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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02-02)


멸망할 짐승 같은 거짓교사들

베드로후서 2장 10-22절


‘그리스도인’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곳에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보지 못하고 세상에 끌려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알면서도 세상에 끌려 다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까? 명예, 권세, 물질, 이성 등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면 그것에 끌려 다니는 사람입니다.

 

1-9절에 이어 거짓 교사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의 특성은 짐승과 같이 지각없는 행동을 합니다. 음란하고 탐욕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거짓된 지식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들은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10-16)

하나님께서 교만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권위 까지 무시하여 자기 멋대로 사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다른 삶을 무시하고 깔보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신의 멋대로 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겸손 합시다.

10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10-16)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자유를 강조하면서 영적 지도자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적 탐닉을 부추겼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많은 모습들이 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큰 죄악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은 두 가지로 특징지어 집니다.

첫째는 자신들을 높이 평가하는 교만합니다. 그들을 거만함이 대단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신처럼 여기며 하나님의 종인 천사를 함부로 말하기도 합니다. 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만 크고 다른 사람에게 욕까지 하는 무례한 태도를 보입니다.

둘째는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고, 바람과 같이 돈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대낮에서 술을 즐기고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방탕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무지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성 없는 짐승처럼 육체의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생각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발람 선지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 선지자의 잘못된 행동을 막으셨습니다. 발람은 불의의 삯에 미혹되어 나귀보다도 못한 하나님의 뜻을 더 알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나귀에게 미친 행동을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도 더러운 육체의 정욕에 미혹을 당해 짐승만도 못한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도살한 짐승같이 자신의 심판 날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짐승처럼 멸망할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 역시 진리와 삶이 함께 망가져 있기에 진노의 대상이며, 그들을 따르는 자들 역시 동일한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1) 거짓 교사들 1(10b-12): 천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방함

하나님의 부정적으로 심판 받을 대상인 거짓 교사들 상황을 부연합니다. 첫 모습은 천사들에 대한 태도입니다(10b-11). 그들은 ‘영광들’로 표현한 선한 천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방합니다. 실제로 선한 천사들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 교사들을 비방하는 판단을 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얼핏 보면, 이런 설명은 문맥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천사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 기준이 아닙니다. 그들을 무시해도 심판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이런 모습을 언급했습니까? 핵심은 그들의 태도 이면의 상태입니다. 그들은 당돌하고 교만해서 천사들의 권위를 업신여기는데, 그 이면에는 지적 교만과 어리석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들처럼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비방합니다. 이성적 사고를 근거로 천사들의 존재를 믿지 않고 비방의 말을 쏟아놓은 듯합니다. 천사들에 대한 이런 태도도 문제지만, 그들의 태도가 천사를 넘어 하나님의 미래 심판 영역까지 이어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주의 재림과 심판도 납득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런 가르침을 사도들이 지어낸 헛된 신화로 치부하고 조롱한 듯합니다(1:16;3:3-4). 바로 여기서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부정적심판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천사와 관련한 거짓 교사들의 모습은 주님을 부인하는(1) 배교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에 근거한 교만으로 망할 것입니다. 이성 없는 짐승들이 살찌우다가 때가 되면 잡혀 죽을 운명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2) 거짓 교사들 2(13-16) ; 불경건하고 불의한 모습

거짓 교사들의 또 다른 모습은 삶의 타락입니다. 그들은 방탕한 연회와 성적 문란과 탐욕으로 묘사되는 자신들의 불의한 삶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13).

