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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09-01)


노아와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

창세기 9장 1-17절


하나님 말씀이 생명인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시며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삶을 구성하고, 질서를 만들어내며, 삶을 규정하고 창조하는 능력 자체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책임에 귀속하시는 위대한 은혜입니다. 언약 백성인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홍수 후의 세계는 재창조된 세계이고 노아는 새로운 아담입니다. 아담에게 부여된 명령이 이제 노아에게 부여됩니다. 이것은 땅을 쟁기질해서 뒤엎은 뒤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홍수가 물러가고 질서 잡힌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으며, 그 밭에 노아와 생존한 생명의 씨앗들이 심깁니다. 그들의 생육과 번성을 통해 다시 지구는 생명으로 채워질 것이며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것입니다.

 

인간의 재 번성 명령(1-3)

하나님께서는 끝없는 은혜로 죄를 이기시고 악을 다스리십니다. 악한 세상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처럼 행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은 또 실패하겠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노아를 선택하시고 그와 함께 다시 은혜 언약을 맺으십니다. 인류는 하나님께 두 번째 기회를 받은 것입니다.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1-3)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노아에게도 다시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1-7절은 창세기 1:28-29의 반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인간에게 복을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재차 내리십니다. 이러한 명령은 노아 홍수의 심판을 통해 부패한 세상이 전면적으로 뒤집히고 하나님의 둘째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육식이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피 섭취가 금지되며 피의 살육을 한 당사자는 그 피값을 치르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생태계의 변화와 함께 육식이 암묵적으로 허용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목축을 전문적으로 시작하고 제사를 드렸으며, 정-부정 동물이 노아 이전에 이미 구분되고 있었다는 것은 또한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원시적 규범으로 나뉘어 있었음을 시사 합니다. 짐승들은 인간을 두려워 할 것입니다(2). 타락 전에 동물은 인간의 통제 하에, 서로 완벽한 교감 속에 공존했습니다. 인간과 짐승 모두에게 채식만이 허용되었기에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인간과 동물과 자연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특히 짐승은 이때부터 만물의 지배권을 지닌 인간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2절의 진술은 홍수 이전에는 인간과 짐승이 평화로운 공존을 했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아마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죄가 우주에 들어와 창조 세계에 문제가 생겼고, 아마 동식물의 유전적 변화도 발생하여 육식 동물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때 여전히 인간은 짐승보다 우월했기에 난폭한 짐승마저 통제할 수 있었으며, 짐승은 인간을 언제나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홍수 이후에는 이러한 생태계 질서가 더욱 확고해집니다. 노아의 후손인 새로운 인류는 더욱 강하게 자연계와 동물계를 통제하는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합니다. 육식은 공식화됩니다(3). ‘동물’로 번역된 ‘레메쉬’은 호흡을 하며 움직이는 생물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육식의 허락은, 훗날 율법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는 바와 같이(레위기 7:15; 신명기 14:21; 에스겔 4:14), 자연사나 물어 뜯겨 죽은 짐승처럼 이미 죽은 짐승의 사체는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도살해서 죽인 짐승은 문제가 없습니다. 육식의 허용이 ‘동물’로 총괄되므로 정-부정 짐승의 구분이 없습니다. 이것은 온 인류를 위한 보편적 육식의 허용일 수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인 인류는 아무 짐승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황상 선택된 계열로 이어지는 노아의 가계는 노아 이전의 택자의 가계가 그랬던 것처럼 정결한 짐승을 먹었을 것입니다.

 

피 섭취 금지와 피 흘림에 대한 징벌(4-7)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사랑해야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앞에 민감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세상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언약으로 그리고 무지개로 확인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4-7)

노아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언약이 채결되었습니다. 이제 인류에게 여러 가지 의무들을 포함한 언약과 하나님의 약속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육식에 제한이 가해집니다. 그것은 짐승의 피를 섭취해선 안 된다는 명령입니다. 피 자체를 마시는 경우는 없으며 다만 고기를 먹을 때 피를 함께 섭취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동물의 피를 완전히 빼낸 다음 고기를 먹으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분명히 육식의 허용이 야만적 도살을 허락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목을 따서 피를 안 뺀 짐승이나 피가 덜 빠진 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피를 먹는 셈입니다. 여기서 레위기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피 섭취의 금지가 최초로 언명됩니다(레위기 3:17; 7:26-27; 17:10-14).

