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8-05)

아브라함보다 크신 예수님
요한복음 8장 42-59절
요한복음 8장 42-59절을 누락된 내용을 뒤늦게 확인하여 추가합니다.
아이들이 출생하여 산부인과에 가서 보면, 신생아들을 보면서 신기한 것은, 대부분 자기 부모를 꼭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너희 아빠를 닮은 붕어빵이구나!’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모습을 닮습니다. 얼굴도, 행동도, 태도도 심지어는 목소리까지도 닮습니다. 영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를 닮겠습니까?
-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아버지가 살인자이며 거짓의 아비인 마귀라고 직접적으로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나이를 문제 삼으며 조롱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 했고,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 몸을 숨겨 성전을 떠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의 표지(42-47)
우리는 맡겨진 일에 매 순간 충성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잊고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사명을 잊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잘못된 길을 걸어왔구나’하고 후회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 후회하고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유대인들처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42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45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42-47)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분이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면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42-43)
본문은 예수님과 유대인 지도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두 구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한 기원과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를 명확하게 드러내시는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십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는 자연히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신앙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구속 계획에 따라 이 땅에 오신 ‘사자’임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순종과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단순히 지적인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영적 무능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중요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2) 거짓의 아비, 마귀(44-45)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44)라고 지적하시며, 그들의 행위가 마귀의 일과 같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44)라고 묘사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마귀’는 총 세 번 언급되며, 그 배경에는 창세기 2-3장의 뱀의 유혹으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살인 행위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뱀의 거짓말은 아담과 하와를 넘어지게 했으며, 가인의 살인 행위 역시 마귀의 영향으로 여겨집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음에도 유대인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적 뿌리가 마귀에게 있고, 거짓과 살인의 본성을 따르기에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3) 진리의 증언(46-47)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오만함과 불신을 끊임없이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46)고 책망하시며, 그들의 불신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분명히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의 말을 기꺼이 듣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된 믿음이 단순히 혈통이나 외적인 주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의 불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그분께 속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공격과 반박(1)(48-51)
사탄은 복음을 끈질기게 박해하지만, 복음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진리이기에 순교자들은 죽음도 불사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도가 복음을 증거하며 복음과 함께 걸어갈 때 사탄의 공격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48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48-51)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감히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내 아버지’라 부르셨고,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 들려 미쳤거나 영적으로 타락한 사마리아인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시각 차이로 인해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갈등은 지속되었고, 서로를 향한 공격과 반박이 오갔습니다.
(1) 예수님을 향한 비난과 모욕(48)
48절은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의 격렬한 논쟁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는 위에서 났다”(요 8:23)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비난은 두 가지 핵심적인 내용으로 압축됩니다.
첫째, 그들은 “네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과 혼혈된 불결한 존재로 여겨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비난은 예수님이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분을 사회적으로 격하하고 모욕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역적 비난을 넘어, 예수님을 이단이자 율법을 따르지 않는 자로 낙인찍으려는 시도였습니다.
둘째, 그들은 “네가 귀신 들렸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비정상적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귀신 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한다고 선포하자, 그들은 이를 신성 모독으로 여겼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한 권능과 가르침을 하나님의 역사로 보지 않고, 오히려 악한 영에 의해 조종되는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불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러한 모욕적인 비난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비난에 직접적으로 반박하시며 “나는 귀신 들리지 아니하였고,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49)라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답변은 그들의 비난이 근거 없는 모함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들의 불신앙이 곧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무시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2) 아버지를 공경한 예수님(49-50)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모욕적인 공격에 대해 단호하게 해명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귀신 들렸다”라고 주장하며, 그분의 말씀과 사역을 정신이상자의 행위처럼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귀신이 들린 사람이 아니며,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할 뿐이라고 항변하셨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높이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분을 무시하며 조롱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참으로 정상적인 분이 도리어 비정상처럼 보이고, 반대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마치 더 지혜롭고 이성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은 진리와 거짓이 뒤바뀐 세상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세우려 하신 것이 아니라,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시고 참된 영광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난이나 조롱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을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하고, 도리어 세속적 가치에 휘둘리는 이들이 더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분명합니다. 억울한 비난 속에서도 아버지를 공경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길입니다.