베드로는 그들의 삶을 생각-눈-마음-삶의 길로 연결되는 인상적인 방법으로 소개합니다. 첫째, 생각과 관련하여 그들은 낮에 행하는 무절제한 연회를 즐거움으로 여기는 자들(헤구메노이, 13)입니다. 심지어 교인들과 함께하는 연회, 예를 들어 주의 만찬이나 함께 즐기는 애찬을 거짓 즐거움이 가득한 그들만의 연회로 만들려 합니다. 절제와 경건의 모습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보다 자기를 더 중시하고 육체를 좇아 타락한 즐거움만을 추구합니다(10). 둘째, 눈과 관련해 그들 눈에는 음란과 쉬지 않는 범죄가 가득합니다(14a). 교회 안에 굳세지 않은 영혼들을 죄의 길로 유혹합니다. 셋째, 마음과 관련해 그들은 탐욕으로 길들여진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14b). 마음(카르디아)은 사람 인격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 누구를 두는가에 따라 관계성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는 그분과의 새 언약 관계 안에 있고, 자기를 중심에 둔 자는 그분과 관계가 없습니다. 특별히 탐욕은 대표적 자기만족 표현이기에 탐욕을 중심에 둔 자는 우상숭배자입니다(눅 16:13). 이런 면에서 거짓 교사들은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넷째, 삶의 길과 관련해 그들은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불의의 삶을 사랑한 발람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입니다(15-16). 탐욕에 대한 부연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미디안 왕 발락의 돈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러 가다가 나귀에게 책망 받았습니다(민 22:21-35).

베드로는 이 이야기를 통해 거짓 교사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말 못하는 나귀도 탐욕 때문에 죽으러 가는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막았는데, 정작 그들 자신은 탐욕의 결과를 몰랐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묘사한 바 있는데(12), 여기서는 짐승보다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속에 있는 악함을 몸을 통해 삶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자입니다. 안과 밖이 다 타락한 죄인인 것입니다.

 

거짓 교사의 거짓된 가르침(17-22)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악하고 더럽게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는 몰라도 믿는 사람들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아는 인격적인 지식을 통하여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습니다. 다시 그 더러운 것들에 빠지지 않도록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17-22)

거짓 교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창하고 신선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물 없는 샘’처럼 알맹이 없고 껍데기뿐인 거짓 진리에 불과합니다. 거짓 이론과 허탄한 자랑과 속임수임으로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처럼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지속성이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또한 범죄한 천사들처럼(4) 깊은 어둠에 던져서 주님의 재림 때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말로 성도들을 유혹해 잘못된 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에게 대해 몇 가지 요소를 통해 그들의 미혹 과정을 묘사합니다. 첫째, 유혹 대상은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어둠의 영역에서 갓 건짐을 받은(1:4) 새신자들이나 믿음의 기초가 역한 자들입니다. 둘째, 유혹 방법은 허무맹랑하고 교만한 말입니다. 이성과 논리에 호소해 영적 존재들이나 주의 재림과 심판 등의 진리의 요소를 왜곡한 말일 것입니다. 셋째, 유혹 내용은 참 자유에 대한 약속입니다. 삶의 변화와 해방에 대한 것으로 자기중심의 자유분방한 삶을 소개하는 것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이런 요소들을 담은 그들의 가르침은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가르치는 자들 자체가 죄의 종입니다(19).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데, 그들은 죄를 이길 수 없고 이기고 싶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죄에 굴복해 자유가 없는데 타인에게 자유를 약속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의 가르침이 추구하는 삶은 불의하고 불경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며, 구원받기 이전의 죄 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구원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심각합니다. 베드로는 예수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얻은 후 다시 세상 더러움을 주인 삼고 옛 관계 가운데로 돌아가는 것을 엄하게 경고합니다(20-21). 차라리 구원의 과정을 아예 경험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로 다시 가는 것과 같습니다(잠 25:11). 끔찍합니다. 이런 면에서 거짓 교사와 그들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윤리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를 왜곡해 하나님을 거절하고 그것을 자기중심의 삶으로 표현하는 배교입니다.


언제나 말솜씨가 좋은 사람들에게 넘어가기 쉽니다. 그것이 감언이설인줄 모르고 말입니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지도자들을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악한 영의 이단들의 잘못된 교훈에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자신의 사명에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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