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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03-02)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성도들

베드로후서 3장 8-18절


어릴 적에 시냇가에서 죽마고우들과 송사리를 잡으며 놀았습니다. 들과 산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다가 푸른 잔디에 누어 하늘을 바라보면, 어른이 되어도 절대로 변하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손가락을 걸고 곧게 약속해도 세월이 지나면서 변했고, 그 약속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변하지 않은 약속이 있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날이 임하면 하늘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그 날을 기다리라고 권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재림하심이 늦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거짓 가르침과 관련한 베드로의 권면들(8-16)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고 느린 것 같아도 하나님의 스케줄은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스케줄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8-16)

주님의 재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예수님과 영적인 결혼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린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할 성도로서 경건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과 정욕을 피하고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감격적인 날이 있을 것입니다.

(1) 종말에 대한 바른 관점 소개(8-10)

3-7절에서 거짓 가르침의 내용을 반박한 저자는 이제 종말에 대한 참 진리로 초점을 전환합니다.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전달합니다. 첫째 요소는 때와 관련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8). 하나님께 하루는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참조. 시 90:4). 시간에 대한 그분의 관점은 인간과 다릅니다. 사람은 시공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분은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 창조주입니다.

저자는 두 가지 표현을 통해 이 요소를 강조합니다. (1) ‘이 한 가지’입니다. 원문은 '하나, 곧 이것’이란 강조 표현으로, 다른 것보다 우선하는 중요도를 전달합니다. (2) 외면하지(란타네토) 말라는 명령입니다. 선택적 증거로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 교사를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5). 그들과 달리 참 진리의 요소를 외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둘째 요소는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에 대한 이유입니다(9). 거짓 교사들은 이 상황을 근거로 약속에 대한 주의 신실성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것들이 있습니다. (1) 때는 하나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도 이에 대해 간섭하지 않습니다(마 26:36). (2) 주의 자비로움입니다. 재림과 심판이 진행되면 믿는 자 외에는 모두 부정적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림을 늦춘 것은 많은 이들이 그분과의 구원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참조, 15). 은혜입니다. (3) 재림의 약속이 지체되는 것은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

9절 표현은 만일 모든 사람들이 회개한다면 주님이 재림할 것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이 재림을 늦춰 자비로운 기회를 주는 것은 아직 죄인들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거짓 교사들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역설적이게도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거짓 교사들 때문입니다. (4) 창조주의 의도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곧 언약 관계 안으로 인도해 그분의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참조 엡 1:5). 아담과 하와를 지을 때나 지금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실 때도 그분의 의도는 동일합니다. 그분의 선한 의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창조주께 반역하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요소는 주의 재림과 심판의 확실성입니다(10). 마치 도둑이 오듯 그때를 재단하거나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날은 분명히 옵니다. 그 때는 하늘이 급하게 달려가는 듯 큰 소리로 사라지고, 모든 물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기존 질서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새 질서가 창조됩니다. 또한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 즉 모든 세상 역사와 사람들의 행함이 그대로 드러나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2) 바른 가르침에 근거한 권면들(11-13)

주의 재림에 대한 바른 가르침(8-10)에 근거해 독자를 권면합니다. 내용 이해를 위한 요소들은 구조에서 나타납니다. 이 구조에 의하면 저자의 권면은 모든 것이 불에 풀어져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드러날 미래 사건을 전제로 합니다. 앞부분 내용이며 독립 속격으로 제시됩니다. 권면의 초점은 독자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입니다. 특별히 진리에 근거한 거룩한 삶의 모습과 경건에 대한 것입니다. 삶의 모습(아나스트로파이스)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을 묘사할 때(2:7) 사용한 단어고, 경건은 멸망 받을 사람들의 태도(2:5, 6, 3:7)와 반대 모습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전제로 그분 안에서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살라는 말입니다(1:3,6,7), 멸망 대신 구원의 판결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1:10-11). 더 나아가 이런 삶은 두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분사를 통한 첨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기대하고 앞당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기 위해 저렴을 늦추고 있기 때문에(9), 만일 독자들의 증거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한다면 그 때가 당겨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참조, 마24:14; 사 66:18-22).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계획의 완성이 신자의 삶과 증거를 통해 앞당겨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를 아직 이 땅에 살게 하신 의도가 여기 있습니다. 여전히 때는 그분 주권에 속해 있지만, 그분의 시간표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이후 저자는 권면을 강조하기 위해 주의 재림과 심판날을 부연합니다(12b-13).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불로 녹아 새 질서가 만들어질 그 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창조주이자 새 언약 관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 곧 그분의 ‘의’를 영원히 경험할 그날, 신자인 ‘우리’는 그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며 삽니다.

