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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06-01)

 


인류의 타락과 노아의 계보

창세기 6장 1-22절


번성한 인간은 만연한 죄악으로 세상을 더럽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며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게 하십니다. 그분의 단호한 ㅍ쳥가와 심판의 결심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보여줍니다. 심판의 경고를 통해 오늘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6장은 3장에서 시작된 인간의 죄가 최고조에 이른 시대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은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불렀습니다. 폭력과 성적 일탈로 얼룩졌으며 폭압적인 통치자들뿐 아니라 모든 육체가 부패하였습니다. 5장의 택자 계열의 족보에 이어 6장은 타락한 계열이 지배한 무질서한 세상을 묘사합니다.

 

인류의 타락(1-5)

세상은 부패하고 포악이 가득했습니다. 여자를 폭력적으로 취하였고, 네피림이라는 호전적인 영웅을 중심으로 결집하였습니다. 힘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타락한 희망 없는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침판하려 하십니다. 성이 상품화되고, 돈이 숭배되는 시대에 의로움을 지켜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성’하는 복을 주셨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기 좋아하는 대로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사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1-4)

하나님께서 번성의 복을 주셔서 인류는 죄악 가운데서도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1절에서 ‘(사람의) 딸들이 나니’라고 언급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힌트를 제고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히브리어 ‘브네 엘로힘’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신들의 아들들’로 둘 다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어구에 대해 몇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들’은 택자인 셋 계열의 경건한 남자들을 말하며, ‘사람의 딸들’은 비택자인 가인 계열의 불경건한 여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1절에서 사람이 번성하면서 낳은 ‘사람의 딸들’이 단지 가인 계열로 제한된다는 모순을 내포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들의 아들들’로 번역되어야 하며, 이 경우 이들은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영물이며, 인간 여성들과 음란하게 성적 관계를 맺어 후손을 퍼트렸습니다(4). 이 견해는 초기부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견해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천상의 존재를 가리킨다는 것을 근거로 듭니다(시편 29:1; 욥기 1:6). 이것은 여전히 일부 해석가의 지지를 받지만, 천사와 같은 영물은 인간과 성적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거부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고 확증하셨습니다(마태복음 22:20; 마가복음 12:25). 셋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당시 폭력을 휘두르며 신처럼 군림한 폭군 왕들로 간주합니다. 이 경우 이 표현은 요즘 유행하는 소위 ‘신의 아들’이라할 수 있습니다. ‘엘로힘’은 실제로 왕 같이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가나 영웅에게 붙는 수식어이기도 합니다(사무엘하 7:14; 역대상 17:13; 시편 82:6; 참조. 출 21:6; 22:8,9,28의 ‘재판관’으로 번역된 엘로힘). 고대 가나안 지역의 왕들 또한 ‘신의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이 폭압적인 독재자들이 ‘사람의 딸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취하여 성적 일탈을 일삼으며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 해석은 4절의 네피림 및 폭군이었던 고대의 용사에 대한 진술과 잘 어울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나의 영’은 창조 시에 혼돈의 수면 위에 임재하여 세계를 정돈하며 창조를 완성한 하나님의 성령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루아흐’는 ‘생명의 기운’(life-giving power)을 뜻하기도 하므로(창세기 6:17; 7:15; 에스겔 37:3-9; 참조, 창세기 2:7) 이것은 인간으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거두어 가신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 기한이 120년으로 한정되며, 이것은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는 진술과 잘 부합합니다. 인간의 날이 120년이 된다는 견해는 둘로 팽팽히 나뉩니다. 첫째는 120년 후에 홍수가 임할 것이라는 암시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실제로 6장이 독자들에게 홍수가 임박했다는 조짐을 알리고 있기에 일리가 있습니다. 또한 노아는 이때부터 120년간 방주를 지었다고 해석되곤 합니다. 다른 견해에 의하면, 이것은 급격히 짧아진 인간의 기대 수명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홍수 이후에 노아를(아마 가족 포함) 제외하고는 인간들의 수명이 급격히 짧아지므로 더욱 받아들일 만합니다. 물론 홍수 이후에도 120세 이상을 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야곱은 147세, 아론은 123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수명도 결국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모세의 형 아론이 120세를 넘긴 마지막 인물입니다. 모세가 120세까지 살고 오경이 막을 내리고 이후에는 모두 120세 미만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예고된 기대수명을 채운 표준적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그의 수명은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매우 의도적인 수명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네피림이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네피림에 대한 언급은 이어지는 고대의 폭군들을 묘사하는 설명구임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이 다시 언급되는데, 그들 사이에서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 태어납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 폭압적인 통치자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들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네피림으로 규정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판의 선고와 은혜를 입은 노아(5-8)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십니다. 하나님의 후회와 탄식은 심판의 결심으로 이어져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우리 사회는 근심이 아닌 기쁨과 희망을 드립니까? 한탄하실 만한 모습이 있다면 바로잡고, 우리로 인해 세상이 보존될 수 있도록 의와 경건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5-8)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 찬 세상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신다.’ 이것은 언뜻 신학적으로 난감할 수 있으나 구약은 빈번히 신인동형론적 기법으로 하나님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지의 불변성이 절대적이라고 오해해선 곤란합니다. 인간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언제든 변경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분의 최종적 목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더불어 지상의 모든 생물들을 홍수로 쓸어내실 계획입니다. 수중 생물들은 홍수의 참사에서 제외되는데 그들이 물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습니다.