첫째 창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가 금단의 열매로 허용되지 않은 것처럼, 둘째 창조에서는 노아와 가족에게 피가 생명을 상징하면서 금지됩니다. 이 피 금지는 노아와 가족에게 명령한 것이므로 택자 계열은 물론 비택자 계열에게도 유효합니다. 따라서 노아 이후 모든 인류는 원칙적으로 짐승을 피째 먹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노아 이후 비택자인 모든 민족들은 피 섭취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밀그롬에 의하면, 고대 근동 지역의 어떤 민족과 종교에서도 피 금지가 법령화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 금지는 이스라엘만의 특유의 율법입니다. 구약 시대에 피 섭취는 분명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관행과 풍속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피는 이미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 이후, 피의 의미와 기능은 모두 성취되었기에 더 이상 피에 그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된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은 짐승과 피의 섭취 금지는 당시 유대인들을 포교하기 위한 임시적이며 전략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과 바울의 선언대로 신약 시대에는 어떤 것도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으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우상의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며 자유함 가운데 먹을 수 있고, 목매어 죽인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피마저도 이제 음식으로 가합니다. 생명이 위독하면 헌혈을 통해 몸이 피를 흡수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인간의 생명을 누군가가 해하면, 그 살해자가 자신의 생명으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5).

인간 살인자가 되었든 동물 살육자가 되었든 마찬가지입니다. 짐승도 예외가 아닌데, 바로 이런 이유로 후대의 율법은 사람을 들이받은 소는 죽이라고 명령합니다(출애굽기 2:28-29). 동물의 피를 흘릴 수 있으나 피 섭취가 금지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피는 흘리는 것 자체가 금지됩니다.

6절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라는 본문이 해석의 난제가 있지만, 다음과 같이 번역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그 사람에 의해 그의 피가 흘려져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은 그 생명을 해한 사람의 피로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동해동형법처럼 생명에는 생명입니다. 7절에서 다시 한 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8-17)

하나님께서는 이제 홍수와 대비되는 최후의 심판이 있기까지(베드로후서 3:1-7) 창조의 갱신을 통해 자연뿐 아니라 인간마저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오래 참고 기다리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기를 바라십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혈기 있는 모든 생물을 보존하시려는 자신의 의지를 구름 속에 둔 무지개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8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8-17)

이 언약이 우주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표징으로 주신 무지개를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무지개가 수평선 위에 드리우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 사역에 대한 신실하심을 증거 하는 포괄적인 표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표징들은 언약에 참여한 자들에게 언약 규정들을 지켜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통해 영원토록 약속하실 것입니다.

(1) 노아 언약의 대상(8-11)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수립하십니다. 하나님과 노아는 최초의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짐승이 언약의 수혜자가 됩니다. 이것은 안식일에 가축을 부리지 말라는 계명에서 가축도 안식일 법의 통제를 받는 것에 비견됩니다. 율법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땅, 자연의 영역까지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질서가 실현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언약의 증표 무지개(12-17)

노아 언약은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살아남은 생물과 맺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언약의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무지개입니다. 히브리어 ‘케쉐트’는 ‘활’을 뜻합니다. 여호와는 활을 들고 계십니다.

고대 근동에서 활을 든 신의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신들은 활을 들고 전쟁을 수행하는 용감한 전사입니다. 무지개는 활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활입니다. 여호와는 활을 하늘에 걸어두십니다. 이것은 종전과 평화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더 이상 활시위를 당기지 않으신다는 표시입니다. 무지개가 활이라면 폭풍우는 화살이었으며 그분은 화살인 폭풍우를 땅을 향해 날려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영원히 노아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어 이제 홍수로 생명들을 멸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전 지구적 기후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큽니다. 그러나 홍수가 그친 후 출현한 무지개를 지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무지개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노아 홍수 전에도 시간 주기의 기준이 된 태양과 달은 떴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한 물보라 속에는 어디서나 무지개가 보입니다. 따라서 이 무지개와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은 무지개의 새로운 출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무지개를 재해석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또한 노아 홍수 전에 궁창의 물 층의 존재로 지구가 온화했으나, 그것이 다 쏟아져 태양의 자외선 과다 노출로 인간 수명이 크게 줄었다는 주장 역시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순간마다 꺼내 보는 빛나는 보석과 같습니다. 불확실성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언약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날마다 그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언약의 말씀을 가진 자만이 세상을 이기고 확신 가운데 이 땅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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