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05-02)
빛의 자녀들을 향한 열매
에베소서 5장 8-14절
똑같은 세상이지만 밤낮은 밝기 차이가 납니다. 어두운 밤에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빛이 있어야만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할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많이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워진 세상에 기준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 세상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이방인의 부끄러운 방식을 버리라고, 주님 안에서 열매를 맺으며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이 비추어야 할 이유는 그들의 빛을 통하여 어둠 가운데 있던 것이 빛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드러난 것은 그 자체가 빛이 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8-10)
빛이 소중한 것은 아주 깜깜한 장소에 들어가면 더 알 수 있습니다. 밝은 곳에서 있다가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앞이 안보입니다. 한참 있으면, 조금씩 어둠 속에 있는 물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두운 곳을 빛이 비추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들어나 보입니다.
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8-10)
바울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권면에 이어서, 이제 성도들의 신분을 빛으로 비유하여 소개합니다. 그는 빛이신 하나님과 어두움인 세상을 대조하며,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듣고 어둠에서 벗어나 ‘빛’과 ‘빛의 자녀’가 되었음을 소개합니다. 이제는 신분이 어둠에서 빛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⑴ 이유 : 그리스도인은 변화된 사람(8a)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회심하기 전, 이방에 살 때에 ‘어두움의 자녀’이었지만, 복음을 통해 새로운 ‘빛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졌다고 전합니다. 이제는 모든 어두운 악한 세력이 물러났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성도들에게 ‘빛 가운데 있다’하지 않고 ‘빛’ 그 자체라고 주장합니다. 요한은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요한복음 1:5-7) 바울은 한 발 더 나가서 성도들은 ‘빛’ 자체이며 ‘빛의 자녀’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이 말한 ‘빛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는 것과 관련이 되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구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어둠은 복음의 진리에 대한 무지 가운데 불순종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죽음과 지옥과 심판을 상징합니다(4:17-18). 반면에 빛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한 순종의 삶이며, 새 창조를 통한 새로운 생명을 의미합니다(4:20-24).
성도들은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빛의 자녀’임을 인식하며, 그 다음은 ‘빛의 자녀’로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위대한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그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빛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⑵ 명령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b-10)
바울은 주안에서 ‘빛’이며 ‘빛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신분에 걸맞게 살라고 명령합니다. 그 다음에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빛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①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8b)
성도들을 ‘빛의 자녀들’이란 표현은 ‘불순종의 아들’(2:2; 5:6)이나 ‘진노의 자녀들’(2:3)라고 표현과는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과거에 에베소 성도들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순종의 아들들’이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다가 결국 멸망 받을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거듭난 ‘빛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중생하지 못한 ‘진노의 자녀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은 예전에 그들이 살았던(4:18; 요한복음 1:5; 3:19-20) 어두움이 아니라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5:14-16; 요한복음 3:21; 8:12; 로마서 13:12; 데살로니가전서 5:4-5). 그들은 흑암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골로새서 1:13). 이제 주 안에 있는 것은 ‘빛’이며(요한복음 8:12) 또한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특징은 ‘은밀함’입니다. 은밀하게 시작해서 패가망신(敗家亡身)해야 끝납니다. 누구든지 마약이나 도박은 패인의 지름길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한 번 길에 들어서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악한 사단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인도에 대한 결과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죄 가운데 죽음으로서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② 빛의 열매(9)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여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에베소 성도들과 우리들은 이방인이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들’에게 ‘빛의 열매’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빛의 열매’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 된 성도들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행실이나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모든 착함’과 ‘의로움’ 그리고 ‘진실함’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열매들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모든 착함(goodness)’은 ‘선함’(로마서 15:14), ‘양선’(갈라디아서 5:22), ‘선’(데살로니가후서 1:11)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어질고 관대한 모든 행실을 가리킵니다. 다음은 ‘의로움(righteousness)’인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사람의 성품이며(4:24), 또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의의 선물입니다(6:14). 본문에서는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따르는 행실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실함(truth)’는 ‘복음의 진리’(1:13; 4:21; 6:14)나 ‘진실한 말’(4:25)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거짓이 없는 진실한 행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빛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며 의로우며 진실한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깨끗하게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고린도전서 6:11), 또한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4:24). 그러므로 ‘빛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감으로 빛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실제로 선하고 의로우며 진실한 사람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제 더 나가서 이사야 선지자가 외쳤던 것처럼 ‘이방의 빛’이 되었습니다(이사야 42:6). 이것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똑같은 욕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자녀인 성도들을 더 욕을 합니다.
