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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1-01)

 


바벨탑 이후 분산된 인류

창세기 11장 1-9절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욕망은 어디서 멈출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입니까? 자기 생존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망상은 얼마나 지속된 것입니까? 본문은 인류 역사가 추구해온 배반과 반역의 역사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이미 죄성이 유전되는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려는 의지를 가졌습니다. 특히 홍수 후에 인간이 다시 번성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또 다시 그 교만성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 온 땅의 많은 종족들이 갈라져서 살았으나 아직은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는 야심과 흩어짐을 면하려는 계획으로 바벨탑을 건설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시날 평지로 이동한 인류(1-2) 

인류는 시날 평지를 만나 큰 도시국가와 같은 성을 쌓고 거대한 탑을 건설합니다. 심판에 대한 저항이며,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주 되심을 부정하고, 복 주심을 욕망의 도구로 삼는 인간의 교만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벨 성의 균열을 위해서는 세상을 배신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1-2)

창세기 11장은 시간적으로 인류가 흩어지는 것을 보고하는 10장에 앞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여 집니다. 의도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는 12장을 준비하기 위해 12장의 무대로 11장을 여기에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학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든지 당시 온 인류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성경의 진술입니다. 사실 언어학적으로도 인류의 6천여 개의 언어는 결국 한 뿌리, 즉 단일 기원을 가진다는 견해가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다’는 표현에 대해 해밀턴은 당시 언어는 세계 공용어(언어)와 통상어(말)로 구분 되었기에 둘은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민족들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당시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중복어법일 뿐입니다.

인류는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 정착했습니다. 구약에서 언제나 ‘아무개가 자리 잡았다/거류했다’는 표현이 나올 때는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징조입니다. ‘동방’은 단순한 방향 지시만은 아닌 하나님을 대항하는 인간의 움직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날 땅은 구약에서 부와 권세를 상징하는 땅이었습니다. 예컨대, 여호수아 7:21에서는 여리고 성의 헤렘으로 바쳐진 모든 물건들에서 아간이 훔친 장물 목록에 시날에서 생산된(시날 산) 옷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바벨 지역이 높은 수준의 산업과 문화를 지녔음을 엿보게 합니다.

 

바벨탑 건축과 인류의 결집(3-5)

반역을 꾀할 수 없는 원인이 한 언어에 있음을 아시고 언어를 섞어놓으십니다. 언어의 혼란은 힘을 분산시켜 악의 응집력을 약화시켰고, 국가 단위로 견제와 경쟁을 유발시켜 통합된 거대 제국의 출현을 막았습니다. 잘못된 도모에 대한 심판이자 세상을 보존하시려는 온혜로운 조치입니다.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3-5)

시날 평지에 집결한 인류는 거대한 성을 쌓아 강력한 제국을 구축하길 꿈꿨습니다. 대규모 도시 건축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돌을 대신해서 단단한 벽돌을 구웠으며 진흙 대신 역청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진흙이 아닌 역청으로 벽돌을 구웠다고 이해해선 안 됩니다. 진흙으로 번역된 ‘호메르’는 진흙뿐 아니라 회반죽을 의미합니다. 역청은 원유가 분출되는 지역에서 채취한 현대의 콜타르나 아스팔트로 보입니다. 이것을 벽돌 사이에 발라 단단히 붙게 만듭니다. 벽돌 건물에서는 회반죽보다 역청이 훨씬 더 건물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산이 거의 없이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건물도 대부분 돌이 아닌 벽돌로 지었습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신전을 비롯한 건축물에 돌을 사용하면서 돌들 사이와 벽면에 회반죽을 발랐습니다. 역청을 바르며 벽돌로 올린 건물은 대단히 견고하여 오늘날에도 그런 건물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도록 올리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말자’고 뭉쳤습니다. 이것은 대도시 건축입니다. ‘탑’은 아마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구라트라는 신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신에게 올라가 신이 그 신전에 내려오게 만들려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이름을 내자’고 선언합니다. 문자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 이름을 만들자’는 뜻입니다. 이름의 히브리어 ‘셈’은 노아의 선택된 계열의 아들 셈과 동일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업적을 이루어 자신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선택된 계열의 이름을 셈으로 지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계보를 통해 그들의 이름을 높이는 위대한 일을 할 것임을 시사 합니다.