(3) 거짓 가르침과 관련한 결론적 권면들(14-16)

거짓 가르침과 관련해 결론적 권면을 합니다. 12b-13절에서 언급한 주의 재림 상황을 근거로 두 개의 명령법을 사용해 전달합니다. 첫째, 그 때를 기다림으로 그분 앞에서 평안 가운데 점 없이 흠 없이 발전되기를 힘쓰라스푸다사테, 14). 최후 심판을 전제로 그분 앞에서 긍정의 판결을 받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행함의 차원이지만, 선행으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단어를 통해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굳게 하라는 1:10 내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옮겨와 그분과의 관계 안에 있기에, 그 관계의 온전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조심해서 살라는 말입니다. 둘째,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임을 생각하라(15). 9절 내용에 근거한 생각 차원의 명령입니다. 재림에 대한 진리와 하나님의 의도를 바르게 헤아리고 살라는 말입니다. 바른 관점이 중요함을 확인시킵니다. 이어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 내용을 이 명령들의 근거로 언급합니다(156-16). 그 내용이 무엇인지 언급하진 않았지만, 주목해야 할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바울의 권위 인정입니다.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지혜’, 곧 구약 예언(1:21)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썼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편지를 다른 성경들과 같은 수준으로 묘사합니다(15). 편지에 신적 권위가 있다는 말입니다. 독자들이 따라야 할 사도의 가르침(2) 속에 바울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둘째, ‘너희’에게 썼다는 표현입니다. 비록 바울의 편지를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편지 내용을 알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셋째, 바울의 편지는 ‘이런 일들’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 문맥에 의하면 주의 재림과 심판(예. 살전 5:1-10; 살후 2:2-3:2)에 대한 것과 구원에 근거한 바른 삶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일단의 사람들이 바울의 편지 중 알기 어려운 어떤 부분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듯(참조. 1:20), 사도의 진리를 왜곡해 멸망으로 가는 이들입니다. 특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 중에서 그렇습니다. 이들은 바른 진리를 배우지 못한 자이거나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분별력 없는 자들입니다(2:14). 저자가 이처럼 바울의 예를 든 것은 자기 가르침이 진리임을 확증하는 동시에 바울의 편지도 왜곡하는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을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편지 마무리 명령과 송영(17-18)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지연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오래 참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멸망치 않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불평할 때가 아니라 감사해야할 때입니다. 게으르고 방종할 때가 아니라 깨어 근신할 때입니다. 그 날을 더욱 간절히 사모할 때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릴 모습은 거룩함과 경건한 삶입니다.

17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17-18)

편지 전체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명령을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도의 진리와 거짓 교사들의 특징과 가르침에 대한 것을 모두 알았기에 무법한 자들의 유혹에 이끌려 구원과 진리 안에 굳게 서 있는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앞 1:10-11절 내용의 반복입니다. 줄째, 오직 주와 구원자인 예수 메시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할 뿐 아니라, 거짓을 분별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역시 1:1-10 내용입니다.

결과적으로 베드로는 (1) 주의 재림과 그에 근거한 신자 삶에 대한 진리를 바탕으로 (2)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을 분별하고 (3) 하나님 안에서의 경건한 삶을 지속적으로 굳건하게 살아가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들이 회개할 때까지 참하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이 유혹하는 삶 속에 흔들리지 않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약속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로 변질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마지막 날에 도둑 같이 오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심판과 구원에 대한 약속을 기억하며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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