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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9-02)

 


사기 당한 사기꾼

창세기 29장 21-35절


우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슬퍼하기보다는, 만나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새로운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픔과 고통을 준 사람은 자신의 행동은 쉽게 잊어도, 당한 사람에게는 두고두고 상처가 되는 법입니다. 자신의 행동에서 실수를 모른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보다 더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야곱이 하란에 온지 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찾아가 기간을 채웠으니 라헬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이미 그는 라헬을 ‘내 아내’라 칭하는데, 당시 관례로 약혼 관계는 이미 실질인 부부 관계로 인정되어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라반의 대답은 언급되지 않고 단순히 그가 곧바로 결혼식을 진행시키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22). 라반의 무반응을 통해 어쩌면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미 라반이 그 결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암시를 주는지 모릅니다.

 

사기 결혼을 당한 야곱(21-27)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야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정확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생깁니다. 또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게 됩니다.

21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21-27)

만 7년 기간을 채운 뒤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주소서’라고 말한 동사 ‘야하브’는 구약에서 아주 절박한 요구를 할 때만 나타납니다. 그가 얼마나 라헬을 갈망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구약에서 이미 혼전에 남자는 여자에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여자는 물론 남자 또한 혼전 순결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라반은 결혼식을 열고 사람들을 초청해 결혼 잔치를 벌였습니다. 결혼식 축하연은 1주일간 계속되었습니다(27; 사사기 14:17). 결혼식 당일 저녁 라반은 라헬이 아닌 큰 딸 레아를 얼굴을 가린 채 데려갔으며, 야곱은 그녀를 데리고 신방에 들어갔습니다(23). 라반은 레아를 사기극으로 시집보내면서 관례대로 여종 실바를 일종의 혼수품으로 딸려 보냈습니다(24). 당시 관례로 그런 혼수품과 여종은 여주인의 개인 소유물입니다. 라반은 야곱을 의도적으로 포도주에 취하게 했을 것이며 신부의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심야의 어둠을 이용하여 그를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은 라반의 누이 리브가가 털가죽 피부와 에서의 옷, 그리고 맛있는 죽으로 이삭을 속인 것에 비견됩니다.

라반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아무래도 큰딸 레아를 더 편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그녀가 큰딸이어서만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동생 라헬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버거웠을 주로 물 긷는 역할을 했던 목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 집안에 노동력이 부족해서 라헬의 역할이 상당히 컸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목축은 신뢰하기 어려운 종이나 삯꾼에게 맡기지 않고 가족들이 직접 감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아마 언니 레아는 집안에서 주로 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기질과 성향의 차이로 인해 들판을 누비던 에서와 집 안에서 지내길 좋아하고 조용했던 야곱의 생활 방식과 비교됩니다. 활동이 왕성한 에서가 남성적 매력이 더 있었다면, 목축을 하는 라헬은 햇볕에 그을려 오히려 여성적 매력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야곱이 우물가에서 목축을 하던 라헬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레아는 주로 집 안에서 지냈다면 여성미를 가꾸는 데 훨씬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라반이 혼기가 먼저 찬 레아를 시집보내기 위해 집 안에 두었는지 모르나 라반이 큰딸을 편애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아는 야곱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라헬에게 첫눈에 반했던 것도 아닌 듯합니다. 라헬이 우물가의 첫 만남에서 리브가와 같은 친절을 베푼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야곱이 라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물 길으러온 리브가와 물 먹이러 온 라헬은 역할이 달랐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오히려 라헬이 처음부터 야곱에게 호감을 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라반의 집에서 지낸 한 달 동안 야곱은 그녀의 미모와 매력을 발견하고 그녀의 내면을 살피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대조가 엿보입니다. 이삭은 큰아들 에서를 편애했고 라반은 큰딸 레아를 편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되고 신적인 인과응보, 혹은 자업자득의 원리가 실현됩니다. 야곱은 이삭과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얻었으나, 여기서는 야곱이 라반과 레아에게 속아 라헬을 얻지 못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왜 자신을 속였냐고 따집니다(25). ‘속이다’라는 동사는 에서가 야곱의 행위를 표현한 명사 ‘속임수’의 동사형입니다. 동일한 속임수를 이제 야곱이 당합니다. 위장술을 사용했던 야곱이 동일한 위장술로 당합니다. 원조 사기꾼이 도리어 사기를 당합니다. 장남 에서는 차남 야곱에게 사기극과 위장술로 지위를 뺏겼으나, 이번에는 장녀 레아가 차녀 라헬에게서 사기극과 위장술로 지위를 지킵니다. 라반은 위선적이고 교활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는 ‘우리 지방에서는’ 둘째를 첫째보다 먼저 주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받아칩니다(26). 하지만 그가 정직한 인물이었다면 처음부터 야곱과 계약할 때, 그런 관례를 말해줬어야 합니다. 아마 라반은 어디서 들었는지 야곱의 사기극 전말을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정곡을 찔러 ‘우리 지방에서는’ 둘째를 첫째보다 먼저 주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 집안에서는 둘째가 첫째 자리를 차지했을지 몰라도 여기서는 턱도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라반은 허를 찔러 야곱의 약점을 공략함으로써 그가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야곱은 더 이상 항변하지 못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라반은 큰소리치며 말합니다. ‘레아를 위해 7일을 채우라’(27). 이는 당시에 결혼식이 7일간 계속 진행되었음을 뜻합니다. 아마 ‘7’은 완전수로서 결혼의 완성을 뜻하는 기간일 것입니다. 태어난 지 7일이 지나 8일째에 남자 신생아가 할례를 받는 이유도 동일한 숫자의 신학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라반은 7일의 결혼 축하연이 끝나면 라헬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27). 이것은 야곱이 라헬을 위해 다시 7년 봉사를 하면 그 후에 그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즉시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삼되, 대신 신부 값으로 7년간의 봉사를 필히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라반은 이렇게 야곱을 혈육이 아닌 고용인처럼 부리며 착취합니다. 라반은 심지어 자신의 딸들도 이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들의 이름은 각각 ‘암소’와 ‘암양’을 의미하는데 목축을 하는 가족에게 적절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라반은 레아와 라헬을 자신이 기르는 가축처럼, 말하자면 매매하려고 내놓은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라헬을 얻은 야곱(28-30)

