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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0-01)


야곱의 집에 출산 전쟁

창세기 30장 1-24절


 우리는 내일 일도 알 수 없고, 오늘의 의미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인생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종종 지난날을 돌아볼 때, 우리는 무릎을 치며 이때를 위함이라고 고백하며 찬양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유한한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의 고난을 묵묵히 이겨 내가면서 승리해야 합니다.

 

라헬은 오래도록 임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무려 넷이나 낳은 언니 레아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야곱에게 달려갔습니다. 언쟁의 시작됩니다. 야곱과 라헬이 결혼식에서 사랑하는 모습 이후 두 사람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부부싸움입니다. 그녀는 야곱에게 자신도 자식을 낳게 하라며 만일 자식을 낳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 이후 야곱의 두 아내 사이에서는 본격적인 출산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라헬의 여종 빌하의 두 아들(1-8)

인간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레아의 아픔이 좀 해소되는가 싶더니 라헬의 질투가 기승을 부립니다. 레아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선물이 라헬에게는 도리어 상처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사랑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붙임 콤플렉스 앞에선 열등감에 시달리기 일쑤였습니다.

1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1-8)

레아의 연달은 출산 소식과 더불어 더욱 낙심이 커진 라헬은 야곱을 찾아가 하소연하며 불임은 남편 탓이라고 떼를 씁니다. 애를 낳지 못하면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겁을 줍니다. 이것은 자살 의사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낙심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며, 또한 무자녀로 인해 자신이 낙심하여 병이 들거나 쇠약해져 시름시름 죽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나중에 아이를 낳는 중에 죽습니다(창세기 35:16-19). 여성에게 불임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며 종종 하나님의 저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임은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경험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사라나 리브가에 비해 인내심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라헬은 지금 불임의 책임을 남편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야곱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분을 내다’의 히브리어 ‘하라 아프’는 문자적으로 ‘~의 코/콧구멍이 타오르다’입니다. 야곱이 매우 크게 화를 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말하는 야곱은 불임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2). 태를 열고 닫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임신은 사람의 통제 밖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라헬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과 인내심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질투심과 경쟁심에 사로잡혀 성급히 행동합니다. 자신의 몸종 빌하의 몸을 빌려 자식을 얻고 야곱의 총애를 되찾아 오고자 합니다. 그녀는 ‘내가 그를 통해 세워질 수 있다’(개역개정,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고 말합니다(3). 이것은 자신이 대리모의 아들을 통해 야곱의 가문이 이어갈 수 있게 할 것이란 기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종 빌하를 야곱에게 ‘아내’로 주었고 야곱은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습니다(4). 여기서 ‘아내’는 후처나 첩을 의미합니다. 첩으로 불린 여자들은(창세기 16:3; 25:1; 30:4; 35:22) 동시에 흔히 아내로 호칭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족장 시대 이후 첩은 아내와 더 이상 동의어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지금 두 시녀 빌하와 실바를 차례로 법적인 후실 개념의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야곱은 지금 합법적인 첫째 아내 레아를 통해, 그가 그녀를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합법적인 장남이자 상속자인 르우벤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네 명의 아들이 태어났기에 이미 자신의 혈통 문제는 해결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재 라헬의 입장에서는 본인을 통한 후대의 가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빌하는 야곱에게서 단을 낳았습니다(5). 라헬은 자신이 원하던 대로 빌하가 아들을 낳자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니다(6). 단을 낳은 후 드린 감사의 기도를 볼 때 그녀가 인내심과 신앙심이 부족하긴 했어도 임신 문제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의 이름도 ‘하나님께서 판결하셔서 억울함이 풀렸다’는 뜻으로 단이라 지었습니다. 빌하는 이어서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해서 이겼다’고 선언하고 아들 이름을 ‘경쟁’, ‘씨름’이란 뜻의 납달리로 짓습니다. ‘크게 경쟁하다’의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경쟁/씨름으로 경쟁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씨름’으로 문자적으로 번역하면서 ‘하나님께서 관여하신 씨름’으로 혹은 ‘하나님과의 씨름’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라헬의 열심 있는 기도를 뜻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여러 모로 어색해 보이며 대리모에 의존하는 라헬의 신앙이 그 정도 경지는 아닌 듯합니다. ‘엄청난 경쟁을 했다’가 타당한 해석입니다.

 

레아의 여종 실바의 두 아들(9-13)

자긴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긴장감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수록 팽팽해져 갑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여인의 아들 경쟁은 자신의 여종들까지 동원하여 2차전을 이어갑니다. 추월한 자는 더 승점을 올리기 위해, 추월당한 자는 역전하기 위해 내달립니다.

