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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1-01)

 


하나님의 영광을 사역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1장 1-16절


 

우리의 삶에는 누구나 병과 고통, 그리고 문제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사랑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기를 원합니다. 신앙의 길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의지할 분이 필요합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은 어려움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곁에 있어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고난 속에서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고, 사랑과 신뢰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베다니라는 마을에 나사로라는 사람이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였는데,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았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자 두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상황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병이 났다고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나사로 가족 사이의 깊은 사랑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나사로를 살펴달라는 간청(1-6)

우리도 삶의 긴급한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빠른 응답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대로 역사하지 않으시며, 때로는 응답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문제의 해결은 오직 주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때에 응답하시기에, 우리는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1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3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5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1-6)

 

성경에 나오는 많은 여성 중에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바른 신앙을 가진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그녀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옥합을 깨뜨리어 드리는 마리아의 모습에서도 진정한 예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녀들이 사랑하는 오빠의 질병 앞에서 나타낸 신앙의 모습을 통해 바른 신앙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등장 인물들(1-2)

 

요한은 이 장을 시작하며 먼저 주요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깊이 사랑하셨고, 그들 역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살던 곳은 베다니였는데, 이는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베다니(1:28)와는 다른 장소입니다. 두 자매 중 마리아는 훗날 12장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인물이며, 병든 나사로는 그녀와 마르다의 오빠였습니다.

 

(2) 누이들의 간청(3-6)

 

예수님께서 깊이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의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는 급히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으로 볼 때, 나사로의 병은 실제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중대한 병이었습니다. 두 자매는 그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했고, 저자 요한도 특별히 이 세 남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훗날 예수님의 눈물과 이를 바라본 유대인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생사가 달린 매우 시급한 소식을 들으셨음에도 곧바로 베다니로 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틀 동안 더 지체하셨습니다. 이는 앞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의 병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라고 하신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생사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즉시 움직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정하신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결국 이틀이 지나서야 유대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소망과 기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따라 영광을 받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곧 오셔서 나사로를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 큰 표적, 곧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계획하고 계셨기에 의도적으로 시간을 늦추셨습니다. 제자들과 자매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마음이 서운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합당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셨습니다.

 

두려움을 넘어선 주의 길(7-10)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고통과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이나 하나님의 사역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선한 일을 이루실 예수님만 믿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역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8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9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7-10)

 

예수님께서는 종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일꾼의 자세를 가르치셨습니다. 종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한 후에도 당연한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도 마땅히 겸손히 섬기며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의 자세로 오직 주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1) 이틀을 더 머무신 예수님(7-8)

 

예수님께서 당시 머무신 곳은 베다니에서 약 150km 떨어진 바타네아 지역이었습니다. 건강한 성인이 걸어서 약 4일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기에, 나사로의 병 소식을 듣고서는 급히 출발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틀을 더 머무신 후, 마침내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향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는 나사로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아신 상태에서의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살리셨다면, 사람들은 그의 죽음 자체를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흘이 지난 주검을 살리심으로써,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명백하게 증명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대로 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베다니로 가자’ 혹은 ‘나사로에게 가자’라고 하지 않고, ‘유대로 가자’라고 하신 것은 그 목적이 단순히 나사로를 살리는 데 있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유대는 예루살렘과 베다니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뜻하며, 예수님께서는 이 길로 예루살렘까지 가셔서 십자가의 사명을 이루실 계획이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세심하게 구하시며 사역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사로가 살던 베다니는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던 유대인들이 사는 예루살렘 근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얼마 전 박해를 피해 요단 강 건너편으로 왔음을 떠올리며, 다시 위험한 곳으로 가려는 예수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유대로 향하는 길은 무모하게 보였고, 마치 자신의 발걸음이 죽음으로 향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온전히 믿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2) 비유를 하신 예수님(9-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역해야 할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낮과 밤의 비유를 통해 제자들의 두려움을 씻어 주신 것입니다. 밤에는 빛이 없어서 실족하지만, 낮에는 실족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제자들이 우려한 유대인들의 박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라는 말씀은 하루 중 일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사역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결국,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므로, 어떤 유대인도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며, 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의 길이 항상 평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이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으며, 요셉처럼 실패와 고난,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만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붙잡고 그분 안에 서 있는 사람은 결코 넘어뜨려지지 않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11-16)

사람은 위험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삶의 상황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멈추거나 피하지 말고, 순종과 신뢰로 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어려운 길을 두려워했지만, 그 길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었습니다.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11-16)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표현하시자 제자들은 이를 육체적 잠으로 오해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명확히 밝히며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 그에게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고,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며 비장한 충성심을 보였습니다.

 

(1) 예수님의 선언(11)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나사로의 죽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사로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날 때가 왔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반응은 예수님이 빨리 오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실 사역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고 말씀하였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잠으로 말씀합니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이지만, 예수님께는 죽음조차 주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2) 제자들의 인간적인 오해(12-13)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이해했습니다.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즉, 나사로가 단순히 깊은 잠에 빠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상식에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듣지 않고, 일상적인 경험과 상식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깊은 진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그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말함인 줄 생각하였더라”(13)고 기록합니다.

 

(3)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14-15)

 

앞선 11절에서 예수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잠이 들어 병이 나을 징조로 오해했습니다(12). 예수님은 제자들의 오해(13)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으시고 ‘밝히(parrēsia, 명료하게, 분명하게)’ 말씀하심으로써 진실을 확정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14b-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분명히 알리시며, 이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에 큰 유익을 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자녀들은 이러한 관점으로 사역을 해가야 합니다.

 

(4) 도마의 결심(16)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6)고 말합니다. 도마는 종종 의심 많은 제자로 기억되지만, 이 장면에서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는 결단을 보입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기 전에 예수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지체하심은 결코 무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우리 믿음을 더욱 깊게 하시려는 깊은 사랑의 계획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삶에도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좌절의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주님은 함께하시며 우리를 향한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절망의 순간에도 예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놓지 마십시오. 우리가 삶의 막다른 골목에 마주할 때,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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