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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0-01)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0장 1-10절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저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갈증과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길’들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다양한 길과 주장들은 때로는 매력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리며,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 길인지 분별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와 지혜, 행복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끝에는 본질적인 죄의 문제와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마치 목자의 음성이 아닌 타인의 음성을 따라갔을 때 양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 하시며,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길로 오는 자는 도둑이고 강도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참 목자는 자신의 양을 부르고 이끌며,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지만 낯선 자의 음성은 듣지 않습니다. 양을 훔치고 멸망시키려는 도둑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문이므로, 이를 통해 들어오는 자는 구원받고 안전하며 풍성한 꼴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게 하는 데 있습니다.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1-2)

우리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리더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양들의 문지기’는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목자에게만 문을 엽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참된 리더는 외형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세워지며, 문지기의 인정을 통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1-2)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는 비유의 시작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양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자를 도둑이나 강도라고 규정하십니다. 반면에 문을 통해 들어가는 자는 양들의 참된 목자라고 설명하시며, 이 목자의 음성을 들은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양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목자이심을 강조합니다.

 

(1)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1)

 

예수님께서는 많은 진리를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비유는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들의 생활 환경에서 접하고 있는 것들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진리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라고 하시는데, 히브리어 ‘아멘’(אָמֵן)에 대한 헬라어 번역입니다. 이 말씀을 사용하시며 말씀의 중요성을 신적 권위를 강조하셨습니다(20:11-29). 이는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양의 문’비유가 나오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양과 양의 문, 도둑과 강조, 양의 목자입니다.

 

본문에서는 ‘양의 우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의 우리를 들어가는데 문을 통하지 않고 담을 넘거나 다른 방식으로 들어가면 도둑이며 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는 예수님 자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양’은 그분을 따르는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절도와 강도’는 양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문을 통하지 않고 들어오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또한, 양의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를, 문은 시편 118편의 ‘의의 문’처럼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시편 118:19-20, 요한복음 10:1-2).

 

특별히 이 맥락에서는 예수님과 대조되는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지도자라고 했지만, 실상은 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고 존경받기를 기뻐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으로 드나들지 않는 목자는 강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 나라의 문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 문으로 드나들며 생명을 얻습니다.

 

(2) 문으로 들어가는 양의 목자(2)

 

‘양’과 ‘목자’(2)는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묘사됩니다(창세기 48:15; 49:24; 시편 23:1; 28:9; 77:20; 78:52; 80:1; 이사야 40:11; 에레미야 23:3; 31:10; 50:19; 에스겔 34:11-31). 이 중에 시편 80:1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목자이시면서, 빛을 비추시는 분으로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9장과 10장을 연결하는 초막절 주제를 동시에 언급하는 구약 본문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그의 초원의 양으로 묘사됩니다(시편 74:1; 78:52; 79:13; 95:7; 100:3; 23:1; 34:31). 특히 에스겔 34장의 종말론적 관점은 양과 목자 비유의 주요한 배경이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마치 제 양을 돌보지 않는 목자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양들의 약함과 상처를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흩어져서, 들짐승의 밥이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에스겔 34:15).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며, 약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겠다고 하십니다. 양들을 구원하며, 좋은 꼴을 먹이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에스겔 34:23-24).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양과 목자’의 비유는 바로 이런 구약 배경 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론적 다윗으로, 이제 새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양들을 구원하시며, 양들에게 골을 먹이시고,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절도’와 ‘강도’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1)? 7장부터 이어지는 초막절 배경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주요 대적자들은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7:32,45; 9:13,40). 그러므로 절도와 강도는 이스라엘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가룟 유다는 ‘도둑’이라 명명되고(12:6), 유대인들은 예수님보다 ‘강도’(레스테스)인 바라바를 선택하였습니다(18:40). 다시 말하면, 절도와 ‘강도’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교훈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을 불러서 인도하는 목자(3-6)

사람이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요.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하는 것은 마치 ‘하늘에 올라가 그리스도를 모셔 오거나’, ‘지옥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불러 올 수 없는’ 것처럼 헛된 일이라고 말해요. 대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인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보여줘요.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3-6)

 

목자가 문으로 들어올 때 문지기가 그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인도하며, 양들은 그의 음성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양들은 낯선 자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하게 됩니다.