또한 인간은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하며 뭉칩니다. 인간은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흩어짐은 힘의 분산을 의미하며 소통과 문명의 구축에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육과 번성을 통해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창조 규례와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언어의 혼잡과 인류의 분산(6-9)

바벨은 음행의 포도주로 유혹하는 음녀의 도성이요, 인간 정신과 문명이 집결되는 곳이자 유례없는 번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은 무너질 것이고 세상의 왕들과 상인들은 울게 될 것입니다. 음녀의 미혹에 취하지 말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기 바랍니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7-9)

하나님께서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인동형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려다보셨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내려오심’이라는 표현에는 인간의 시도에 대한 비아냥이 엿보입니다. 인간들은 엄청난 노력으로 탑을 높이 쌓았으나 정작 하늘에서는 그 탑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위대한 업적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내려온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비웃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하늘에 계신 이가 옷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편 2:1,4). 인간은 하늘에서 볼 때 메뚜기 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이사야 40:22).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헛된 망상과 도전을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혈통의 분산이 아닌 보존을 추구하며 단일 대오를 형성하려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강제로 흩기로 결정하십니다. 이들의 행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만일 이대로 두면, 인간은 통제 불가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무한히 정당화될 수 없으며 제약되어야 합니다. 계획과 행동에 제약이 없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인간에게는 선악과의 제재가 필요하고 율법과 계명의 규제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제재를 가하시어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없게 하는 것처럼 하늘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려가서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자’고 말씀하십니다. 혹자는 5절에서 이미 내려오신 하나님이 여기서 다시 내려온다고 말하는 것을 모순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것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의 문학적 기법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계시고 그것을 통제하며 간섭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자(천사)를 지상에 보내어 모든 것을 통제하십니다. 지상도 하늘 왕이신 하나님의 창조의 제국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우리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천사들과의 천상 어전회의의 언어 형식을 사용하나 이것은 천사들과의 협의에 의한 결정이 아닌 하나님의 자기 결정권의 행사입니다. ‘우리가 언어를 혼잡하게 하자’는 표현은 분명히 ‘우리가 벽돌을 굽자’는 것과 대조됩니다. 인간은 벽돌을 구워 흩어짐을 면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갑작스런 언어의 혼잡으로 그들은 더 이상 단합하면서 건축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언어의 분산은 힘의 분산입니다. 이로써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던 자들이 흩어집니다. 그들이 가장 원치 않았던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여태까지 추방과 멀어짐은 언제나 죄의 결과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고 가인이 또한 그러했으며, 이제 시날 땅의 인류가 그러합니다. 여기서 도시 건설의 중단만 언급되고 탑에 대해 침묵하는데, 탑보다는 분산을 거부한 거대한 도시의 건축 자체가 하늘을 향한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영원한 제국을 만들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습니다. 시날 땅의 이름이 바벨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이름의 기원이 언어 혼잡 때문이었다는 원인론적 설명이 덧붙여집니다. 여기서 ‘바벨’에 ‘혼동’, ‘섞임’이란 의미가 부여되었으나, 원래 이 이름은 아카드어 ‘밥일루(Bab-ilu)’에서 기원했습니다. 일루(ilu)는 무슬림의 신 알라의 정확한 이름 하일라(‘그 신’)에서 보듯이 ‘신’이란 뜻입니다. 밥일루는 ‘신의 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기자는 바벨이란 이름과 ‘뒤섞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발랄’을 연결시켜 거기에 ‘혼동’, ‘혼란’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이 바벨의 언어 분산이 일시적으로 원 상태로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9장). 천하 각국에서 온 예루살렘 방문객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터져 나온 소리를 마치 한 언어로 소통하는 것처럼 모두 자기 지역의 언어로 들었습니다. 복음이 한 언어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로써 인간 나라의 건축이 좌절되도록 언어가 분산되었으나, 하나님 나라 건축을 위해 언어의 장벽이 사라졌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을 때 인간의 성취는 높아 보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할 때 인간의 문명은 크고 위대해 보입니다. 하지만 창조와 구원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인간 역사의 크기는 바르게 보이고, 인간의 망상이 다다르게 되는 결과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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