신부에게 가장 기쁘고 행복해야 할 날이 가장 슬프고 잔인한 날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아내로 산다는 것, 그것도 동생을 사랑하는 사람과 산다는 것, 더욱이 7일 후면 사랑받는 아내의 자리마저 동생 라헬의 몫이 돤다는 것, 레아의 마음 밭은 이미 피밭입니다.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28-30)

야곱이 레아와의 결혼 축하연을 정상적으로 마치자 7일 후에 라반은 약속대로 라헬을 그에게 아내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위해서 여종 빌하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냈습니다. 야곱은 다시 라헬과 잠자리를 가졌고 그는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했기에 다시 7년 동안 라반을 인내하며 섬겼습니다. 여기서는 7년을 며칠처럼 생각했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중 7년의 세월이 처음 7년과는 분명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아가 네 아들을 낳음(31-35)

하나님의 사람은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아닌 대화와 양보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마음을 헤아려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번째 자녀를 얻고 나서야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야곱의 아내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하나님의 신부 레아로 정체성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레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31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31-35)

레아는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원문은 ‘미움을 받았다’인데 이것은 남편의 감정적인 배제를 뜻합니다. 그러나 여러 번역들이 이것을 ‘사랑을 받지 못했다’로 순화합니다(NIV; NASB).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태를 먼저 여시어 연달아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레아가 낳은 아들들의 순서는 각각 르우벤, 시므온, 레위 그리고 유다입니다. 그녀는 각각의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처음 세 아들의 이름에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는 뜻을 담았습니다: 르우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보셨다’; 시므온,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 레위,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할 것이다’; 유다,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라’. 레아가 아들들에 부여한 작명의 의미들은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 엿보게 합니다. 그녀는 넷째 아들 유다의 이름에는 하소연이 아닌 찬양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넷째 아들 유다와 더불어 그녀의 출산이 멈췄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불임의 상태가 되었다는 뜻일 수 있으나 남편 야곱과의 잠자리가 중단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창세기 30:14-20). 어쨌든 넷째 아들과 더불어 그녀의 한이 풀린 듯하며 그녀는 비로소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유다는 장차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지파로 부각되어 유다의 뿌리에서 다윗이 출현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이렇듯 인간의 술책에 야곱은 사기 결혼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치 않던 아내를 통해 섭리하시면서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야곱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두고 일하십니다. 레아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선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할 수 없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도 반드시 깨닫게 될 날, 회복될 날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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