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04)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
요한복음 11장 38-46절
깊은 상실과 충격 속에서도 사람은 쉽게 절망에 빠지지만,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며, 작은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때로는 주변의 도움과 위로가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회복의 길이 열리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셨습니다. 무덤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불러내시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일부는 여전히 반대와 의심을 품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권능과 자비를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믿음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38-44)
영적인 회복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단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천천히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작은 변화와 노력들이 쌓이면서 점차적으로 삶이 회복됩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는 경험을 통해 성장과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꾸준한 변화의 과정을 통해 큰 변화를 만들어내어 삶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38-44)
베다니에 도착한 예수님에 대해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아무 기대 없이 슬픔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1) 무덤 앞에 서신 예수님(38-40)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으로 직접 가시는 대신, 곧바로 나사로가 잠들어 있는 무덤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무덤 앞에 서신 예수님의 마음은 깊이 비통하고 무거웠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큰 돌을 보시고,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39)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장례 풍습은 동굴을 파거나 자연 동굴을 무덤으로 삼아 시신을 안치하고, 다시 큰 돌로 입구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돌을 옮기라는 말씀은 단순히 물리적인 요청이 아니라, 곧 있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위한 준비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돌을 치우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옮기라고 하신 이유는 그분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순종과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방식을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하여, 나사로의 부활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들이 함께 누리는 은혜라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그 말씀 앞에서 여전히 주저했습니다. 그녀는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사오니 벌써 냄새가 납니다”(39)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적 이해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시신 곁에 머물다가 나흘째 되는 날에 완전히 떠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흘은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시점,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확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마르다의 대답은 예수님의 말씀을 여전히 현실적인 한계 안에서만 이해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기는 했지만, 그 믿음은 아직도 “마지막 날의 부활”이라는 미래적 사건에만 묶여 있었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를 향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 예수님은 이미 그녀에게 생명의 주권자가 자신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믿음을 촉구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는 조건은 바로 ‘믿음’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처음에 제자들에게 하셨던 선언, 곧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4)는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하고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난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현실에서 믿음으로 옮기게 하셨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보게 하셨습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도전이 됩니다. 절망처럼 보이는 현실 앞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2) 무덤에 나온 나사로(41-44)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누군가는 나사로 무덤 앞의 돌을 옮겼습니다(41). “눈을 들어 우러러본다”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취하는 전형적인 자세를 나타내며, 예수님의 기도는 확신과 적극성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단언하시며, 감사함으로 믿음을 드러내셨습니다(42). 이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가 전적으로 하나임을 보여 주셨으며, 둘러싼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음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43)고 큰소리로 명령하시자, 죽은 나사로는 즉시 반응하여 미라처럼 천에 감긴 상태로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44). 예수님은 “풀어서 다니게 하라”라고 명령하심으로, 나사로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이미 부패가 시작된 나사로를 회복시키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에서도 문제와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죽은 듯한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삶에도 위로와 회복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위로를 받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과 회복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상태의 나사로를 완전히 살리셨듯이, 우리에게도 절망과 무력함 속에서 새로운 삶과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45-46)
희망과 회복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함께 나누어질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한 사람의 회복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용기로 이어집니다. 회복의 경험이 공유될 때 공동체 전체가 격려와 힘을 얻고, 개인의 변화와 회복은 결국 공동체 속에서 더 큰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45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46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45-46)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비롯해 위로하러 온 사람들 모두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마다 나타난 다양한 반응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과 경외심으로 감탄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의심과 불신으로 반응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사건도 보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1)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45)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놀라운 표적을 보고 믿는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을 때로는 예수님께서 부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표적은 결국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표적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2:11). 왕의 신하도 자신의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그와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4:53).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을 보고 그를 믿었습니다.
(2) 바리새인들에게 보고하는 자들(46)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단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바리새인들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보고는 예수님의 표적을 긍정적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도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어지는 단락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한 것을 보면, 그들의 보고가 예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많은 유대인들은 믿었지만, 동시에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도 참된 믿음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전체에는 이처럼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례들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심지어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참된 믿음이 아닌 거짓된 믿음의 모습도 나타납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것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5장에서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치유를 받았지만, 그의 반응은 오히려 부정적이었고, 유대인들은 안식일 문제를 빌미로 계속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9장에서도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그 표적을 믿으려 하지 않고, 그가 정말로 맹인이었는지 부모를 불러 따지며 기적 자체를 부정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나사로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표적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적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입술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참된 믿음이 없는 거짓 신자들의 모습도 드러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유대인들의 믿음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믿음에 불과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많은 사람들이 따랐으나,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분임을 밝히시고 영생에 대해 말씀하시자, 그들은 곧 실망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땅의 일에만 있었고, 예수님의 진리 안에 머물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분명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를 것인지, 아니면 바리새인들에게 나사로의 사건을 알리며 예수님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처럼 돌아설 것인지, 우리 앞에는 반드시 선택해야 할 길이 놓여 있습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확신하게 합니다. 이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되었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두고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갈라진 것처럼, 오늘 우리도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단순히 기적을 보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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