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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6-01)


사역을 위해 선택된 일곱 집사들

사도행전 6장 1-15절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인이시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 중에는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문제의 발단과 갈등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대부분 말씀과 기도보다 사역이 앞설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사단은 영혼보다 사역에 집중하는 곳,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는 곳에서 역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또 그 이후에 어떻게 성장해야 합니까?

 

복음은 몇몇 사도에게서 시작하여(2-5장) 모든 평신도들까지 활발하게 타올랐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장함으로 구제 문제가 발생하지만 잘 해결합니다. 사도들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성도들에게 추천을 받아 일곱 집사를 세웁니다. 그들에게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함으로 교회는 더욱 성장합니다. 그리고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스데반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대항하는 자들로부터 고발을 당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게 됩니다.

 

일곱 집사를 선출하게 된 사건(1-7)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더 확장되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들이 핍박 속에서 부흥했고, 고난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장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폭풍처럼 성장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개인이 아닌 교회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초대 교회에게는 크나 큰 위기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1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1-7)

기도할 필요조차 없이 평안하고 아무 탈이 없는 삶은 축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느 때든지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은 영적인 각성제와 같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 박해를 통해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질식시키려던 사단은 완전히 실패합니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초대교회는 더 강하게 성장하고 더 굳센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⑴ 문제의 발단(1-2)

본 단락은 누가가 자주 사용하는 ‘그 때에’와 함께 새로운 단원으로 시작함을 알려줍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님을 전하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외부적인 박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초대교회 안에서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발단은 믿는 자들이 더해 감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 속에서 고난 받는 일에 부끄러워하기보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골 1:24-25)에 동참한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했습니다. 더나가서 그들은 날마다 성전 있든지 집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길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성령으로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급속히 많아졌습니다(7). 그러나 급성장하는 것이 반드시 은혜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잘 준비되지 않는 조직은 급성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성도들이 많아지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해야할 일과 대상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갑자기 믿은 자들이 많아짐으로 규모에 맞는 조직과 행정을 구성해야 했지만, 당시 지도자인 사도들은 습관적으로 계속 같은 사역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과 재정적으로는 많아졌지만, 반대로 돌봐야 할 사람들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사도들의 업무도 늘어났습니다. 점점 그들은 사역의 한계점이 이르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2장과 4장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자기 가진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사도들 앞에 드렸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통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 주는” 구제 사역을 했습니다(4:35). 본문에서는 그 사역을 ‘매일의 구제’(1)이라고 소개하는데, 하루에 한 끼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극빈자들에게 교회에서 매일 나누어 주는 음식이나 금전을 의미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초대교회 안에는 두 부류 유대인들이 존재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에 태어나고 자란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또 다른 부류는 외국에서 흩어져 살다가 돌아와서 예루살렘에서 사는 유대인들,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또 다른 이름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노년에 돌아왔기 때문에 혼자된 과부가 많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 있었습니다. 반면에 ‘히브리파 유다인’들은 연고지가 팔레스틴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할지라도 외국 태생 ‘헬라파 유대인들’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두 부류 모두 의지 때가 없어서 초대교회에서 실행한 구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성도들이 많아져 갈수록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을 돌볼 만한 충분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점점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해서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지 못하자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은 고의로 소홀한 것이 아닙니다. 이때까지 만해도 헬라파 과부들의 실상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직감하고 비밀스럽게 사적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찾기 시작했고,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서 공식적으로 모든 성도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습니다(2). 사도들은 그 자리에서 문제점을 부인하거나 감추지 않고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사도들의 말을 다소 퉁명스럽게 번역함으로써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게 번역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자선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현대어 성경)라는 의미입니다. 사도들의 의도는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사도들이 전념해야할 소명은 기도와 말씀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말씀 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구제 사역이 많아짐으로 점점 자신도 모르게 구제 사역에 치우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기도와 말씀 전하는 사역을 소홀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⑵ 해결 방안 제시(3-4)

