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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4-02)

 


보고 들은 것만을 말하는 사도

사도행전 4장 13-22절


우리는 때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현상 또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이해나 경험으로인해 잘못된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판단은 항상 옳을 수 없습니다. 또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쉽게 판단하거나 단정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된 제자들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출신과 성분으로 단정 짓고 그러한 자기 판단에 사로잡혀서 제자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치유했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과 동일하게 사도들에게까지 성령의 능력이 연결됨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두려움으로 임했습니다. 그들은 위협하면서 사도들의 사역을 방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복음의 확산(13-14)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들을 때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닿으면, 고백하고 자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13-14)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 예수님께서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골방에 숨어 지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능력하게 두시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 충만해져 담대해졌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데로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의 선포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성령의 역사하심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성전 미문 앞에서 앉아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말씀으로 일으켜 걷게 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솔로몬 행각으로 몰려온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긴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 다음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했던 사역을 판단했지만, 제대로 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능력을 넘어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아무런 권위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무시하여 함부로 대하고 심하게 심문했습니다. 사도의 신분은 귀족이나 부자도 아니고 특별한 학벌도 없는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 아래 권위적인 분위기만 잡기만 하면, 두 어부의 입을 막을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협박과 신문에 오히려 성령이 충만하여 더욱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권세자들 앞에서 그들은 당당했습니다. 그들은 생각과는 다르게 앉은뱅이를 고치는 능력이 있었고, 전하는 내용은 무식한 말이 아니라 논리가 정연했습니다. 영적인 권위와 능력이 자신들보다 사도들이 훨씬 월등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사람들이 더 많이 반응하고 따른 것을 보면서,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모습을 본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놀랍고 이상하게 여깁니다. 몹시 편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대부분이 별 볼일 없는 시골 나사렛 평범한 어부들에 불과한 줄 알았지만, 이들이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는 대단히 분명했고 무엇보다도 담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에 사로잡혀 제자들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힘으로 위협 당하는 복음(15-18)

사람의 손바닥으로 하늘 전체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게 해보려고 계속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하늘을 가려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사람들이 막으려면 할수록,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환란이 있지만 반드시 주께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낙심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만이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15-18)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고, 점점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현실로 나타났고, 그 증거들이 확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았고,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부인할 수 없는 유명한 표적으로 사도들을 칭송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이 행하는 명백한 표적을 공개적으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루살렘 있는 사람들이 인정한 증거를 억지로 거부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더 두려워한 것입니다.

‘영적 권위(靈的 權威)’에 대해 잠깐 살펴보면, 최고의 권위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절대 군림의 권위가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 겸손하게 하늘의 권위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사용하지 않고 용납의 사랑으로 모두를 품어주셨습니다. 그의 교훈은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나의 삶을 따르라’라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역사 속에서 이러한 권위를 잘못 사용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에게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위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를 잘못 사용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본문에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당황스런 상황을 어떻게든지 모면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잠시 공회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기들끼리 대책을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종교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권위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거나 하나님이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만 의식해서, 사람들로부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정리만 하려고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셨다는 것을 잊고, 하나님의 영적 권위마저 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들로부터 흐트러지지 못하게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회의한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들이 복음과 기사가 더 퍼지지 않도록 제자들의 입을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금지 시키기로 결의했습니다(17). 그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사도들의 입을 막으려고 협박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권위 아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도 불쌍한 영혼이요 회개해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구원 받아야 할 영혼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이 확산되는 곳에는 항상 함께 따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단의 훼방입니다. 성령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방해합니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은 빛을 싫어하듯이 항상 반대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상히 여지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초월한 능력(19-20)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항상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며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 위협과 도전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뿐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19-20)

예루살렘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면서 명령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명령에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라고 대답합니다.

사도들은 성령 임재를 통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히 11:38). 단 한 번의 성령 임재를 통해 변화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변화된 사람들은 사람의 시선(視線)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때에는, 엉뚱한 행동들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듣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가장 힘들 때에도 부탁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부인하고 도망갔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도들을 보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아름다운 제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현재의 연약한 모습을 보신 것이 아니라, 장차 성령 체험을 통하여 변화될 미래의 모습을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경고에 대해 묵살합니다(19). 오히려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지 판단하라고 반문합니다. 사도들은 서슬 파란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그 동안 예수님과 같이 다니면서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 일들도 많았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니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령 임재로 능력의 사도들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대적들의 경고와 위협 앞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더 담대하게 전합니다. 오히려 유대 지도자들에게 반문(反問)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입니다. 재판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반대하는 자들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가르침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들은 담대하고 확신에 차 있었으며 용감했습니다.

 

모든 사역의 결과(21-22)

신앙 생활하면서 경험하고 배웠던 것은 모두 헛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손이 터치하면 가나안 혼인 잔치의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모든 경험과 지식이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 인간의 작은 경험이나 지식도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 되어집니다.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21-22)

유대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점점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합니다. 사도들을 제어할 수 있는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계속 위협하고 협박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위협과 협박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어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권위적인 명령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사도들을 핍박함으로 자신들에게 반대로 피해가 올까 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위협하고 석방하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악인들의 훼방은 무기력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황을 초월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복음 전도자의 삶은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길을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로 위협해 봅니다. 하지만, 그 권위는 하나님의 권세를 어떻게 해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면 됩니다. 앉은뱅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처럼, 당신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학문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성령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 담대하게 증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모든 영적 경험들을 통해 세상에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 하는 전도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비록 당신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성령이 임하신다면, 훌륭하게 변화되고 능력 있게 사용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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