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9-03)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맹인
우리는 때때로 오랫동안 지켜온 익숙한 질서와 굳어진 편견 때문에 새로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망설이곤 합니다. 한 개인이 경험하는 진정한 변화는 때로 사회가 구축해 놓은 기존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며, 이로 인해 개인은 주변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불합리한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시력이 아니라, 진정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마음으로 깊이 깨닫는 영적인 통찰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변화된 경험을 바탕으로 진리를 용기 있게 고백하는 태도는 주변에 커다란 영향의 파장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성을 가져오고, 결국 참된 지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데에서 비롯됨을 알려줍니다.
- 예루살렘 주변에는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이 고침을 받아 눈을 뜬 사건에 대해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그 동안 스스로 쌓아온 자리에 위협받게 되는 바리새인들은 소경되었던 사람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작된 일이라고 몰아 붙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을 위협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또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소경되었던 사람은 담대하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으로 시인하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어리석게 추궁하는 바리새인들(24-34)
진정한 신앙은 단순히 지적인 이해나 주입된 이념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깊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 바로 여기에 참된 믿음의 본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뛰어난 지성의 빛을 가졌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눈이 멀었을 때, 우리는 종종 헤아릴 수 없는 어리석음으로 귀결됩니다. 자신들이 만든 율법과 잣대 안에 타인을 가두려 하고, 그 틀 안으로 들어오라 강요하는 큰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24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25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24-34)
예수님의 능력으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눈을 뜨고 마을로 돌아오자, 주민들은 그 놀라운 변화에 경탄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적이 기존 권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던 바리새인들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치유받은 이 맹인을 다시 불러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1) 예수님의 정체성과 질문(24-25)
바리새인들은 치유받은 맹인을 다시 불러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소환하여 그가 선천적 맹인임을 확인했음에도,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치유 받은 맹인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명령하며, 자신들은 이미 예수를 죄인으로 단정했음을 밝힙니다(24). 이에 치유 받은 자는 예수님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은 전에는 눈이 멀었으나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증언합니다(25). 이 대화 속에서는 팽팽한 신경전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리새인들의 거만한 태도와 압박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진실을 요구하는 듯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명령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해석에 부합하는 대답을 종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도구로 삼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더 나아가, 아직 심문이 진행 중임에도 예수님을 함부로 죄인으로 단정 짓는 심각한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이는 그들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던 사안이었으며, 심지어 니고데모가 율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는 태도였습니다(요한복음 7:51). 모세는 재판관이 쌍방 간에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가르쳤지만(신명기 1:16), 그들은 자신들의 학식과 위치를 앞세워 치유받은 자에게 결론을 강요하며, 스스로 진짜 죄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둘째, 고침 받은 맹인의 놀라운 당당함입니다.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심문을 받는 위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여기는 종교 지도자들의 판단을 명백히 거부하며,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만을 담대하게 증언했습니다.
(2) 예수님의 일과 기원에 관련한 대화(26-34)
이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죄인 됨을 추궁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사실과 그분의 기원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논쟁을 이어갑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고,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재차 묻자(26), 치유받은 자는 이미 말했는데 왜 자꾸 묻느냐며, 혹시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냐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응수합니다(27). 이 말에 흥분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제자임을 외치며 그를 욕하고(28), 모세의 기원은 알지만 예수님의 기원은 알 수 없으므로 그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29).
이에 치유받은 자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자의 기원을 모르느냐고 반문하며,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시는데 맹인의 눈을 고친 이를 어찌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박 불가능한 논리를 펼칩니다(30). 이성적인 논리로는 더 이상 그를 압도할 수 없게 되자, 바리새인들은 결국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려 하느냐?”며 그 사람을 쫓아내기에 이릅니다(34).
