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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04-01)

 


에덴의 동편으로 쫓겨난 사람들

창세기 4장 1-26절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에 속하여 처참한 살인마저 주저치 않습니다. 번영은 구가하지만 결국 잔인한 호전성과 탐욕, 음란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경건한 자를 남기시고 의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가인과 셋의 후손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가인의 이름은 동사 카나()와 관련되어 있어 보이고, 아벨()은 아마도 동일한 명사 헤벨의 의미인 ‘증기, 입김, 허무’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와가 그런 부정적인 의미의 이름을 작명할 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성경의 인물들의 이름은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출생과 직업(1-2)

경건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형통하고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조금 늦어도 부요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비록 가인은 세상에서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이루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그 삶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삶이며 안식하지 못하는 방황하는 삶입니다.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1-2)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편으로 쫓겨납니다. 아담은 아내와 동침한 후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이고 가인은 농사짓는 자입니다. 당시의 목축은 가죽과 털, 우유를 조달하기 위한 것일 뿐 육식은 노아 홍수 이후에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 이후 자연의 변화와 생물의 생태적 변화가 발생했다고 보고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이후 피를 흘리는 동물 제사가 시작되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노아 홍수 전에 이미 인간의 동물의 육식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아벨의 목축도 고기 조달이 주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열납된 재물과 거부된 제물(3-7)

죄악은 다스리지 않으면 점차적으로 확산이 되어갑니다. 불경건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자들을 파멸시키려고 하며, 더 나가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 책임과 유죄성을 부인합니다. 그 결과는 불경건한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채 세상에서 죄악의 문화를 확장시키면서 살아갑니다.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3-7)

세월이 지난 후 두 사람이 각각 소산물을 바칠 시기가 되었습니다. 농사꾼 가인은 땅의 소산, 즉 곡식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아벨도 자신의 기른 영/염소의 첫 새끼를 골라 기름과 함께 바쳤습니다. ‘첫 새끼와 그것의 기름’에서 기름은 복부의 내장 기름 덩어리를 말합니다. 기름은 짐승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위로서 제단에 태워야 했습니다(레위기 1:8; 3:3-4; 4:8-9). 기름과 고기를 다 태우고 남은 고기는 젲사장 몫으로 돌았습니다(출애굽기 13:2; 레위기 27:26; 민수기 18:15,17; 신명기 12:6). 많은 해석가들이 제물에 피가 있는지 여부에 의해 하나님의 반응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폰 라드(von Rad)는 피의 희생이 여호와께 더 기쁜 제물이었기에 아벨의 제사가 열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소제물을 폄하하신 적이 전혀 없으며, 곡식 제사는 다른 동물 제사와 동일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를 ‘네가 선을 행하지 않았다’(7)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상세히 관찰하면 두 사람의 제사 태도에서 차이가 발견됩니다. 가인은 단순히 ‘소산물의 일부’를 가져옵니다(개역개정, ‘땅의 소산’으로). 여기에는 이것이 첫 소산물이거나 최상품인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습니다. 반면에 아벨은 ‘첫 새끼’와 그 최상의 부위, 곧 기름을 가져옵니다. 가인은 마지못해 허례허식(tokenism)의 제사를 집행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그의 마음가짐은 제물이 거절당했을 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가인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문자적으로 ‘얼굴을 떨어트렸다’). 이것은 부끄러워서 면목이 없어서 보이는 반응이 아니라 분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며, 굴욕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지 못한 행동일 것입니다. 그는 선한 예배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제사의 거부가 그의 탓이라고 꾸짖습니다. 그는 낮을 들 수 있는 선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 이것은 죄가 언제나 뱀처럼 숨어 있다가 기습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죄가 가인을 원한다는 말씀도 죄가 간절히 그를 노린다는 뜻입니다. 죄는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런 죄를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인의 징계와 보호의 약속(8-15)

죄는 하나님은 물론이고 이웃을 향한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입니다. 더나가서 죄악은 무서울 정도로 들불처럼 확산되어 갑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배격하는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은 자신을 대적하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동쪽으로 추방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자비를 구하는 그에게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8-15)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개하기는커녕 분한 마음을 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분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아벨을 향한 시기심과 살의를 아시고 그에게 경고하십니다.

가인은 아벨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말의 내용이 안 나옵니다. 70인역(LXX)과 사마리아 오경, 시리아 역, 벌게이트(Vulgate), 중세의 몇몇 히브리어 사본들에는 ‘말했다’는 표현 다음에 ‘우리 들로 나가자’가 추가되어 있습니다(공동 번역; 표준 새번역; NIV; RSV; NJB).

