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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7-02)


스데반의 설교(Ⅱ): 모세와 이스라엘

사도행전 7장 17-36절


‘교회(敎會)’의 정의를 하면,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과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가정(家庭)’, 또한 집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입니다. 요즘은 기업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을 귀중하고 아름답단 것을 설명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합당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과의 사람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스데반 집사의 설교 중에 한 부분인 모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메시지 중에서 모세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많이 설명합니다. 특별히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고 성취해 가십니다. 스데반의 의도는 모세와 그 시대의 이야기하면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유사성을 발견하도록 유도합니다.

 

모세를 준비시키신 하나님(17-29)

사람들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선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선택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해서 실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까워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빈틈이 없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이라도 그것까지라도 사용하셔서 최선의 길을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17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23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17-29)

스데반 집사는 아브라함과 요셉까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모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갑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그의 생애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스데반의 메시지 중에 모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깁니다. 그 이유는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스데반을 고발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길게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모세와 그 율법을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존경하며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모세에 대한 스데반의 깨달음과 선포가 스데반을 고발했던 유대인들보다 귀하고 훌륭하고 옳은지를 충분하게 설명합니다. 성전과 율법 그리고 모세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임을 깨닫지 못했던 유대인들에게 스데반은 모세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차분하게 설명해 준 것입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일생을 세 부분을 나누어서 가르쳐 줍니다. 그 구분을 자세하게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부분은 죽음의 위기를 넘어서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는 과정입니다(20-22). 두 번째 부분은 사십 세가 되어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동족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화가 되어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 살게 된 과정이며(23-29), 마지막 부분은 다시 사십년이 지나서 팔십 세가 된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지도자로 세워 사용하신 일(30-36)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해갑니다. 모세의 생애를 잘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모세의 성장과 소명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모세가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인류를 위해 오신 구원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⑴ 모세의 성장기(17-22)

스데반 집사는 아브라함과 요셉을 불러 구원을 실행하신 하나님께서 또 한 사람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합니다.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애굽에 큰 경제적 부흥을 이끌었던 요셉도 시간이 흐르자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이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위기 상황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낮선 타국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당시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짐승처럼 비참하게 다루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 히브리인들은 후손들이 왕성해져 갔습니다. 바로에게는 위기였습니다.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출산해서 남자 아이들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시기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자기 아버지 집에서 3개월을 키워지다가 나일강에 갈대상자에 담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적으로 애굽의 바로의 딸인 공주에 의해 발견됩니다. 그 아이를 공주는 양아들로 받아드려졌고 왕궁에서 양육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누나 미리암의 도움으로 모세는 생모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아이가 부활한 것입니다. 요셉을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모세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모세의 성장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모세가 애굽의 훌륭한 학문을 전수 받아 언변과 행동이 뛰어난 인물로 성장했음을 부각시킵니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서 준비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적의 한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를 양육하신 것입니다.

⑵ 모세의 장년기(23-29)

스데반은 모세에 대한 연약함과 실수도 감추지 않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열심을 의지했을 때, 그는 도망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담대하게 나갔을 때, 애굽의 노예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낸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① 이스라엘의 구원자라고 생각한 모세 애굽의 왕궁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 성장한 모세의 나이가 40세가 되었습니다. 점점 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고 고민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는 400년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의 시대에 구원을 이루신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② 구원자들은 거부하는 이스라엘 모세는 항상 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자기 이스라엘 백성을 무고히 괴롭히는 애굽 관리를 보고 그를 쳐 죽이게 됩니다(24). 모세는 애굽의 왕자이면서도 자기 동족 이스라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기대한 것은 자기 동족들이 자신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뜻밖에도 이런 모세의 기대는 이튿날 깨집니다. 다음날 모세가 지나가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화해시키려고 중재하려고 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동족으로 여기지 않고 무시하면서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자신의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자를 이스라엘이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보다 안정되게 빵만 먹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언약에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③ 미디안 광야로 도망한 모세 결국 모세는 애굽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로 갑니다. 단지 한 사람 죽인 것이 발각되어 도망한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왕자는 신적인 존재인데, 파리 목숨 같은 애굽 사람 한 명 죽였다고 도망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가 도마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키려고 애굽을 반란할 계획이 들통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망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밀고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동족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살고 있는 모세는 양치기에 불과한 무능력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친히 다듬으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장차 민족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온 인류를 구속하시려고 영원한 경륜에 따라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연단시키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모세가 동족인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로 일어셨지만, 그들에게 거절당했고, 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잘못된 행동을 설명합니다. 아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모세 당시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을 그렇게 하지 안했을 것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스데반의 설교를 듣는 당시에 유대인들이 선조들처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버렸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유대인들의 행동을 질책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에 대한 모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큰 지도자였던 모세도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실패가 될 수 없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실수 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셨습니다. 모형이었던 모세의 실체로 이 세상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증명해 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방법과 필요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모세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30-36)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역사하신 분입니다. 우르에서 애굽까지 고대 시대의 비옥한 지역인 고대 시대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에게 펼쳐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형들의 실체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땅에 오신 것입니다.

30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30-36)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문명의 발생지였던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유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듯이, 애굽 땅 핍박의 시절을 살고 있었던 유대 민족을 구원해 내기 위해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⑴ 하나님께서 임재한 광야 성전(30-33)

미디안에서의 모세 40년은 엄청난 훈련과 연단의 기간이었습니다. 모세의 나이 80세, 애굽을 떠난 지 40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 때까지 미디안 땅에서 무의한 것처럼 결혼하고 자녀 둘을 낳고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살았습니다. 시내산 광야에서 가시나무 떨기가 불꽃 가운데 천사의 모습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30).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새로운 사명자로 다시 태어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31-33). 그리고 이후에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하였습니다. 40년간 광야 생활 가운데 그들을 이끌면서 하나님의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그 기간이 끝난 후,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모세에게 임재 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이 ‘광야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광야 성전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금 전까지 모세가 양을 기르던 광야가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건물이 있어야만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신 곳과 하나님의 임재에 어울리게 신을 벗고 경배하며,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백성이 있는 곳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물 성전만을 중요하게 여겼고, 정착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밀고하고 거부하였듯이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을 거절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가로 막았습니다.

⑵ 새로운 말씀이 전해진 광야 성전(34-36)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광야 성전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모세에게 자신이 나타난 이유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고 밝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우리의 괴로움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모세 시대의 바로, 모세 시대의 선한 의도를 의심했던 동족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자기 지식 안에 가두어 놓고 이해했던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모세를 거절하던 유대 민족과 악한 권력자들까지 스데반은 모세와 그 시대의 역사를 가져다가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기 동족과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정치 권력자들을 고발합니다. 율법과 성전을 소유하고 있어도 하나님의 신실함과 그 섭리의 역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지 않는다면 율법과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세의 여정처럼 인생의 굴곡진 길을 걸어가 살게 되겠지만, 모세에게 일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신실하게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불러 준비하신 일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모세의 침묵이 하나님의 침묵이 아닌 것처럼, 모세의 공백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공백이 아닌 것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족에게 거절당한 모세를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일꾼은 세상의 관점과 다른 인물임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모세처럼 신발을 벗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믿음과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모세를 통해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신 과정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했지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신도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함당한 일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이제 당신을 불러서 죄악에 물든 영혼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도구로 사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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