노예입니다. 그녀는 요셉에게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청합니다. 나와 동침하자(원문의 의미). 그러나 요셉은 즉시 거절합니다. 유혹의 말은 짧고 강렬한 반면, 거절의 말은 단호하고 장황합니다.

8절을 원문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내 주인은 집안의 어떤 일도 알지 못하십니다. 그분께 속한 모든 것을 제 손에 위탁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보디발은 집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요셉을 신임했습니다. 따라서 그녀를 범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큰 악이며 또한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큰 죄입니다. 요셉은 이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유는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리며, 성관계는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누린다’(Waltke). 성적 문란함이 모든 노예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이었음을 고려할 때, 성적 유혹에 취약했을 자신의 신분과 환경을 이겨낸 요셉의 도덕적 탁월성은 한층 귀하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혹녀는 집요했습니다. 날마다라는 표현은 보디발 아내의 애정 공세가 일회성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녀 곁에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철저히 그녀를 경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요셉을 모함하는 보디발의 아내(11-19)

요셉은 평소대로(그러할 때에) 직무를 위해 보디발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별채에 거주하며 주인집을 섬겼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날 집안의 모든 일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14절에 비추어 볼 때, 그날 집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집안의 종들은 보디발 아내의 의도적인 조치로 각자 숙소에서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혹녀는 다시 직설적으로 나와 동침하자며 그를 유혹합니다. 이번에는 요셉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쳐 나옵니다(12). 그러나 그녀가 요셉의 옷을 강제로 벗기려 시도했기에 요셉은 어쩔 수 없이 그 옷을 남겨두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 옷은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대로 긴 겉옷이 분명합니다. 그가 평소에 이스라엘의 전통 복장을 따라 겉옷(시믈라)을 입고 있었다는 것은 41:14에서 확인됩니다. 성경에서 유혹녀의 저돌적인 공세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그녀가 얼마나 요셉을 욕망했는지 엿보게 합니다. 다시 이 중심에 섭니다. 형제들에 의해 벗겨진 그의 채색옷이 속임수의 수단이 되었던 것처럼, 그의 겉옷은 유혹녀에 의해 벗겨져 속임수의 수단이 됩니다.

그 여자는 요셉의 옷을 손에 든 채 집에 있는 사람들을 부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녀는 의도적으로 모든 종에게 휴식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여자가 붙든 겉옷을 버려두고 일단 자리를 피해 유혹을 뿌리쳤지만, 그녀가 자신의 옷을 손에 쥐고 즉시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모함하는 행위를 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하인들을 불렀습니다. 그녀는 하인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우리라는 표현을 씁니다(14). ‘집 주인인 남편 보디발이 히브리 사람을 고용해 우리 모두를 모욕하고 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인종혐오(제노포비아)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모함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녀의 순발력과 재치는 놀라웠습니다. 그녀의 유혹하는 말은 짧았으나 모함하는 말은 장황합니다. 이로써 교묘하게 보디발 수하의 일꾼 모두가 요셉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합니다. 요셉이 갑자기 시종관 자리에 올랐기에 이미 많은 사람이 그를 질투했을 것이며,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보디발의 아내는 그 반감을 부추깁니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자 동일한 진술을 그의 앞에서 반복합니다(17). 그 유혹녀는 자신이 당한 수모를 은근히 남편 보디발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이것은 보디발이 이 일을 책임지고 분명하게 요셉을 처벌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녀는 매우 교활한 두뇌의 소유자로, 모호한 말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압니다. 보디발은 분노했습니다(19). 즉시 요셉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습니다. 당시 고대근동 전역에서 유부녀 강간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강간 미수도 동일한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그런데 요셉의 혐의는 자신의 상관의 아내를 겁탈하려 한 더욱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그럼에도 보디발은 그를 극형에 처하지 않고 옥에 가둡니다. 이것은 보디발이 평소 아내의 품행과 요셉의 오랜 충성심에 비추어 자신의 아내를 신뢰하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요셉(20-23)

형통함은 단순히 어떤 일이 뜻대로 잘 진행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행하시는 은혜가 형통한 삶을 좌우합니다. 요셉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형통하고,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감옥도 왕실업무를 익히는 학교가 됩니다.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20-23)

요셉은 이제 노예의 신분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어 사람들에게서 은혜(호감)를 얻게 하십니다. 옥중에서 그는 간수장의 호감을 얻습니다(21).

요셉의 성공 비결은 바로 여호와의 함께하심입니다.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했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간수장의 눈에 자신의 은혜를 부여했다입니다. 말하자면, 간수장이 요셉에게 호감을 품고 호의를 베푼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보디발의 아내 눈에는 요셉이 욕정의 대상이었으나, 간수장의 눈에는 신임의 대상입니다. 이번에는 간수장이 감옥의 모든 죄수와 제반 업무를 요셉의 손에 맡깁니다. 그리고 요셉의 손을 통해 다시 범사가 형통케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환경은 있다가 사라집니다. 변하고 또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의 믿음과 연안이 주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변해간다면, 그것이 참된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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