 

(1) 양의 이름을 부르는 목자(3)

 

예수님께서 하신 “목자는 그의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표현은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것은 두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그 대상이 목자에게 소유권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목자는 양의 주인이며, 따라서 양은 목자의 보호와 돌봄 안에 거합니다. 목자는 양을 책임지고 지키며, 양은 목자에게 순종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분의 돌보심을 받습니다(이사야 43:1, 요한복음 10:27).

 

둘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와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목자는 단순히 무리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양의 이름을 알고 부르며 개인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성도를 단순히 집단적 존재로 보지 않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요한복음 10:14).

 

(2) 양을 인도하는 목자(4-6)

 

목자는 양을 불러낸 다음에 앞서갑니다. 이에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듣고, 그 목자를 따라 나갑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그의 백성과 소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시내산 언약에 나타났으며, 이스라엘은 그 음성에 순종해야 했습니다(출애굽기 15:26; 19:5).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강조하며(요한복음 5:24; 18:37), 그의 음성을 듣는 자는 부활과 생명을 얻게 됩니다(5:25, 28).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르지만,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안다’(γινώσκω)라는 표현은 앞서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요한복음 9:12, 20-21, 25, 31).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안다’는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며, 양은 목자의 음성을 인식하고 따릅니다(요한복음 10:4-5, 14-15, 27). 목자는 양을 앞서 인도하며, 양은 목자의 친밀한 음성을 따라 나아갑니다.

 

이러한 ‘앞서 가시는 인도자’의 모습은 구약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고(출애굽기 13:21; 민수기 9:17), 성막과 제사장이 메는 법궤를 따라 이동했습니다(민수기 10:17, 33; 여호수아 3:6). 구약의 이러한 장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앞서가는 인도자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길을 내시고, 적을 물리치시며,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새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갈 때,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6). 그들은 본다고 하지만 맹인이었고, 목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강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둘어가야 참 목자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강도입니다. 양들이 그 말을 듣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다른 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7-10)

삶에는 수많은 길과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결정부터 중요한 인생의 결정까지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길이 안전하거나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길이 편안하고 매력적일지라도, 결국 자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길도 많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눈앞의 편리함이나 유행에 따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7-10)

 

예수님은 자신만이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낼 수 있는 생명의 길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1) 양의 문과 절도와 강도(7-8)

 

예수님께서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진실로 진실로”라는 강조 어구로 시작합니다. 이 해석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과 일치시킵니다. 1절의 비유에서 나온 도둑과 강도를 자신보다 먼저 온 자들로 규정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있엇던 유대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죄인으로 규정했던 앞 단락과 연결됩니다. 그들의 말을 예수님의 양들은 듣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전형적인 자기 계시 표현인 ‘나는 …이다’(I am)를 통해 ‘양의 문’(7)과 ‘선한 목자’(11)이신 예수님께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다시 한 번 ‘양의 문’이라고 규정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면,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영원한 양식(꼴)을 얻습니다(9), ‘문’을 통과하는 것과 구원의 관계는 시편 118:19-20을 생각나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모습을 ‘의의 문’(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빛이시며(시편 118:27), 그들을 대적자들로부터 구원하십니다(118: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그에게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며 찬송합니다(118:25). 특히 초막절을 배경으로 하는 본문은 이스라엘의 초막절 성전 행사를 기억나게 합니다. 초막절에 이스라엘은 할렐(시 113-118편)을 부르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리며 기념합니다. 바로 이러한 초막절을 배경으로 요한복음 10장은 ‘문’, ‘생명’, ‘인도’, ‘목자’ 등을 예수님과 연결시킵니다.

 

(2) 양의 문과 꼴(9-10)

 

말씀해주신 대로 첫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소유권과 소속감을 상징한다는 점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양이 목자에게 온전히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목자는 양을 지키고 책임지는 의무를 다하고, 양은 목자에게 순종하며 안전을 누리게 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관계 속에서 진정한 보호와 책임감이 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친밀함과 개별적인 애정을 나타낸다는 점 또한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수많은 양들 중에서 각각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무리를 통솔하는 것을 넘어 개개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세심한 돌봄,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목자의 시선이 전체를 아우르면서도 각 양에게 머무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통찰은 단순히 목자와 양의 관계를 넘어, 어떤 공동체나 조직 내에서 리더와 구성원이 맺어야 할 관계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를 위한 리더의 책임감과 더불어, 각 구성원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리더십이 발휘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자신의 양들을 알고 각각의 이름을 부르시며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참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지만, 낯선 자의 음성을 따르는 자들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참된 자유와 생명은 오직 주님 안에서 얻을 수 있으며,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께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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