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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5-03)


꺾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

사도행전 5장 27-42절


성도들이 영적 전쟁을 할 때 홀로 서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사단은 이런 느낌을 악용해서 ‘네가 힘들 때 어느 누구도 돕지 않는다. 그러니까 포기해!’라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성도들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므로 이미 승리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담대하게 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사도들을 산헤드린 종교 재판장에 세웁니다. 재판을 받는 이유는 사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더욱 시기 나게 해서 사도들을 당장 죽이려고 재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숨겨놓은 사람을 통해 그들이 풀려나도록 하십니다. 사도들은 중단하지 않고 이 능욕을 오히려 기뻐하며 계속적으로 중단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27-32)

고난과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고난은 삶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믿음을 확고하게 만듭니다. 또한 각자에게 있는 믿음이 참과 거짓으로 분별됩니다. 고난과 위기 앞에서도 사도들은 사람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하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27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27-32)

 죽음 앞에서라면 담대한 증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일이 예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했습니다(행 1:8).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훔 1:6). 사도들은 이미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권세의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⑴ 대제사장의 심문(27-28)

사도들은 다시 산헤드린 공회에 서서 2차 심문을 받습니다. 공회원들은 사도들에게 그들이 사역한 기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전한 예수님의 부활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기적은 인정하지만, 부활의 복음은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제자들에게 심문한 내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심문 내용은 전도 금지령에 관한 것이고(28a), 다음 심문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에 관한 것(28b)이었습니다. 첫째 심문에서는 대제사장은 사도들에게 심문하면서 1차 때에 주어졌던 복음 전도 금지령을 상기시킵니다.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문책합니다. 대제사장은 훈계하면서 “이 이름으로”와 “이 사람의 피를”이라고 예수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그만큼 자신들에게 크나큰 골칫거리를 안겨주는 사도들과 그의 스승인 예수를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도들이 담대하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23,36)라고 전하면서, 예수를 죽인 책임은 로마제국만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과 모든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는 로마의 정치범으로 죽었는데, 예수에 대한 죽음의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린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자신들이 책임지겠다고,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태복음 27:25)라고 장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들이 책임을 지적하자 발끈합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이와 같은 말의 배후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이 고대했던 메시아를 로마 당국과 공모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이며,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땅히 유대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이었습니다.

⑵ 사도들의 답변(29-32)

제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억압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전도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더욱 힘썼습니다. 죽음이 무서워서 달아났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에게 무서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피고로 선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의 위협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의 산헤드린 앞에서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선배들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히브리서 11:26).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사도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갈릴리 어부가 아닌 복음의 사역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① 사도들의 첫 반응(29)

먼저 베드로와 사도들은 담대하게 순종해야 할 대상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고 합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가 1차 심문을 받을 때 했던 말과 맥을 같이 합니다(사도행전 4:19).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권위보다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첫 번째 순종의 대상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사람의 말을 따르기보다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행 5:20-21).

② 사도들의 메시지(30-31)

대제사장의 두 번째 지적에 대해, 사도들은 짧지만 강력한 대답을 합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주관할 수 있는 권력자들 앞에서 자신들을 변호하거나 변명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라는 의미로 십자가에 달아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신 21:22-23). 하지만 사도들은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해, 하나님의 우편에 앉힘으로써 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이라고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직언도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서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예수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의 형벌을 받은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그가 메시아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유대교의 저주 관념에서 ‘나무에 달아’(신 21:22-23)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인공은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행했던 기적적인 사역들과 구약의 기적들을 연결시켜 하나로 묶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여러 가지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역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③ 증인으로 삶(32)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구주로 세우신 일에 자신들이 증인이라고 선포합니다. 모든 삶으로 예수님께서 구주이심을 증거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사도들의 사명은 증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것을 증거한 사역은 사도들과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순절 성령 임재하신 주된 이유도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해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오직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만 증거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증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단호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쉬지 않고 계속할 것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며, 자신들을 심문하는 현장을 복음 전파의 현장으로 만듭니다.

사도들의 담대한 변론은 모든 성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동참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대적들 앞에서도 두려워 할 것 없이 담대하게 증거 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기력해 보여 전할 말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을 통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눅 12:1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담대하게 전파해야 합니다.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도움(33-39)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포기해야할 상황까지 처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한다면, 그분은 반드시 그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돕는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33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33-39)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전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권위 앞에 두려워 떨면서 순복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든다고 하면서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⑴ 사도들을 죽이려는 산헤드린(33)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찔림을 받은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반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화가 났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실상은 산헤드린 공회의 결의에 순종하지 않으면 최고 형벌(刑罰)인 출교(黜敎)는 시킬 수 있어도 사형은 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불법에 불법을 더하는 것으로서 저들이 완악하고 강퍅한 심령을 가지고 있다는 단편적인 사실입니다. 그들의 분노는 하나님께 믿음의 제사를 드린 아벨을 향한 가인의 분노와 같습니다(창세기 4:5-8). 자신들의 분노를 살인까지 연결시키려 한 점들에서 동일했습니다.