초대교회가 성도들이 적었을 때는 사도들이 모든 것을 도맡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사도들은 시간과 사역을 조절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도의 근본적인 사역인 기도와 말씀의 사역을 소홀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사도들의 제안을 통해 문제점과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문제 해결할 방법으로 우선순위를 구제 사역에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을 맡아서 수고할 일곱 사람을 선택해서 집사로 세울 것을 제안합니다. 집사의 자격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3). 집사의 자격에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심을 알며, 성령의 열매로 채워져 있음을 인식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만이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분별력 있고 통찰력이 있으며 판단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칭찬 듣는 사람’은 좋은 소문이 들리며 선한 증거를 지니고 좋은 평판을 받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집사의 자격은 영적인 자질과 성숙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세워진 목적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기도와 말씀의 사역에 전념하도록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선언했습니다(4). 사도들은 근본적인 사역인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겠다는 선언합니다. 기도와 말씀 사역 외에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역자들은 이 두 가지 사역에 전념해야 하며, 여기에서 빗나가거나 다른 과심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사도들이 말한 ‘기도와 말씀’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말씀 사역’으로 번역된 ‘διακονία του λόγου’는 직역하면 ‘말씀 섬김’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매일의 구제’(1)에 사용된 ‘디아코니아’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는 두 가지 사역이 모두 성도를 섬기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즉, 업무 분담의 문제이지 업무의 중요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제 사업을 맡을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은 열두 사도의 조건(사도행전 1:21-22)과는 달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을 일꾼으로 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⑶ 일곱 집사를 선출함(5-6)

모든 성도들은 사도들의 제안인 집사 일곱을 선택하여 그들로 인해 구제 사역을 맡기고자 제안을 모든 성도들이 기쁘게 수용합니다. 그동안 피해를 보았던 헬라파 유대인들도, 히브리파 유대인들도 사랑과 겸손으로 기쁘게 응답했습니다(5). 일곱 집사를 뽑는 일에 관하여는 열두 사도가 제안했지만, 실제적으로 일곱 집사 선출은 모든 성도들이 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에 의해 선출된 일곱 집사들이 성출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습니다. 일곱 집사의 이름은 놀랍게도 모두 헬라어 이름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루살렘 본토 출신보다는 디아스포라 출신을 중심으로 선출된 것입니다. 이들의 선출은 초대교회의 사역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모든 요구를 포용할 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은 예루살렘을 넘어서 전 세계로 흩어질 핍박의 날을 위해 교회의 사역자들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8:1-4). 그들은 헬라의 교육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어떤 이방 세계일지라도 언어와 훈련과 문화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과 ‘빌립’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스데반’과 ‘빌립’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이유는 6-8장에 전개될 그들의 전도활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선출된 그들을 위해 안수함으로 최초의 집사들이 세워진 것입니다(6). 일꾼을 세움에 기도하고 안수하는 예식은 민수기 2:15-23에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뽑을 때와 아주 흡사합니다. 안수를 하는 행위는 이 사역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며, 기도는 성령의 능력이 그들에게 임하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⑷ 지속적으로 성장한 교회(7)

일곱 집사가 세워지자 초대교회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세움을 받은 일곱 집사들은 사역에 충성했습니다. 놀라운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그 결과를 짧게 요약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하여’라고 소개합니다. 사도들이 본연의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왕성하도록 복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례없이 제자의 수도 많아졌으며, 많은 제사장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음을 기술합니다. 교회는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문제와 갈등을 세속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다수의 폭력 그리고 인기투표식의 방법이 아닌,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받는 사람들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실질적으로 구제에 빠지고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을 위해 헬라파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집사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성숙한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하고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 앞에 서게 된 스데반(8-15)

초대교회의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사람들이었습니다. 열두 사도가 그렇고, 선출된 일곱 집사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자, 본받을 만한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섬길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각양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스데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겸손하게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8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 10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8-15)

초대교회는 일곱 집사를 선출해 교회 내에 구제 사업을 맡기는 이야기를 소개했다면, 이 단락에서는 선출된 집사들이 맡은 사역에 대해 소개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누가는 정작 그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소개하기보다 일곱 명 중 두 명인 ‘스데반’과 ‘빌립’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사역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박해(迫害)입니다. 성도들의 박해는 두려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⑴ 유대 지도자들과 논쟁한 스데반(8-9)