9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9-13)

두 아내의 경쟁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레아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넷째 유다를 낳은 뒤 잉태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녀의 태가 닫혀서가 아니라 남편 야곱의 총애를 잃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레아는 라헬이 자기 시녀를 통해 두 아들을 낳은 것을 보고 자신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들여보냈습니다(9). 실바에게서 다시 아들이 태어났으며 레아는 그의 이름을 ‘복 되도다’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갓이라 지었습니다. 실바는 둘째 아들도 출산했습니다. 레아는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할 것이다’라고 찬양하며 ‘기쁨’, ‘행복’을 뜻하는 아셀이란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레아가 추가로 두 아들과 딸(14-21)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기대가 이뤄지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통해 사람에게서 자신의 무력함과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고백을 받아내십니다. 시종을 통해서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한 라헬과 레아가 이번에는 최음제로 쓰이던 합환채를 사용합니다.

14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15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16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7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9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21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14-21)

언니 레아는 승승장구합니다. 아마도 경쟁이 약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즈음, 합환채 사건이 발생합니다. 큰 아들 르우벤이 들판에 나가 합환채를 채집해 왔습니다. 합환채는 지중해의 다년생 식물로 구토제나 통변제로 쓰이는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무엇보다 성욕을 일으키는 최음제, 또는 임신 촉진제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참조. 아모스 7:13). 이 약재에는 마술적 요소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성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별명이 ‘합환채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이 약초는 ‘밀 거둘 때’ 채집했는데, 보통 팔레스타인의 밀 수확기는 음력 3월(양력 5월)의 봄철입니다. 이 식물을 두 아내가 서로 탐내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이것이 임신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라헬은 임신을 못한 상태이며, 레아는 출산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라헬은 레아에게 합환채를 달라고 요청합니다(14). 그녀는 다시 마술적 혹은 인위적, 의료적 방법을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습니다. 라헬은 합환채의 거래 조건으로 레아에게 야곱과의 동침을 양보하겠다고 말합니다(15). 아마 레아는 야곱과 오래도록 잠자리를 못하고 있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녀의 출산 중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입니다.

여기서 라헬이 비록 아들이 없지만, 잠자리에서 야합의 총애를 받으며 실제적 권력을 쥐고 있음이 확인됩니다. 합환채 교환과 더불어 레아가 남편과 동침할 권리가 확보되었습니다. 레아는 ‘내가 당신을 샀다(사카드)’는 말로 고용주를 자처합니다. 라반과 야곱의 혈육 관계가 상업적 거래를 통해 고용 관계로 변하더니 이제 두 딸과 야곱의 부부 관계가 합환채 거래를 통해 고용 관계로 변합니다.

그날 밤 야곱은 레아와 동침하였고 레아의 다섯째 아들 잇사갈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소원으 들으셔서 야곱을 통해 다섯째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 합환채를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임신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이 다시 한 번 증거 됩니다. 분명 레아의 소원은 끊어진 남편과의 잠자리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덤으로 그녀는 또 다른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품삯/보상을 주셨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그 아들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불렀습니다. 레아는 이어 여섯 째 아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는 남편이 ‘나를 영예롭게 하리라(자발)’(개역개정의 ‘나와 함께 살리라’보다 더 타당함)고 노래하며 아들의 이름을 ‘영광 받음’, ‘찬양 받음’을 뜻하는 스불론으로 짓습니다. 레아의 출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딸을 낳았는데 이름을 ‘심판’, ‘변론’의 뜻을 담은 디나로 지었습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음(22-24)

공교롭게도 이 숨 막히는 전쟁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한 방향은 아니었더라도 두 여인의 아들 경쟁을 통해 그분의 약속(창세기 28:14)은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이 아닌 아옹다옹하는 상황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22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22-24)

레아의 연이은 출산으로 라헬은 더욱 낙심이 컸을 것입니다. 합환채를 쓰지 않은 레아는 연달아 임신을 했고 합환채를 쓴 자신은 여전히 불임이었습니다. 태는 합환채가 아닌 하나님께서 여신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을 기억하셨습니다(자카르).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기억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구원 행동을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창세기 8:1; 19:29; 출애굽기 2:24).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습니다. 라헬은 아들을 낳고 하나님께서 비로소 자신의 수치를 씻어내셨다고 찬양하며 그의 이름을 요셉이라 지었습니다. ‘그가 더 하신다’는 뜻의 이 이름에는 추가적인 자녀에 대한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더해진 아들, 곧 베냐민의 출생을 예고합니다.


 부러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비교는 자신을 유리 감옥에 가두어 그 수준에 머물게 합니다. 욕망의 벽이 투명한 탓에 자신이 감옥 밖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고 주 안에서 축복하는 성숙함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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