③ 주를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을 시험하라(10)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고 권고합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님의 영광이며 주님의 기쁨입니다(로마서 14:8; 고린도전서 6:20; 10:31).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리 좋아 보인 것일지라도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는 것이라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시험해 보다’라고 명령합니다. 이 단어는 ‘분별하다’(로마서 12:2)로 사용하며, 무엇이 참인지 결정하기 위해 면밀하게 ‘시험하다’, ‘조사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을 주관하는 마귀는 성도들의 영혼을 어둡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성도들은 살아가면서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극히 선한 것은 무엇이며 좋은 것은 무엇인지 성도들 자신이 시험하고 분별해야 합니다(빌립보서 1:10; 데살로니가전서 5:21).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생동하며 자기 유익이나 기쁨을 먼저 고려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매 순간 성령으로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자기중심적인 성향과 욕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죄가 만연했던 에베소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려고 할 때, 매우 분별력(分別力)이 필요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 그리고 성도로서 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분별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듭났다고 하지만, 과거 어두움에 속했던 습관대로 살아가기가 쉬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죄악으로 만연한 세상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만한 행동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고 권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빛의 자녀들’은 과거에 어두운 속에서 행하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바른 분별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이며, 불순종의 자녀들과 구별된 삶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악인들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11-13)
살고 있는 주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로 가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기청정기(空氣淸淨器)를 사용합니다. 평상시는 잘 모르겠지만,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어 보면, 그렇게 많은 먼지를 마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죄악의 먼지로 가득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죄악의 영향을 받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11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3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11-13)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에 참여하지 않는 데 그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어두움을 폭로하라고 명령합니다. 불신자들은 ‘빛의 열매’와 반대되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행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저지르는 죄들은 언젠가는 들어날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⑴ 명령 : 참여하지 말고 드러내라(11)
이제 성도들은 불순종의 아들들과 ‘함께 참여할 자’가 아닙니다(시편 1:1). 어둠과 빛은 본질적으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물러나고,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이 없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빛의 자녀들’으로 강력한 능력을 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① 어두움을 참여하지 말라(11a)
바울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동참하지 말고’고 명령합니다. 이곳에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이란 ‘빛의 열매들’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즉,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더럽고 부끄러운 행위들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분명히 거듭난 ‘빛의 자녀들’이지만, 아직까지 어둠의 행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어두움에 있을 때처럼 조용히 행동하면 죄가 들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직까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습니다. 어두움의 아들들이 행하니깐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들보다는 죄악의 강도가 깊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죄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바울은 더 이상 ‘빛의 자녀들’이 어둠의 행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② 어두움을 들어내라(11b)
바울은 어둠의 행위에는 ‘열매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열매가 없는 것’이 아무런 열매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열매를 맺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둠의 행위도 부정적인 측면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악하고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빛의 열매는 아니므로 열매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어둠의 행위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 어둠의 행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성도들이 드러내 보이라고 명령합니다. ‘책망하라’는 잘못한 사람을 나무라고 야단치라는 뜻이 아니라 빛을 비추어 어둠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빛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인하여 ‘어두움의 행위들’을 드러내야 합니다. 여기서 ‘어두움의 행위들’은 빛 안에서 행하지 않는 믿는 자들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만 불신자의 행위를 드러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5:12-13). 한편 성도들은 교회 안에 있는 몇몇 성도들 사이에서 악한 행위들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 성도들이 실패한 이유입니다(고린도전서 5장). 