이제까지 사도들 중심으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대열에 사도가 아닌 평신도 지도자인 집사들도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스데반’이 합류합니다. 누가의 관심은 구제 분야가 아니라 복음 증거 사역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복음 증거를 위해 일반적인 기대를 뛰어넘어 사용하셨습니다. 스데반의 복음 사역을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다”(8)라고 소개합니다. 이 사역은 사도들과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때문에 사도들처럼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43; 5:12; 6:8). 성령님이 이끄는 사역이 사도들의 범위를 넘어 신실한 평신도 지도자들에게까지 더 확장된 것입니다. 기존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교회를 핍박하면 그 세력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대로 성령의 역사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확장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정작 스데반의 기사는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는 큰 기사와 이적을 행했습니다(8). 그러면서 ‘자유민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유민들’라고 표현된,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중심으로 모이는 회당에서, 즉, 헬라어를 사용하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9). 당시 예루살렘에 약 480개 회당이 있었는데, 그 중에 디아스포라 출신 헬라 유대인 회당도 상당 수 있었습니다. ‘자유민들’의 회당은 각각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9). 주후 10년경에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로마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하였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일부는 예루살렘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통상적인 언어와 문화로 인해 그들은 함께 모였으며, 특히 예배드리는 곳, 즉 헬라파 출신 중심 회당에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도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이 ‘자유민들’ 헬라파 회당 소속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동일한 헬라파 유대교인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동일하게 그는 병자들을 고쳐 주고 귀신을 내쫓는 기사를 행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해가 되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유익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도 복음 전하셨을 때 그랬듯이(요 10:32), 또 베드로, 요한 등 사도들과 같이, 스데반 역시 ‘예수님 판박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충만으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 유대인들과 논쟁하시며 그 입을 다물게 하신 것처럼(눅 4-6장), 자유인라고 불린 헬라파 회원들은 스데반에게도 크게 격분하여 논쟁을 펼쳤습니다. 스데반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연장선상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여준 것입니다.

⑵ 스데반을 고발한 유대인(10-14)

스데반은 자유인인 헬라파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사역을 하면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일부 사람들이 스데반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에 사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유대 종교에 충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그들과 종교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설교를 이해할 수 없고, 당연히 스데반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헬라의 영향을 받아 철학이나 수사학적인 토론에 익숙했지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에게는 능히 당할 수 없었습니다(10). 예상과 달리 스데반을 굴복시키지 못한 헬라파 유대인들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스데반을 굴복시키기로 작정합니다. 비열하게 사람들을 은밀하게 선동하여 그를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11). 정당한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거짓 증인으로 산헤드린 공회에 세워 고발합니다. 매수된 자들은 마치 스데반이 직접 한 말을 들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일반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스데반에게 몰려왔습니다(12). 이 고소는 온 백성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사람들이 몰려온 것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수된 자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고 고소와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13). 그들이 스데반을 고발한 내용은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13-14)입니다. 이 증언의 앞부분은 그들의 해석이고, 그 해석을 뒷받침하는 말로서 스데반이 말한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는 말은 직접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고발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4:11-16에 따르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저주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는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둘째, 율법에 대한 모독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란 서기관의 법, 즉 성경에 대한 모든 주석과 해석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사렛 예수가 모세가 진해준 율법을 뜯어 고치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고발 내용들이 모두 거짓된 것임을 밝힙니다(13). 이 단락에서 소개하는 스데반 이야기는 사실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박해의 절정에 해당하는 사건입니다. 4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경고와 함께 풀려났고, 5장에서는 사도들이 채찍질을 맞고 석방되었습니다. 이제 스데반의 이야기는 그의 순교적 죽음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사도행전 7:60).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도움과 지혜를 구하면 도와주시겠다는 예수의 약속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누가복음 12:12; 21:15). 그런데 이제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라고 말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이 제자들의 삶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⑶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선 스데반(15)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자기변호를 위해 공회 앞에 선 스데반의 모습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둘러싸인 위대한 영적 교제의 사람이었습니다.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이 표현은 당시로서는 아주 이례적입니다. 심문 받고 있는 스데반을 이렇게 묘사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스데반을 다시 한 번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스데반을 고소하는 자들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이미 부활의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그가 닮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억울한 고소를 당해 고통을 받고 있지만, 표정만 보아도 진정한 승리자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의 지지를 얻어 스데반을 고소한 유대인들이 승리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스데반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스데반은 교회의 사역을 위해 세워진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탁월하며 성령 충만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또한 참된 신앙인으로 자신을 모함하는 세력 앞에서도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령 충만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성령께서 참된 승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틈 탄 갈등은 도리어 교회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겸손하게 잘못을 인정했을 때, 교회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인 말씀과 기도로 교회가 돌아왔을 때, 갈등 대신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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