이 장면에서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순되고 빈약한 논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원을 알 수 없음을 비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차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증언하신 바 있습니다(요한복음 8:14). 또한, 그들의 주장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자가 메시아”라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이전 발언과도 상충되는 지점이 있어, 결국 메시아에 대한 온전치 않은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요한복음 7:27). 자신들이 모세의 제자라고 자부하면서도, 기적을 행한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비난했던 걸인보다도 못했으며, 맹인이 눈을 떴다는 명백한 사실과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는 논리 앞에서 그들은 아무런 답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이미 죄와 그의 맹인됨이 연관된 것이 아님을 선포하시고 치유를 통해 확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치유받은 자를 죄 가운데 난 자로 매도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결국 이길 논리가 없자 그들은 윽박지르고 추방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무력함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치유받은 맹인의 태도는 앞부분과 마찬가지로 당당하지만, 훨씬 더 여유롭고 지혜로웠습니다. “혹시 그의 제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죠?”라는 질문이나 “왜 모르지?”라는 반문은 바리새인들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논리적 허점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분이 죄인일리 없다는 그의 반박 불가의 논리는 바리새인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지만, 그는 확실한 증거와 합리적인 주장으로 일관했습니다. 마치 법정에서 논쟁하는 듯한 이 대화 속에서 배심원들이 있었다면 분명히 치유받은 자의 손을 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결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행하기 위해 보내진 선지자이자 메시아임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고침받은 맹인이 쫓겨난 이후 사건(35-41)
어떤 분이 “세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가 이렇게도 많은데, 왜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볼 영적인 눈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입니다. 눈을 뜬 소경은 자신이 분명히 보게 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향해 담대히 변호하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35-41)
바리새인들은 끝내 예수님을 두둔하던 맹인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직접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영안이 열리기 시작한 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인자’, 곧 메시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맹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했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여긴 바리새인들은 끝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영적인 맹인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1) 예수님과 고침받은 맹인의 조우(35-38)
고침받은 맹인이 바리새인들에게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직접 그를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는 “주여, 그분이 누구이시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36).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니라” 하시며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며 경배했습니다(38). 이것은 맹인 치유 사건의 감동적인 절정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엿볼 수 있습니다. 맹인이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고치신 것은 긍휼 때문이었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핍박당하고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직접 찾아가신 것도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위로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시어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를 통해 관점의 변화를 경험했지만, 아직 믿음을 고백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눈을 뜬 이후에도 예수님을 다시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 주심으로써, 그는 비로소 신앙고백과 경배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또한 그 맹인의 반응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당당히 예수님의 편에 섰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후 믿음의 고백과 경배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의 은혜 때문만이 아니라, 삶의 관점이 변화되고 회개가 일어나며, 그 변화가 예수에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후의 삶은, 38년 된 병자를 고침받은 경우와는 달리, 더욱 신실하고 지속적인 충성으로 예수님께 헌신하는 삶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2)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대화(39-41)
고침받은 맹인의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렇게 밝히십니다. “내가 심판하러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39).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곧바로 반문합니다. “우리가 맹인인가?”(40).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맹인이었다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대화는 상징과 역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심판 사역을 직접 언급하신 것은 여기서 처음입니다(비교: 5:22, 27, 30 — 미래의 심판). 이 말씀은,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이미 심판 아래 있는 세상에 진리를 드러내시고 계시며, 그를 믿으면 빛으로 옮겨지고(요한복음 12:46) 거절하면 어둠과 함께 멸망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예수님은 멸망의 길에 서 있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비추는 이정표이십니다(요한복음 3:19-21).
문제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빛을 본다고 착각하는 자는 참 빛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으로 남아 결국 망하게 됩니다(고린도후서 4:4). 그러나 자신이 어둠 가운데 있음을 자각하고 빛이신 예수께로 나아오는 자는 눈을 뜨게 됩니다(요한복음 1:12, 12:36). 고침받은 맹인은 육체적 눈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열려 참 빛을 보게 되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끝내 영적인 눈을 뜨기를 거부했기에 어둠 속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41).
이처럼 본문은,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요한복음 1:9)과 그 빛을 받아들이는 자, 거절하는 자 사이에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을 보여 줍니다. 이는 요한복음 1장 9-13절에서 말한 말씀의 실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영적 눈을 뜬 사람과 영적 맹인으로 남은 사람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눈 뜬 사람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성장하여 결국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진리로부터 멀어집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은 단순히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데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진정한 영적 시각을 가질 때만 우리는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 안에서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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