세상에 법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람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보다 더 무서운 건 하나님이십니다. 어두움의 사람들은 죄악을 범하다가도 빛의 자녀들을 보면서 멈추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들은 점점 어두움을 바르게 책망하지 못합니다. 어두움을 책망하지 못할 만큼 거룩한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두움을 향해 책망하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은 도리어 ‘너희들이나 잘해!’라고 책망합니다. 빛의 자녀로서 그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을 향해 책망할 수 있는 능력은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두운 속한 사람들같이 행했던 죄들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빛의 자녀들’로 설 때만이 강력한 빛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이 되려면,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⑵ 이유 : 그들의 행위는 부끄러운 것(12)
바울은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다’고 합니다. ‘은밀히 행하는 것’은 불순종의 자녀들이 행하는 일이 어두움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그들에게 빛을 비추므로 은밀한 것이 드러나게 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열매 없는 ‘어둠의 열매’가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은밀한 중에 행해지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행위를 그만두게 하는 방법은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라는 표현은 ‘음행과 더러운 것은 입에 담지도 말라’(3)고 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어둠의 행위는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부끄러운 것들이었습니다.
‘빛의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어둠에 빛을 비추어 그것의 더러운 실체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의 본질적인 역할이며 사명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빛을 비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둠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어둠의 행위에 동참하지 말고, 오히려 빛으로 어둠의 행위를 몰아내는 자가 되라고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⑶ 설명 : 빛은 행위의 진실됨을 보여줌(13)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둠에 빛을 비추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빛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어둠의 행위에 그 빛을 비추게 되면, 그 빛을 받아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보이게 된 것은 곧 빛 자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빛이 악한 행위들을 드러낼 때,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빛의 자녀들’은 그것들의 악함으로 보고서 자신뿐 아니라 다른 믿는 자들에게도 해가 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스스로 깨끗하도록 인도합니다(요한일서 1:5-7).
성도들은 더 적극적으로 은밀히 행하는 부끄러운 일들을 묵인하지 말고 항거하고 빛으로 밝혀야 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한 삶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빛을 등경 위에 두어야 합니다(마태복음 5:15). 그럴수록 칭찬하기 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망친다고 가혹한 처벌과 보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등대불이 꺼지면, 항해하는 배들은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빛을 꺼버리면, 수많은 영혼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이 빛을 세상에 밝히 비춤으로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할 것입니다. 성도들 개인적으로는 영혼에 감사와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심(14)
성을 지키는 파수꾼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언제 적군이 공격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근무시간에는 졸아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군사들이 깨어있지 않으면 ‘빛의 자녀들’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14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14)
에베소 성도들 중에는 구원의 소식을 듣고도 아직까지도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자들을 향하여 ‘잠자는 자’라고 칭합니다. 이제 빛을 보고서라도 잠에서 깨어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빛의 자녀들’로서 걸맞게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며 살라고 권고합니다.
깜깜한 어두운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불을 켜면 어두움이 사라지고 사방이 밝아집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나게 한 것입니다.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책망을 받고 깨어나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줌으로 죽음의 자들 사이에서 영혼이 깨어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어두움에서 ‘좋은 것이 좋다’는 것은 죄악의 열매뿐입니다. 하지만 빛에서 좋은 것은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들은 상황 이론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흔들림 없이 굳건히 바르게 세워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죽어있는 영혼들 사에서 잠자는 영혼들을 향해 ‘달리다굼!’(마가복음 5:41)하시면서 깨우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모두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혹시 당신의 영혼도 잠자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혼을 향해 주님의 거룩한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죽음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빛의 자녀’로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에 속할 때, 어두움에 방황하던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을 분별하고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빛을 어두움을 향해 비추어야 합니다. 선과 의와 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도들 때문에 어두운 세상이 점점 밝아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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