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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3-01)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온 아브람

창세기 13장 1-18절


사람들은 대게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치관이 되고, 그 가치관을 따라서 우리는 욕망하며, 그 욕망을 따라 우리의 시간과 돈과 관계가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람과 룻의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애굽의 바로와 고별한 후 아브람은 네게브로 ‘올라와’ 가나안으로 복귀합니다. 그의 복귀 시점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가나안의 기근이 해결된 후였을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복귀한 후 땅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으며, 이 일을 계기로 아브람과 롯은 결별하게 됩니다.

 

가나안으로 복귀한 아브람(1-4)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일곱 번을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이제 실패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1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4)

아브람은 애굽에서 ‘복의 근원’이 아니라 ‘재앙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을 두고 애굽으로 내려간 일, 애굽에서 아내 사래를 누이로 속이는 일 등,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친히 개입하여 구원하여 다시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도록 하십니다. 이전보다 더 큰 부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1)가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바로가 아브람을 떠나보낼 때 썼던 표현과 동일합니다. 다만 여기에는 롯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것은 곧 일어날 롯과 관련된 사건을 예고합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잃은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해주며, 오히려 ‘모든 소유’라는 표현에는 그가 넉넉하게 복을 받고 돌아 왔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귀환 대열의 목록에 롯이 마지막에 나열된 것은 아브람과 롯 사이에 벌어질 거리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아브람에게는 가축뿐 아니라 금과 은도 풍부했습니다. 문자적으로 하면 그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심히 무거웠다’입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표현할 때는 ‘라브’가 많이 쓰이는데, 대신 ‘카베드’를 쓴 것은 앞서 기근이 매우 ‘심했다’(카베드)는 표현과 대조하기 위한 의도일 것입니다. 여기서 은과 금이 처음으로 재산 목록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애굽에서 사래와 관련한 사건으로 바로에게서 많은 가축을 받았지만, 거기에서 귀금속을 얻었다는 말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량의 은과 금은 그가 애굽에서 여호와의 복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직전에 애굽 사람들에게서 은과 금을 받은 사건과 비교됩니다(출애굽기 12:35-36). 아브람의 애굽 이탈과 가나안 복귀는 출애굽 사건을 예고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아브람은 정확히 역순으로 가나안 땅에 복귀합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그들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이르는데, 이곳은 애굽으로 가기 전에 거처로 삼았던 곳입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제사했는데, 애굽에서 올라와서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고 제단을 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애굽에는 아브람이 예배를 드렸다는 표현이 한 곳도 없습니다.

 

아브람과 롯의 결별(5-13)

세상은 피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경쟁을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라도 삶의 성패는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배려할 줄 알고 나누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가나안과 브리스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골육’끼리 다를 수 없어 롯에게 거할 땅을 먼저 선택하게 합니다.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5-13)

아브람이 복을 받을 때, 조카 롯도 하나님의 복을 누렸습니다. 그는 조카 롯에게도 복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근이 재앙이 아니듯이, 많은 재물이 자동적으로 축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 아브람과 롯 모두 더 부강해졌기 때문에 좁은 땅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롯에게 거주할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했고, 롯은 요단 계곡 근처를 선택합니다.

(1) 목초지를 둘러싼 분쟁(5-9)

롯도 아브람의 복의 수혜자로서 심히 많은 가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이미 복의 통로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축이 많아서 그곳의 목초지는 아브람과 함께 목축을 하기 에는 매우 협소하였습니다(6). 때로 축복이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브람과 조카 롯은 반-유목민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잠시 거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정착할 곳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반-유목민은 유목민처럼 목초지를 찾아 계속 이동하지 않으며, 한 곳에 영구적 거주지를 마련한 뒤 목초지가 있는 주변 지역을 제한적으로 돌아다닙니다. 이때 우물은 생존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 되며, 우물을 중심으로 거점을 마련합니다. 세력이 커지면 자주 목초지와 우물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곤 했습니다(창세기 26:12-22; 36:6-7). 아브람과 롯 사이에서도 각자의 목자들 간에 목초지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들 곁에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7)는 말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기록한 이유는 그 땅이 더는 여유가 없었음을 시사하며, 아마 아브람과 롯이 정착을 다투던 지역에는 이 두 종족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형제 의식을 강조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는 조카 롯에게 통 큰 제안을 내놓습니다. 롯에게 그가 원하는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합니다. 당시 관례대로 하면 아버지가 없었던 롯은 아브람에게 입양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롯의 후견인이면서도 그에게 권리를 양보하고 있습니다. 분쟁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롯과 대조되는 아브람의 도량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 결단일 것입니다.

