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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5-01)


거룩한 교회를 위한 헌신들

사도행전 4장 36절 - 5장 11절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거짓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을 밥 먹듯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거짓은 다른 거짓을 낳고, 점점 거짓이 사실처럼 됩니다. 점점 진리보다는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고 사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두움의 자식들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빛이 어두움을 몰아낸 것처럼, 거짓은 진리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진리 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거룩한 진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신앙에 치명적인 요소는 위선과 거짓입니다. 위선과 거짓은 성도들에게 허영심(虛榮心)과 공명심(功名心)에 살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거짓은 영원한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헌신적으로 변했습니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바나바는 참된 헌신으로 재산을 내놓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사단의 거짓 헌신을 통해 비참한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충만으로 거룩해야할 것을 교훈합니다.

 

열납 되는 참된 헌신(36-37)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전함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안정적인 미래를 살려면 많은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모으는데 집착합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은 모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평안하게 살아갑니다.

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36-37)

초대교회는 은혜스럽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요셉Joseph도 있었습니다. 지중해 구브로Cyprus 출신이면서 레위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Barnabas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많은 제사장들이 개종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행 6:7). 그는 레위 지파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근처에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레위인은 땅을 재산으로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민 18:20-24; 신 10:9). 그럼에도 레위인이 밭을 소유하다는 것은, 당시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따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 임재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바나바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Zacchaeus 처럼 회복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신만 위해 모으던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다른 성도들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변화된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바나바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그이지만, 사도행전 11장 24절에서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바나바’로 불렀는데, ‘위로의 아들’란 뜻입니다. 그는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께서 임하니, 아주 아름다운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는 변화되어 말씀대로 살길 원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서 드렸고 또한 남은 인생을 수많은 영혼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되는 사건에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변화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바울을 받아주었고, 다른 사람까지도 설득하였습니다(행 9:26-27). 후에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동참하게 됩니다(행 13:1-5). 평생 동안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바나바의 헌신에 대해 소개하지 않습니다. 당시 바나바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바나바를 언급된 이유는 그가 얼마나 헌신적인 삶을 살았는지 단편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찬양하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시간과 재물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재물에만 집착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주인이신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바나바처럼 성령 충만한 삶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두움이 가득한 그림자(1-2)

인생은 보이지 않는 전쟁터와 같다고 합니다. 특히 성도들은 삶의 전쟁뿐만 아니라 더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진행되는 곳에는 사단 또한 역사하여 강력하게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길 원하시지만, 사단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고 죄악된 삶을 살도록 노력합니다.

1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1-2)

성령의 역사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그 어느 시대의 교회보다 한마음 한뜻되었던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물건을 통용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 중에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초대교회는 은혜스러운 중에 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5장에 들어서 한 사건으로 분위기가 반전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성장하던 교회에 급제동을 건 사건입니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아나니아Ananias와 삽비라Sapphira 부부입니다. 이 사건은 신약 성경 중에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부부는 초대교회의 은혜스러운 분위기에 바나바처럼 자신의 밭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 앞에 드렸습니다. 바나바에서 시작한 아름다운 나눔과 헌신이 다른 성도들에게 펴져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드리고도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밭을 팔아서 드렸지만 전부를 드리지 않고 일부를 감추고 드렸습니다(2). 모두 드린 것처럼 속였습니다. 그들은 바나바와 같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바침으로 가나안 이웃을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들의 마음에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 탐심과 그릇된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니아 부부는 자신의 소유를 전부를 드린 것처럼 행동하면서 자신들도 바나바와 같이 다른 성도들에게 인정과 존경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전부를 드리긴 아깝고 다른 사람에게 칭송받고 싶다 보니, 그들 나름대로 방법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을 몰랐습니다.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나니아는 재물을 ‘다’ 바치는 사람이 ‘큰’ 믿음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자신의 믿음을 부풀렸는지 모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부풀리는 것은 거만한 마음으로 성령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믿음 생활에 허세가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는 데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드린 것을 절대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망치는 것은 불순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교회를 이용하여 재정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상인들, 세상에서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를 지배를 추구하는 권력 지향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 애지중지하게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자기중심적 사람, 거룩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길 원하는 명예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마지막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적게 드리고 많은 칭찬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거짓 헌신 속에 숨은 사단(3-10)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소한 것까지 합치면 평균 10분에 3번 이상은 거짓말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거짓말은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합니다. 계속 거짓말을 하다보면, 거짓이 진실인지 진실이 거짓인지 자신도 혼돈스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진실이지 거짓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져 버립니다. 거짓말은 나중에는 죄책감도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3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3-10)

