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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8-02)

 


생명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8장 12-20절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근원적인 힘을 지닙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전등 스위치를 켜는 순간 캄캄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밝아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빛의 존재 앞에서 즉각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께 온전히 나아갈 때, 우리 안에 자리했던 모든 죄와 절망의 어둠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생명의 빛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선포하시며, 그분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자기 증언을 불신하며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고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하시기에 그 증언이 참되며,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아버지를 아는 것임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과 그분의 말씀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이 말씀을 선포하셨음에도 잡히지 않으신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 빛이신 예수님(12)

웬만한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둠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세상에 어둠을 가져왔고, 모든 인간을 그 속에 머물도록 몰아넣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돌아보면 어두운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억압 속에 신음하는 이들, 마음의 평강이나 기쁨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 곳곳에는 다양한 모습의 어둠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2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의 한 선포가 아니라,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희망의 메시지요, 동시에 우리 삶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이 말씀인,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위대한 정체성 선언이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예수님께서 초막절 기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거행했던 절기로, 특별히 ‘빛’과 ‘물’의 상징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성전에서는 밤마다 거대한 금 촛대가 도시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예식이 있었는데, 이는 광야의 불기둥을 기념하고 메시아 시대를 소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빛의 축제’의 한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야말로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참된 빛, 온 세상을 비출 메시아임을 권위 있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칭하신 것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7가지 “나는 ~이다”(“I AM”) 선언 중 하나로,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원자이심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방향을 제시하며, 존재를 드러내고, 생명을 공급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죄와 무지, 사망과 혼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가 되시어 우리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시고, 우리의 죄를 드러내 회개로 이끌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세상’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빛이 특정 민족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진리임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존재를 인지하거나 머리로만 믿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을 온전히 예수님께로 향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따름’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어둠’에 매이지 않게 됩니다. 성경에서 ‘어둠’은 죄, 무지, 사망, 악, 절망, 혼돈을 상징하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이러한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영적인 사망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바로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빛’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부여하는 참된 빛을 의미합니다. 이 빛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며, 삶에 진정한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깨달음이나 감각이 아닌, 얻고 소유하게 되는 실제적인 축복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는 죄와 사망의 어둠에서 벗어나 참된 삶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빛이심을 선포하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어둠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을 얻게 될 것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빛이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빛되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참된 생명의 빛 가운데 거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증언의 참된 근거(13-18)

갑자기 어두움에 들어가면 눈앞이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적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둠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기에 죄 가운데서도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 작은 손전등 불빛만 비추어도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을 때, 당황하고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3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1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16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18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13-18)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대화를 깊이 나눕니다. 주님은 어두움 속에 맺어서 방황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들을 공급해 주셨고, 바른 길을 주시고 삶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1) 육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는 오해(13-14)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 말씀하시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13)라고 질문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3년 동안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들을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듣고 받아 들였다면,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드렸을 것입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의 논리는 당시 유대 율법의 원칙에 근거합니다. 신명기 17장 6절이나 19장 15절에 따르면, 어떤 사실을 증언할 때는 두세 증인의 증언이 있어야만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한 명의 사람으로만 보았기에, 예수님 홀로 자신을 증언하는 것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육적인 시선’과 ‘인간적인 판단 기준’으로만 재단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14). 예수님의 이 답변은 당신의 증언이 단순한 인간의 자기 주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분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명확히 아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곧 그분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분의 목적 또한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땅에 속한 시선으로 예수님을 보았으나,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분이셨기에 그분의 증언은 차원이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종종 우리의 작은 경험과 제한된 지식으로 하나님의 일이나 말씀의 깊이를 다 이해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육적인 시선을 넘어 영적인 분별력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2) 참된 판단의 기준(15-16)

 

이어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판단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십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15).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즉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시고, 특별한 가문이나 교육 배경을 가지지 않았다는 표면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 나아가 당신의 판단이 어떻게 참된 것인지 설명하십니다.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은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16).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에, 이 자리에서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분이 판단하신다면, 그 판단은 절대적으로 참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홀로 계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분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되어 하시는 예수님의 판단은 완전하고 참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증언의 진정성을 더욱 확고히 뒷받침하는 근거가 됩니다.

 

(3) 두 증인의 확실한 증언(17-18)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증언이 유효함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십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17).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리도 중요하게 여기던 율법, 바로 그 율법에 기록된 원칙을 인용하십니다. 두 사람의 증언은 참되다는 원칙은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진리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를 이 두 증인으로 제시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증언하시느니라 하시니”(18). 예수님 자신이 첫째 증인이고, 그분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분의 모든 행적을 통해 끊임없이 증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둘째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언은 한 인간의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의 신성(神性)에 대한 선언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완전한 진리였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은 하나님의 권위와 증언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유일한 빛인 예수 그리스도(19-20)

우리는 종종 피상적인 정보나 선입견에 갇혀 사람과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곤 합니다. 진정한 이해와 깊이 있는 관계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우리 삶의 모든 일에는 각기 가장 적절한 흐름과 최적의 시기가 존재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급해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더 큰 계획과 완벽한 타이밍을 인내하며 신뢰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안목을 선물하며 삶의 다양한 국면 속에서 평온을 찾게 할 것입니다.

 

19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19-20)

 

이 대화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선언(12)과, 이어지는 예수님의 자기 증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박(13-18) 이후에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그들의 오해와 무지 속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당신의 정체성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밝히시는 순간입니다.

 

(1) 참된 지식의 부재(19)

 

예수님께서 당신의 증언이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참되다고 말씀하시자(16), 바리새인들은 비아냥거리듯이 묻습니다.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19). 이 질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육적인 관점으로만 이해하려는 그들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혈통적인 아버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적인 차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단호하게 답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9b).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영적인 맹목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진리를 아는 참된 길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참된 지식,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히 교리적인 이해나 율법적인 준수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골로새서 1:15, 요한복음 14:9).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품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네 아버지가 어디 계시냐?”(19)고 반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알았을 것인데, 하나님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어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의지하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라고 하면 비웃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빛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면 조롱할 것입니다. 그렇게 나약한 말하는 성도들을 맘대로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때가 되지 못하니깐 잡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권고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16) 가장 하나님을 잘 아는 길은 바로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고 믿은 사람만이 생명의 빛을 얻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아는 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주권적인 때(20)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도전적인 말씀을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20) 하셨습니다. 헌금함은 성전 뜰, 즉 여인들의 뜰에 위치한 공개적인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공개적으로 선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개적인 장소에서 바리새인들의 권위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당신의 신성을 주장하신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2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때(hour)’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계획이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밝히시면서 어둠 속 인류에게 빛을 비추는 분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육적인 시선으로 판단했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참된 지식과 영적 통찰이 오직 빛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인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적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와 무지 속에 방황하는 우리에게 참된 길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유일하고 완전한 ‘세상의 빛’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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