(2) 아브람을 떠난 롯(10-13)

롯은 아브람의 제안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할 땅을 찾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요단강 유역의 땅을 선택했습니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그 땅은 목축에 가장 적합한 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요단강 남쪽 계곡에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만일 소알과 소돔이 많은 학자들 견해대로 사해 서쪽에 위치한다면, 롯이 본 범위는 요단강 남단에서 더 남쪽으로 사해의 서쪽 분지를 포함할 것입니다. 롯에게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 같았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애굽 땅은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토지인 나일강 삼각주 일대를 말합니다. 롯이 관찰한 요단 계곡과 사해 서편에는 샘들이 많아 여리고, 엔게디, 더 남쪽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여러 도시들에 사람이 몰려 살았습니다. 창세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기 전에는 그곳이 매우 기름지고 물이 넉넉한 땅이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브람이 차지한 땅은 서쪽의 반대편으로 고지대로 강과 하천이 없고 샘도 많지 않아 물이 부족했으며, 항상 비를 기다려야 하는 지역입니다. 아브람은 물이 넉넉하지 않았던 벧엘 근처의 가나안 땅에 여전히 머물게 됩니다.

롯은 동쪽으로 이동합니다(11). 그가 선택한 땅은 요단강 남단 유역과 사해 서쪽 지역입니다. 이곳은 약속의 땅 동쪽 경계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약속의 땅의 변두리이며, 훗날 롯의 후손은 거기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 요단강 동편에서 모압과 암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롯은 여전히 약속의 땅의 일부에 남아 있으나 그곳은 변두리이며, 더 동쪽으로 진출할 때는 약속의 땅을 등지게 되는 곳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동쪽’ 모티프가 나타납니다. 롯은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보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창세기는 인간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과 멀어질 때 동쪽으로 떠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24; 4;16; 11:2). 롯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따른 선택은 에덴동산에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던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탐욕이 재현된 일입니다. 롯이 동쪽으로 이동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는 소돔에서 멈추며 거기에 거주합니다(창 14:12). 그러나 소돔은 죄악의 범죄 도시였습니다(13). 결국 그가 선택한 땅은 심판을 받았으며, 그의 후손들인 모압과 암몬은 약속의 땅 경계선을 넘습니다.

 

이 땅을 네게 주리라(14-18)

아브람은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롯에게 먼저 거할 땅을 선택할 권리를 양보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라고 권하십니다. 아브람이 바라본 동서남북은 롯이 선택하고 차지한 땅까지 포함합니다.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4-18)

롯이 떠난 후 아브람의 심정은 단지 좋은 지역을 놓쳤다는 서운함보다도 롯을 떠나보낸 허전함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벧엘의 위치로 알려진 현대의 베이틴 시 일대는 높은 고지대입니다. 노트(M. Noth)에 의하면, 그곳에 가나안 땅 동서남북이 모두 보이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지중해가 보이고 동쪽으로 요단강 건너의 산들, 북쪽으로 헤르몬 산, 남쪽으로 사해가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과 후손의 약속을 확증하십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네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번성케 하리라’. ‘땅’과 ‘후손’은 아브라함 언약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이며, 앞으로 오경과 이후의 성경의 역사는 이 두 가지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 사방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그 땅의 사방 전체가 아브람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아브람은 이미 그 땅을 북에서 남으로, 다시 남에서 북으로 이동을 거듭했으며, 이후의 삶에서도 이 땅 전역에서 많은 사건들에 연루되며, 활동 범위는 북쪽의 단 지역까지 이릅니다(창세기 14:14).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헤브론으로 이동함으로써 실제로 그 땅을 두루 다닙니다. 그곳은 벧엘에서 남쪽으로 약 46km에 위치합니다. 헤브론 또한 이후 역사에서 벧엘 못지않게 정치적, 종교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중심지가 됩니다. 헤브론 인근의 ‘마므레’라는 곳에도 세겜 땅의 모레처럼 상수리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벧엘과 헤브론의 중간 지점에 예루살렘이 소재합니다.

아브람은 여기서도 아마도 이방인들의 제의 장소로 추정되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새롭게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분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데로, 언약하시고 지켜주시는 참 신실한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자신이 보고 좋은 데로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눈을 들어 보라하신 것을 보았을 때, 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사실에 감사하면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다시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람은 새로운 눈이 열렸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애굽으로 내려갔고, 자신이 고안해낸 계획으로 안전을 도모하려 했던 그가 이제 하나님께서는 보라고 하실 때까지는 스스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신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어떤 눈을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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