⑵ 가멜리엘이 자제 요청(34-39)

분노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죽이려하자 하나님께서 숨겨둔 사람으로 하여금 역사하도록 합니다. 바로 바리새인이며 교법사(敎法師)인 가말리엘Gamaliel 을 인도하십니다.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사도들을 변호해 준 것이 아닙니다. 사두개인 중심으로 성급한 살해 결정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사도들이 율법에 크게 어긴 일이 없었기 때문에 사도들을 처리할 때는 상식적이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① 가말리엘의 등장(34-35)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공회 밖으로 보낸 후에 비공개로 공회원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조언에는 고집불통 산헤드린의 분노를 완화시키고 사나운 박해를 저지시켰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도들이 하는 일이 사람의 조작으로 시작했으면 금방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면 아무도 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② 가말리엘의 제안(36-37)

그는 역사의 두 인물을 예로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드다Theudas’라는 사람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해 나갑니다. 요세푸스는 ‘드다’라는 사람은 추측하기를 ‘맛디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헤롯의 성전 기둥에 설치한 황금독수리 상을 파괴하고 동시에 폭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백성들이 잠시 현혹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었고 화형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사형되자 추종자들이 흩어졌습니다. 다음으로 갈릴리 ‘유다’에 대한 반란 사건에 설명입니다. 당시 아구스도 황제의 명령에 따라 과세 책정을 위해 호적을 정리했습니다. 유다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수납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도리가 아니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 된다고 역설하면서, 민족주의적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반란 또한 로마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그 추종자들도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의 논증은 지도자인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만일 사도들의 활동이 사람들의 조작(造作)에 의한 것이라면 ‘드다’와 ‘유다’의 경우처럼 결국 무산될 것이라는 생가하면서, 사도들을 석방(釋放)한다고 유대 사회가 혼돈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③ 가말리엘의 조언(38-39)

가말리엘이 우려한 것은, 만약 사도들이 하나님께로 나왔다면, 사도들을 통해 이룬 사역에 대한 대적자들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는 그럴 가망성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바울의 스승 가말리엘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유대교적인 사람을 통해 유대교를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제자 바울이 나중에 회심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산헤드린 공회는 그의 말에 대해 옳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로마서 8:28). 하나님께서는 위기 속에서 가말리엘을 사용해서 사도들을 풀어 주십니다. 주님 뜻은 인간의 위협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셨기 때문에 사도들이 풀려나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풀러남(40-42)

운동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땀만큼 성적은 맺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은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 뒤에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한 축복의 가치를 알 때, 얼마든지 핍박과 능욕을 받을 수 있습니다.

40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40-42)

가말리엘의 제언에 산헤드린 공회원들 특히 사두개인들까지도 그의 말에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법대로 불순종에 대해 태형(笞刑)으로 사도들을 처벌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태형의 최고형은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신 25:3)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사도들에게 최고형으로 때리면서 그들에게 함구령(緘口令)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산헤드린의 무법성과 야만성을 다시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경고를 받았지만 사도들은 어디서나 예수의 복음을 전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태형으로 맞고 풀려난 사도들은 산헤드린 공회와 정반대로 기뻐합니다. 상식적인 것과는 다르게, 안전이 아니라 고난이 그들이 하나님의 증인이었음을 입증 합니다. 사도들이 당한 고난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우 기뻐합니다. 고난조차 기뻐하는 사도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전적인 신뢰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모두 다 고난은 싫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요 15:20-21)

2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이러한 예언은 대부분 성도들에게 달가운 약속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다른 예언만큼이나 확실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자신들이 당한 고난을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달갑게 받아 들린 것입니다.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한 것임을 생각하면서 반대로 감사합니다. 무서운 위협의 산헤드린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석방된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오직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요, 주가 되신다는 것을 전파했습니다. 이 사실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핍박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사도들은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받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가치와 천국에서 상급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영광을 기억하기에 복음을 위해 치르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은 것입니다(로마서 8:18). 감춰진 보화를 발견해 모든 재산을 팔아 밭을 산 것처럼 오히려 그 일이 기쁨이 되고 최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죽음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침없이 선포되어 전파되고 있습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말씀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흐름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어려움과 괴로움까지도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들에 대해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주실 상급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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