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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8-04)


진리로서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8장 31-41절


 

자신의 내면을 용감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를 얽매는 낡은 사고방식, 잘못된 습관, 한정된 생각을 직면하는 첫걸음입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족쇄들을 솔직하게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힘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내면의 성장은 곧 영혼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고 넓고 포용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자유를 경험합니다. 이는 외부의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안과 강인함을 선사합니다. 결국, 진정한 자유는 우리 안에서 발견되며, 끊임없는 자기 발견과 성장을 통해 더욱 깊어집니다.

 

 

  •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종이 된 적이 없다며 반발했고,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혈통이 아닌,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구절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과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자유(31-38)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려면 당신의 마음에 복잡한 삶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마음을 거룩함으로 청소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단순하게 만들 때,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선택의 자유 따위로 자유롭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의 거대한 그물망과 죄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31-38)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사람이 참 제자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참 제자는 “내 말에 거한다”라는 전재(前載)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은 사람들,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자유케 하는 진리(31-32)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참된 제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됨의 핵심이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 속에서의 지속적인 실천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이 정적인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따르고 순종하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특정 순간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마다 그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사회적, 정치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없었지만, 예수님은 더 근본적인 자유, 즉 죄로부터의 영적인 자유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노예의 신분일지라도 영적으로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이 자유는 오직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영적인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온전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 덕분입니다.

 

(2)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33-34)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언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33)라고 반문하며 자신들의 영적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자부심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에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영적으로 노예 상태에 빠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죄의 무서운 실체를 아직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4)고 단언하십니다. 여기서 ‘죄’ 앞에 관사가 붙은 것은 죄를 단순한 행위를 넘어선 인격적인 세력으로 보시는 증거입니다. 이는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일지라도, 죄를 짓는 순간 우리는 죄의 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죄의 종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 속박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속박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를 주실 수 있는 주인, 곧 아들(예수님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들을 믿고 그분께 순종하는 제자만이 죄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참된 자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아들의 자유와 죄의 종(35-36)

 

예수님은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를 비유로 드셨습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35)라는 말씀은,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이 결국 집에서 쫓겨났지만, 자유로운 여인에게서 난 아들 이삭은 상속을 받아 영원히 아버지의 집에 머물렀던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죄의 종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집(가정)에 영원히 머물 수 없지만, 아들로서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사람은 영원한 거처를 얻는다는 영적 진리를 보여줍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36)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직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권면합니다. 하지만 이 진리를 듣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의 종이 아니라고 여기며 분노하곤 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자신이 죄의 속박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의 자손의 자격(37-38)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인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 나아가 그들에게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혈통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단순히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일 뿐, 영적으로는 그분의 믿음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선한 눈’, ‘겸허한 영혼’, ‘겸손한 마음’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행동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자손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 한 그들의 모습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의 행위와 그들의 행위(39-41)

말로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삶의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도 그분의 뜻과는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면, 우리의 말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선택과 실천을 통해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따르는 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이 명확해지며, 그분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집니다.

 

39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39-41)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행동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분을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행위가 다르다는 것은 그들의 영적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아니며, 그들이 믿음의 자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1) 아브라함의 자손(39)

 

유대인들은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39a)이라며 혈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주장을 단호하게 반박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39b)이라고 말씀하시며,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행위로 증명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약속까지도 믿었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하고,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아브라함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죽이려 한 유대인들의 모습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지 못했음을 증명합니다.

 

(2) 진리를 죽이려는 사람들(40)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증거로 그들의 행위를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진리를 그들에게 전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강조하시며,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분명한 증거와 진리의 말씀을 보고도 이를 거부하고 그분을 해치려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일지라도,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3) 아브라함 자손의 고백(41)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님을 확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유대인들이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아브라함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다른 ‘아비’의 자식임을 암시하셨습니다. 이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처럼 그들이 영적으로는 음란하고 불법적인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적법한 자손이 아니라, 영적으로 사생자와 같다는 것을 지적하는 강력한 비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난에 유대인들은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다”라고 반박하며 자신들이 불법적인 후손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유일한 아버지가 하나님이심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예수님과의 감정적 대립을 극에 달하게 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주장이 옳다면, 유일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그분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믿지도 않으면서 속으로는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처럼 행동과 신념이 완전히 모순되는 그들의 모습은 맹목적인 종교적 광신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자유를 주기 위해 구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 참 자유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죄악의 종으로 살았지만, 예수님의 전하신 복음을 받아들려 죄에서 자유 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매여 살 때 가장 철저한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종이 죄의 종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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