(3) 내 말을 지키는 자(51)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51)고 선언하신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 36절과 5장 24절에서 이미 제시된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여기서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표현은 육체적 죽음을 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결코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마치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참된 영생이 주어진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공격과 반박(2)(52-56)
현대인은 눈에 보이는 것과 이성적 판단에만 의지하려 하지만, 참된 지혜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진리를 받아들일 때 얻어집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논쟁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순종할 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전통이나 경험에만 매이면 새로운 진리를 거부하게 되므로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가치는 세상의 만족이 아니라 영원한 차원에서 바라볼 때 참된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보다 크신 분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목적과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52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52-56)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죽음을 면하게 한다는 주장을 귀신 들린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모두 죽었음을 들어 예수님의 주장을 반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날을 보고 기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다시 공경하는 유대인들(52-53)
예수님께서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는 놀라운 선언을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 말씀이 내포한 깊은 영적 의미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 영적인 영역의 차원이 아니라, 오직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물리적이고 문자적인 관점에서만 받아들였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자 신앙의 모범으로 추앙받았던 아브라함과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했던 선지자들조차도 모두 육체적으로 죽음을 맞이했음을 들어, 자신을 따르는 자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이 지나치게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곡해하여 “귀신 들렸다”고까지 맹렬히 비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몇몇 선지자들이 일시적으로 죽은 자를 살린 기적은 있었으나, 누구도 사람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한 적은 없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진실일 리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둠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져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 안에서 얻게 되는 ‘새 생명’과, 이 땅에서 그 생명과 연결되어 살아가며 이후 부활로 영원한 참 생명을 얻게 될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이러한 심오한 영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로 단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은 이미 죽은 아브라함보다, 그리고 선지자들보다 더 크다는 말이냐?”라고 따져 물으며 예수님의 근원적인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호의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한낱 평범한 인간의 범주 안에 가두려는 의도였으며, 그분의 신적 권위와 구원의 사명을 전적으로 거부하려는 적대적인 태도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위대한 존재였기에, 자신을 믿으면 영생을 준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있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었고, 이에 예수님이 과연 누구인지 비난할 준비를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2)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예수님의 변호(54-56)
예수님께서는 험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 세 가지로 명확하게 밝히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 부르는 분의 아들이자 메시아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그분을 알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비할 수 없는 깊은 관계성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지키고 이행하고 계심을 강조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고대하던 메시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아브라함보다 크지 않은 존재로 여기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역을 보고 기뻐했다고 언급하시며,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앞선 존재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답변이었을 것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공격과 반박(3)(57-59)
과거의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우리에게 거울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적인 우월 의식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입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말씀에 순종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57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57-59)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씀에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시며 자신의 영원성과 신성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신성 모독이라 여겨 돌로 치려 했으나, 예수님은 몸을 숨기시고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1) 유대인들의 질문(57)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언급하시며 자신과의 관계를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서른 살 남짓한 젊은 나이셨는데, 아브라함은 예수님보다 약 2천 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즉, 57절은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판단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영원성과 신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연령과 시간의 차이만을 근거로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의 대답(58)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자기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여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해 숨으셨습니다. 얼핏, 예수님의 주장이 황당하게 보이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실제 선재성(先在性)입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했듯이(1:15,30),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이 땅에 온 존재입니다. 둘째, 구약의 증거입니다. 미가 5:2은 베들레헴에서 날 메시아의 기원이 상고이고 영원이라고 말합니다. 이 증거에 의하면,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면 그는 당연히 아브라함보다 먼저부터 있던 존재여야 합니다.
(3) 유대인들의 반응(59)
결국, 문제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미가 5:2을 통해 예수님의 갈릴리 출신을 문제 삼았지만, 메시아의 선재성을 몰랐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말하고 표적을 보였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던 것입니까? 어떤 메시아를 기대하고 어떤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분명한 점은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을 보면, 자신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사고의 틀에 안 맞으면 하나님도 죽일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둠의 영역에 속한 죄인들의 전형적 모습이며, 진리를 통한 참 회개가 결여 된 껍데기 믿음을 가진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믿지 않고 오히려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시각에 매여 아브라함보다 크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은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참된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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