 

노아의 족보와 부패한 땅(9-13)

모두가 부패할 때, 노아는 홀로 의의 삶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방주를 예비하라는 명령에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노아의 의로움은 말씀하신 바를 순종하여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믿음 곧 순종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겠습니다.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9-13)

간략한 노아의 족보(톨레도트)와 더불어 서사는 다시 전환점을 이룹니다. 노아에 대한 인물 평가가 이어집니다. 그는 그 시대의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늘 동행하던 자였습니다. ‘완전한 자’란 ‘흠 없는 자’(타밈)란 뜻으로 이 표현은 흠 없는 짐승에 사용됩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에녹의 삶과 병행을 이룹니다. 에녹처럼 노아도 홍수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세 아들, 곧 셈, 함, 야벳을 낳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세상은 극도로 부패하고 포악해졌습니다. ‘모든 육체’란 모든 사람을 말하는데, 이것은 온 세상의 타락과 부패가 권력자와 같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전체의 문제임을 명확히 적시합니다. 인간은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는 자신이 설정해두신 죄의 임계량이 있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죄의 임계점(eritical point)을 넘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실행됩니다. 홍수 심판의 이유는 인간의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메소포타미아 홍수 신화에서는 하늘의 신들이 지상의 인구 번성으로 그들의 소음이 하늘에까지 올라오자 불면증에 시달리고, 견디지 못한 신들은 회의를 열어 인구를 솎아내기 위해 홍수를 일으킵니다. 즉, 인간의 죄가 홍수의 원인이 아닙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14-17)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죽은 자들과 방불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처음에 잠깐 녹색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면 색 바랜 죽은 낙엽이 되는 것처럼, 낙엽은 나무에서 떨어진 순간부터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과 같습니다. 죽음을 통과하는 순간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불신자들처럼 이 땅에 살았던 모든 불신자들의 운명입니다.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14-17)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이 나무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삼나무 종류로 추정됩니다. 배의 안팎으로 역청을 칠해야 합니다. 방주의 크기가 지시됩니다. 가로 300규빗(150m), 세로 150규빗(75m), 높이 50규빗(25m)입니다(1규빗을 약 50cm로 정함). 실제로 선박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비율은 대형 선박이 커다란 파도를 견딜 수 있게 할 만큼 과학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인 비율이라 합니다. 참고로 길가메시 서사시의 방주는 120규빗(60m)의 정방체로 대단히 불안정합니다. 위에는 창을 내고 문은 옆으로 내며 방주는 3층으로 나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일으켜 모든 생물을 멸절하리라고 예고합니다.

 

노아 가족과 생물의 보존(18-22)

어두운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각오로 주의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생명을 바칠 심정을 가지고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18-22)

하나님께서 노아와는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은 홍수 후에 체결됩니다(창세기 9:9 이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보존하십니다. 노아에게는 지상의 모든 생물들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라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모든 짐승들이 그 종류대로 ‘네게로 나아올 것입니다’(20). 노아는 자신의 가족과 모든 짐승을 위한 식량도 준비해야 합니다(21).


노아와 언약을 맺고 짐승들을 싣도록 하신 것은 심판 중에도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은혜로운 조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존하심으로 새 창조의 희망을 쓰시며, 은혜의 씨앗을 남기심으로 미래의 소망을 이어가십니다. 우리를 세상의 남기신 것도 희망을 이어가시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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