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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01-01)


바른 신앙을 위한 준비

베드로후서 1장 1-11절


‘이름 값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성에 걸맞은 행동이나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이름값’하는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첫 편지가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거짓 교사들의 영행을 받고 있는 성도들 위한 편지의 시작 부분입니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2절은 도입부로 발신자와 수신자와 인가 담겨 있습니다. 3-11절은 편지 몸말의 시작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근거해 바른 삶을 만들어가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의 안부 인사(1-2)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흔히 이것을 지적이고 사변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매우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을 설명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인간의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믿음에 근거한 경건한 삶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1-2)

사도 베드로는 소중한 믿음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믿음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기를 바라며 두 번째 서신을 보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에게 신앙이 미혹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교만한 우월의식과 무질서한 방탕한 생활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삶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1) 발신자(1a)

어떤 사람들은 본 서신을 익명의 저자가 쓰고 베드로의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1절에 베드로가 저자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베드로는 순교하기 직전인 65-66년에 로마에서 이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수신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합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종(1a)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며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겸손함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영광스러움을 내포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이리에 쓰임을 받는 종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② 사도(1b)

‘사도’라는 표현은 베드로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이 편지를 썼음을 드러냅니다. 권위의식을 가지고 우월성 때문에 말한 것도 아닙니다.

(2) 수신자(1b)

이 편지의 수신자를 베드로는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믿음을 받았다’는 표현은 믿음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선물임을 나타냅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믿음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 성도들이 받은 믿음을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묘사합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베드로의 믿음과 성도의 믿음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그는 이 믿음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하나님과 구주’라고 고백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3) 인사말(2)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성도들을 향해 문안 인사에서 ‘믿음’과 ‘지식’이라는 두 개념을 소개합니다.

① 믿음(2a)

그는 먼저 소아시아 성도들의 ‘믿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우리와 같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표현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사도들의 믿음과 동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사도들의 믿음보다 열등하거나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동일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믿음이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믿음이 개인의 자질이나 노력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믿음이나 독자들의 믿음은 모두 같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동일하게 보배로운 것입니다. 베드로가 동일한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독자들 가운데 활동하고 있던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사도들이 가르친 것과 다른 믿음을 가르치면서 독자들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가져야 할 참된 믿음은 사도들의 믿음과 동일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째, 베드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그를 아는 지식을 통해서 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식’(에피그노시스,επίγνωσις)은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에 근거한 믿음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더욱 친밀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3-1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또한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신령한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은사를 아낌없이 주십니다. 그래서 영광의 광채와 탁월한 덕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권합니다.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3-11)

모두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죄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고 살아가십니까? 처음 구원 받을 때와 지금 당신은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3-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명하시거나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건한 삶을 살라고 명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신 두 가지 일을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3).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 삶에 필요한 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크고 보배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4).

먼저 경건한 삶을 위한 능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아는 지식을 가진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건에 필요한 능력이 ‘믿음’이 아닌 앞을 통해 주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생소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믿음’대신 그리스도를 앎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아마 스스로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음행과 불의를 일삼던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2:1-14). 그러한 믿음은 사도들이 독자들에게 전한 믿음이 아니며 그것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도적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에 근거를 둡니다. 따라서 저자는 믿음보다 앞에 더 많은 관심을 둡니다. 2절의 은혜와 평강이나 3절의 신기한 능력은 모두 그리스도를 앞으로 주어집니다. 5절에서는 지식이 믿음과 덕이란 기반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8절에서는 5-7절에서 설명한 믿음에 근거한 경건한 삶이 곧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즉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1), 경건한 삶에 필요한 모든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경건을 위한 능력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또 다른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곧 보배롭고 큰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약속은 1:11과 3:13을 통해 볼 때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약속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약속을 바라봄으로 세상의 썩어질 것에서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적 삶에 필요한 모든 능력과 미래를 위한 약속을 주신 것은 그리스도인들로 이 세상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 믿음에서 사랑으로(5-7)

5절에서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은 3-4절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지금부터 저자가 하는 권면의 근거와 기초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건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고 또한 위대한 약속을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5-7절에서 설명하는 믿음의 덕목들을 실천하도록 힘써야 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할 여덟 가지의 덕목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5-7)고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납니다. 이미 1절에서 우리가 가진 보배로운 믿음을 하나님에게서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물은 모든 경건한 삶의 기초이며 원동력입니다. 반면에 ‘사랑’은 그 완성이며 끝입니다.

‘사랑’은 모든 기독교적인 덕목의 왕관입니다. ‘믿음’과 ‘사랑’ 사이에 있는 여러 덕목들은 순서에 있어서 서로 어떤 논리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덕목들을 힘써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10).

(3) 힘써 그리스도를 알아가라(8-10)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성육신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으며 나중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까?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 내용들을 알고 있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이지 그리스도 자신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을 매우 실천적이고 점진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실천적이란 것은 5-7절에서 열거한 덕목들을 힘써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점진적인 이유는 그것이 믿음에 근거한 삶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흡족하다’(플레오나조,πλεονάζω)라는 단어는 ‘증가하다’, ‘성장하다’ 혹은 ‘더 해지다’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은 그리스도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며 마치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이러한 지식의 성숙이 없으면 영적인 무지에 빠져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맙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가리켜 근시안이나 소경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덕목을 열심히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영적인 진리를 외면하고 보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는 것과 같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결코 철학적인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합당하게 경건한 삶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4)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11)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것입니다(4). 그러나 그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경건의 덕목들을 힘써 행함으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굳게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너희에게 주시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힘써 경건을 행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이나 신기한 능력에 근거한 것이기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생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기 전과는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도들도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와는 변화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 어떤 환경으로 유혹해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항상 변함없이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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