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03)

우는 자와 함께 우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1장 28-37절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일들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익숙한 죄악의 자리에서는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분명히 떠나야 할 자리인 줄 알면서도,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제자리만 맴돌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성도들에게도 “네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익숙한 자리를 떠나 새로운 역사를 살아가기를 원하시며,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 본문에서 마르다와 대화를 나눈 예수님은 마리아와의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달려가 눈물로 호소하고, 이를 본 유대인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슬픔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나사로를 살리지 못했다며 의심했습니다.
마리아를 부르신 예수님(28-31)
사람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면 충격을 받아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떤 위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떤 좋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점점 문제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마리아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슬픔에 빠진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먼저 만난 마르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전합니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28-31)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베다니 마을)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다가 처음 나와 맞이했던 마을 입구 부근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겨 있던 마르다가 요한복음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앙고백은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11:27)라는 고백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마르다는 마리에게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알려줍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 슬퍼하고 있는 마리아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1) 마리아를 부르신 예수님(28-29)
마르다는 마르다는 조문객들의 눈치를 보면서 은밀하게 예수님의 부름을 마리아에게 “주님이 너를 부르신다.”라고 전합니다. 그녀는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 나갑니다(28). 흥미로운 것은, 많은 조문객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 개인을 부르셨다는 점입니다. 본문에서 ‘가만히’라는 말은 다른 사람 몰래 비밀스럽게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메시지를 전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다를 만났던 곳에 서 계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마르다가 마리아를 조용히 부르 므로 유대인들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마리아를 따라간 유대인들(30-31)
예수님은 곧장 마리아와 마르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상황을 조율하시며 믿음을 세우기 위한 시간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즉시 개입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십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2:4)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마르다의 의도와 다르게 많은 조문객들이 마리아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마리아가 나사로의 무덤에 곡하러 가는 줄 알고 오해해서 그녀를 따라갔습니다(31). 그들도 같이 무덤에 가서 울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증언에 바탕을 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32-37)
같은 사건을 목격하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어떤 이는 상황을 깊이 이해하려 애쓰며 고통을 함께 느끼려 하지만, 어떤 이는 그저 의심하거나 냉소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같은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한쪽은 눈물을 흘리고, 다른 쪽은 비난의 말을 내뱉는 모습은 인간 내면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 됩니다.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32-37)
예수님은 이미 나사로가 죽은 뒤 나흘째 되는 날에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르다가 처음 맞이했던 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도착하신 사실을 전합니다.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가자, 집에 있던 조문객 유대인들도 그녀를 따라나섰습니다.
(1) 마리아의 눈물(32)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격한 감정으로 울었고, 그녀를 따라온 유대인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32)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말과 태도는 단순한 원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발 앞에 엎드렸다’라는 표현은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오라비의 죽음 앞에서 마리아는 결국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예수님의 비통함(33)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과, 그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 깊이 비통해하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우는 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전개합니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의 눈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슬픔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비통한 마음을 가지신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눈물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마리아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바로 이러한 상황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깊은 비통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눈물(34-35)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는 단순히 나사로의 시신이 묻힌 곳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물음은 후에 예수님의 부활 시, 막달라 마리아가 "누가 내 주님을 옮겨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던 탄식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이처럼 나사로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궁극적인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는 짧지만 강렬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눈물을 흘리신 모습이 세 번 특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9:41, 요한복음 11:35, 히브리서 5:7). 이는 예수님께서 단 세 번만 우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께서 보여주신 감정의 깊이가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누가복음 19장 41-4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는 당신을 통해 평화를 얻을 기회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유대인들의 완고함에 대한 깊은 애통과 연민에서 비롯된 눈물이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주로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죄와 죽음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을 두려워하신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와 더불어, 자신의 연약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순종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사로의 죽음과 그로 인해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모습 앞에서 예수님께서 눈물을 보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 35절의 이 눈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 눈물은 단지 죽음에 대한 슬픔을 넘어, 인류의 죄와 사망이 초래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치유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며 함께 울어주시는 진정한 사랑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이 눈물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뿐만 아니라 완전한 인성, 곧 우리를 향한 그분의 지극한 연민과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4) 유대인들의 반응(36-37)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깊이 슬퍼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때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아파하는 이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진정한 공감과 사랑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있지만, 우리는 종종 성급하게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처럼, 진심으로 공감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그 마음 자체가 상대에게는 크나큰 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물 앞에서 유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눈물을 통해 그분의 지극한 사랑과 연민을 깊이 느끼고 감탄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적대하던 이들까지도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알아본 것입니다. 눈물은 비록 인간적인 감정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깊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마음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먼저 공감하고 깊이 이해하려는 사랑이셨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을 보고도 모든 사람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또 다른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의심과 판단의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했던 이가 나사로는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느냐"며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만약에 좀 더 빨리 오셨다면…’, ‘만약에 좀 더 많은 것을 하셨더라면…’ 하는 ‘만약에’라는 회의의 덫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때가 많습니다. 타인의 행동을 단순히 평가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상황과 진정한 마음을 살피며 이해하려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비록 그때는 의심했지만, 결국 이 유대인들은 나사로의 놀라운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온 마음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슬픔에 공감하시면서도 결국은 생명을 회복시키는 전능한 권능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때때로 이해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이 말씀은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더 큰 섭리가 있음을 신뢰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상황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자세임을 가슴 깊이 새겨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시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그분의 선언은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소망을 약속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시야를 넘어, 모든 것을 선하게 이끄시는 주님의 크신 계획을 온전히 신뢰합시다. 예수님의 따뜻한 공감과 전능하신 능력 안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사랑과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며, 그분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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