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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1-04)


유월절의 진짜 어린양인 예수님

요한복음 11장 47-57절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 기존의 안정된 질서나 위치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때, 심각한 토론과 깊은 성찰보다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강한 반발이나 제거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상 유지를 통해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새로운 기술, 사상, 혹은 인물이 등장할 때 기존 체제에서 유사한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나사로 부활 사건 이후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며 모의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그들은 로마의 제재로 나라와 성전을 잃을 것을 염려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죽어 온 민족이 보존되는 것이 낫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죽음을 정당화했습니다. 결국 이 날부터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에브라임 근처로 물러나셨습니다.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았고, 지도자들은 그분을 잡을 기회를 노렸습니다.

 

기적 이후 종교 지도자들(47-53)

사람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종종 이성보다 두려움에 따라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층은 때때로 명백한 사실이나 선한 영향력조차도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된다면 외면하거나 적대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조직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기득권이나 안정을 잃을까 두려워 새로운 변화나 진실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47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또 그 민족만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47-53)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투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때 귀하게 여기던 것도 시간이 지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쉽게 버려 버립니다.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참된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자신의 성공과 출세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 혹은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로만 여겼습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계산 속에는 결코 그분이 합당하게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1) 유대 지도자들의 대책(47-48)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사건이 있던 날, 그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이 이 소식을 바리새인들에게 전했습니다(47절).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놀라운 소식은 곧 베다니 전역에 퍼져 나갔고, 베다니가 예루살렘에서 약 2.9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소식은 순식간에 예루살렘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빠르게 확산되자, 종교 지도자들은 즉시 움직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속해서 표적을 행하게 두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르게 될 것이며, 결국 로마 제국이 개입하여 성전과 민족을 파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49절). 산헤드린은 유대 사회에서 행정과 사법을 아우르는 최고 의결 기관으로, 당시 사회와 종교 전반에 걸친 권위를 가진 기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특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단순히 백성을 미혹하는 위험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기적의 참된 의미나 하나님의 뜻보다는, 그것이 초래할 정치적 결과와 자신의 지위에 대한 두려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로마 제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해 왔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활동이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다면 로마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존재와 활동을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만 기록된 이 부분은, 로마 당국과 유대 지도자들 사이의 긴장 관계와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을 보여 주며, 단순한 개인적 반감이 아닌 복합적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던 시각을 이해하게 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를 보여주며, 인간의 계산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뜻과 대비될 때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위기 의식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세상의 계산과 두려움 속에서 진리를 외면하거나 오해할 수 있음을 경계하게 됩니다.

 

(2) 한 사람의 죽음을 예언한 가야바(49-53)

 

그때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무지를 지적하며,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50)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형되던 그 해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철저한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유대 사회에 생길지도 모르는 반(反)로마 항쟁의 불씨를 미리 꺼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가야바의 이 주장을 단순한 정치적 계산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이 지니는 구속적 의미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속한 인간의 악한 의도까지도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1세기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마카베오 형제들처럼, 민족 전체를 위해 한 사람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이상적인 희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민족을 위한 희생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하며, 결국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되리라는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52절)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특정 집단만이 아니라 장차 교회로 모일 모든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비록 가야바는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말했지만, 그 말 속에서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결국 산헤드린 공회의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을 내버려 두면 사람들이 따르게 될 것이고, 그분이 점점 더 인기를 얻어 왕으로 추대된다면 자신들은 지도자의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불안은 예수님의 기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지위와 권세가 흔들릴까 하는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에브라임으로의 피신하신 예수님(54-57)

모든 상황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무모함만이 용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위협을 피하고, 힘을 아끼며,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는 개인이나 조직이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전략적으로 물러나거나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모든 싸움에 임할 필요는 없으며, 언제 싸우고 언제 피할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54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55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54-57)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그 방법을 모색합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간다 해도, 모두가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헌신하며 마음을 다하는 마리아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1) 빈들에 머무는 예수님(54)

 

나사로의 부활 사건 이후,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 지도자들의 결의가 내려진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공개적으로 다니지 않으시고, 한적한 산속 가까운 마을로 물러나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기 위한 전략적 이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제자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그들을 가르치고 준비시키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위협과 계획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좌절되지 않으며, 때로는 물러남과 숨는 시간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귀한 기회가 됨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을 잡으려 한 유대지도자들(55-57)

 

본문에서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55)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이 다가오는 시점에 에브라임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11장 이전에도 이미 두 번의 유월절이 언급되었지만, 이번에는 유월절에 대한 기록이 훨씬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언급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되며, “유월절이 가까움에”라는 표현은 단순한 시간적 흐름을 넘어, 예수님의 운명적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즉 유월절을 성취할 분으로 소개됩니다. 따라서 유월절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날이 임박했음을 의미합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예수님께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 관심은 모두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57절에서 보듯,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마치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는 맹수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메시아적 이미지로 비쳤기 때문에, 종교 당국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지만,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지도자들은 이를 두려워하며 체포 명령을 내려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등장하지 않는 가운데 그들 사이의 대화는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함과 같으며, 이미 사건의 대세는 예수님의 체포와 죽음으로 기울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본문에서 유월절의 언급은 과거 출애굽 사건의 구원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한 분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구속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이 드러났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습니다. 일부는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두려움과 권력 유지를 위해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모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좌절되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길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그분의 죽음은 단순히 한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로 모으는 구속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세상의 계산과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가치와 길을 붙들라는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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