아나니아 부부는 존경 받는 바나바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들도 바나바처럼 헌신해서 사람들에게 존경 받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부부에게 헌금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결정해서 드린 것입니다. 그들의 시작한 동기가 무엇인지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바나바처럼 나눔의 동기를 통해 칭송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바나바의 헌신에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온전히 드렸지만, 아나니아 부부는 밭을 판매한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이 부부는 좋은 일을 하려는 순간, 사단이 속에 들어갔습니다. 전부를 내놓기보다 적당히 내놓은 것처럼 속기로 작정 했습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은 일이었습니다. 거짓된 헌신을 드린 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킨 어리석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 부부는 일부를 숨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명예욕으로 앞섰습니다. 밭을 판돈을 만졌을 때 사단이 틈을 탔습니다. 현금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땅값의 일부분을 적당한 선에서 들여도 된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금액의 일부를 감추고 전부인 것처럼 속여 사도들의 발 앞에 드렸습니다. 드린 순간 모든 사람들은 매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속일 수 있듯이 하나님을 속일 수 있으리라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리에서 성령 충만함을 지켜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 변질되면 사단이 틈탑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형식적인 헌신되어 자기의 이를 자랑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아나니아 부부의 기대와는 달리,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이런 모든 사실을 간파하고 차단시켰습니다. 성령에 의해 베드로는 거짓말하는 아나니아를 책망합니다. 정말 심각하게 책망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5)

베드로의 책망을 듣던 아나니아는 그 책망을 듣자 그 자리에서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진리의 빛 앞에서 어두움은 쉽게 무너졌습니다. 거짓으로 진리를 속일 순 없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얼마를 감춘 사건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감추었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아간Achan이 도둑질한 물건을 감추었을 때 사용한 단어는 칠십인경(LXX/Septuagint)에 나온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만큼 아간과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동일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간의 도둑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로 몰아갔습니다(수 7장).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아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도둑질이라는 행동으로 첫 번째 물을 흐린 사람입니다.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난 후, 첫 번째로 성령을 속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죄에 대한 결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으로 행위의 목적을 보시는 분입니다. 아나니아가 밭을 판값의 일부를 감추고 전 재산을 바친 것처럼 속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우상화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가 모든 재산을 바치므로 사람들에 의해 칭송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 부부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싶고, 대단한 믿음의 사람처럼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3시간 쯤 지난 뒤에,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나타났습니다. 또 다시 베드로가 그녀에게 “삽비라야,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고 공범자(共犯者)인지를 물었습니다. 삽비라도 남편처럼 “네, 이것 뿐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강퍅한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어찌 함께 괴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드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곧 너를 메어내 가리라”고 말하자, 삽비라도 그 자리에서 영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삽비라는 남편 아나니아가 땅을 판 돈의 일부를 감춘 사실을 알았지만, 남편과 똑같은 거짓말을 해서 똑같이 죽음에 이릅니다. 이들은 불의한 일을 꾀하고 하나님의 영을 시험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은 하나님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출 17:1-2;신 6:16) . 이 부부의 거짓말은 삐뚤어지고, 이기적이고, 교회를 파괴시키는 크나 큰 죄악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를 순수하게 지키길 원했습니다. 거룩한 초대교회 안으로 마귀가 비집고 들어오는 틈새를 막아내길 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엔 안쓰러운 일이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통해서 초대교회의 거룩성을 방어해내고 있습니다.

 

헌신에 대한 반응(11)

사람들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요구하지만,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다보면 어느새 그분이 원하는 성품이 형성됩니다. 역경에 대한 인내력이 더 강해집니다.

11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

사도행전에서 ‘교회(敎會)’ 라는 단어가 첫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은 아나니아 부부에게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듣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교회 안에 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거룩한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복음 가진 성도가 흔들리지 않으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일 후에도 사도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는 많이 일어났습니다. 남녀의 큰 무리가 믿고 주께로 나아왔습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이 다 나음을 얻는 더 큰 응답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목격한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거룩한 자신의 교회에 거니시고 계십니다(계 2:1) .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교회를 보호하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거룩하길 위해 수고하시고 기도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거룩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기도와 전도 그리고 예배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에 힘쓰고,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같이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나친 개인적인 행동은 교회 공동체를 망치는 행동입니다. 성령을 시험하는 행동들은 교회 발전에 저해요인이 됩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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