형제간의 투쟁이 시작되고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죄는 아버지 아담의 세대보다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처럼,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을 찾으시고 문책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는 심문은 사실상 질책입니다.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항변합니다. 죄에 대한 변명 또한 아담보다 더 시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호소한다고 하십니다(10). 무고하게 흘린 피가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이 의인화된 표현은 신적 재판관을 향한 사법적 탄원입니다. 가인에게 유죄 판결과 더불어 중형이 선고됩니다. 그는 그가 흘린 피값을 치를 것입니다. 가인에게 하나님에 의한 직접적인 저주가 선언됩니다. 이미 아담의 죄로 땅은 엉망이 되었지만, 가인의 죄로 땅의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그는 가중처벌을 받습니다.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땅은 아무런 효력도 없을 것이며, 그는 땅을 배회할 것입니다. 농사꾼이었던 그에게 이것은 파산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자신에게 가해진 형벌이 너무 과중하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멀어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가인에게, 또한 모든 인간에게 사실 가장 무겁고 두려운 형벌입니다(14).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보호하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안전을 보장하십니다.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게 될 것입니다. 완전수 ‘칠’이 암시하는 대로, 이것은 혹독한 징벌을 의미합니다(창세기 4:24; 레위기 26:24,28; 시편 12:6; 79:12; 잠언 6:31; 다니엘 3:19). 추가로 그에게 보호의 증표로 ‘표’를 줍니다. 이 증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가인이 받은 ‘표’는 그에게 부여된 자기 방어를 위한 어떤 비상한 능력이었을 수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16-24)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모습은 유리하며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방랑자는 규모 있고 질서정연한 삶을 살기보다는 무질서와 방탕한 삶을 살기 쉽습니다. 그리고 죄악은 대부분 어두운 곳에서 자행됩니다. 밝은 곳에서 행동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들의 죄악된 모습이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인의 후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16-24)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가인의 계보를 계속 추적합니다. 그는 ‘놋’은 ‘방랑’, ‘배회’라는 의미하고, 그곳에서 거주합니다. 이 지역명은 다시 한 번 가인의 운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놋의 위치는 에덴동산의 동쪽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곳이라고 언급합니다. 놋은 하나님에게서 피신한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

가인은 아내를 만나 에녹이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그의 아내는 누구입니까? 아담과 하와는 두 아들 외에도 많은 자녀를 낳았고(창세기 5:4), 그들이 분산되고 상당히 세월이 흘러 인구가 늘어났을 것입니다. 가인은 에녹을 낳고 곧이어 도성을 건축했는데, 그 성의 이름 또한 ‘에녹’이라고 짓습니다. 역설적으로 가인은 성을 쌓음으로써 방랑하고 유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그의 운명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반항합니다.

가인의 계보인 에녹의 후손들이 7대까지 열거됩니다. 아담으로부터 가인을 거친 일곱 번째의 자식은 ‘라멕’이었습니다. 가인의 가계에서 일부일처제가 최초로 무너지는 사례가 나타납니다. 또한 가인의 계보에서 목축과 예술, 문명이 유래됩니다. 아다의 첫아들 야발은 셈의 생계형 목축과 달리 전문 목축업의 원조가 됩니다. 야발의 동생 유발은 현악기(수금)와 관악기(퉁소)를 다루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씰라의 첫 아들 두발가인은 금속 제련사로서 금속 기술의 원조가 된 인물로 소개됩니다. 그의 여동생 나아마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목록에 오릅니다. 가인의 계열에서 인류의 산업과 기술, 예술과 문명이 기원되었다는 것은 구원의 문제와 별개로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공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가인의 5대손 라멕은 복수의 화신이자 폭군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상해를 두려워했으나, 라멕은 적극적인 공격과 복수로 잔인한 자기 방어력을 갖춥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젊은 전사를 죽였으며 어떤한 복수에서든 가인에게 임한 관대함보다 더 큰 관대함을 요구했습니다(24). 그는 살인을 자랑했으며, 이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행위에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가인을 해친 자에게는 7배의 벌이 주어지지만, 자신을 해친 자는 벌이 77배가 될 것이라고 하여 공포심을 조장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과 그의 법에 대항하면서 쾌락과 방종을 추구하는 풍요한 사회의 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바로 이러한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제사장 나라로 나서야만 했습니다.

 

아벨을 대신한 셋과 그의 아들 에노스(25-26)

불경건한 사람은 인간의 힘과 번성, 자랑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조롱하지만, 경건한 사람은 항상 겸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물길을 거슬릴 수 없습니다. 경건을 통해 갈려진 사람들은 자신의 심령대로 행동하게 경건과 불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이 성장한 것처럼, 또 다른 경건한 자들을 인도하십니다.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25-26)

이러한 불경건한 사회의 정반대 편에는 의로운 자들이 있었습니다. 셋의 계보에서 신앙이 있었습니다. 아담에게서 아벨을 대신하는 아들이 태어납니다. 이름은 ‘셋’인데, 그 이름 뜻인 ‘대신한 자’는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쉬트)는 의미일 것입니다. 셋 자신이 바로 하와의 신앙고백에 따른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총이었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부릅니다. ‘에노스’의 어원을 추적하면 아담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뜻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흔히 신적 존재와 다른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을 의미할 것입니다.

에노스의 시대에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향한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인간의 깨달음은 에노스라는 이름에 의해 상징되는 인간의 약함을 인식할 때 더욱 강화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의 마음과 삶을 보시고 그를 받으십니다. 우리는 합당한 예배를 위해 죄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다스리고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가인이 간 길이 아닌 경건한 의인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할 때, 우리를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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