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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7-03)


분열된 반응 속 예수님의 정체

요한복음 7장 25-36절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다수결은 많은 의견을 수렴하는 중요한 의사결정 방식입니다. 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그러나 때로는 군중심리나 이기적인 생각에 의해 명백한 진리가 가려지기도 합니다. 개인의 욕심에 사로잡히면 공동체 전체의 바람직한 방향을 놓치기 쉽습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자기 뜻에 갇히면 하나님의 참된 의지를 분별하기 어려워집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말씀을 오해하고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예루살렘에서 펼쳐진 예수님의 활동은 그분의 정체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사람들과의 활발한 논쟁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상반된 반응들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나타났습니다. 일부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예수님의 존재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여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위협감이 커질수록 예수님을 향한 공격 또한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호의적인 태도를 나타내며 그분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영원한 생명 앞의 불신앙(25-27)

우리가 마주하는 심오한 진리나 근본적인 생명력 앞에서,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나 기존의 익숙함에 갇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는 더 깊은 이해나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성장과 잠재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길을 발견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하며, 그것이 이끄는 변화를 수용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 줍니다.

 

25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25-27)

 

초막절 명절 중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공개적으로 나타나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적대적인 분위기는 명절을 위해 모인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1) 예수님에 대한 의문(25-26)

 

초막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성지 순례객이 아닌) (11-12), 이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 공개적으로 오셔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14), 이들은 곧바로 그분을 알아보고 종교 지도자들이 수색하고 있는 인물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처럼 공공연하게 활동하시는데도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지 않자, 예루살렘 주민들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며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26). 이러한 상황을 목격하던 사람들은 기존의 당국자들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25).

 

(2) 그리스도의 기원(27)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분의 ‘세상적 기원’을 상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모가 요셉과 마리아이며, 그가 어린 시절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1:45-46, 6:42),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는 당시 그들이 굳게 믿고 있던 전승, 즉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그가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27). 이 전승은 그리스도의 기원이 신비에 싸여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예언(미가 5:2; 마태복음 2:5-6; 요한복음 7:42)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유대 전승은 그리스도가 갑자기 나타날 것이며, 그때까지는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입견은 종종 진리로 오해되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협한 전승에 갇혀, 눈앞에 계신 참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28-31)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완벽한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집니다. 우리는 기도의 즉각적인 응답을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를 따라 역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달리 당신의 시간과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을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올바로 분별하는 통찰력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또한, 그 성숙한 때가 오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28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0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28-31)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때를 기다려 자신의 신성과 사명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오해와 논란 속에서도 당신의 정체와 권위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포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권위 있는 말씀 앞에서 그분의 기원을 오해했던 예루살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전에는 없었던 놀라운 긍정적 반응과 수용이 나타났고, 많은 이들이 마음을 열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1)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28-29)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모습은 마치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듯한 엄숙한 권위를 드러냅니다. 본문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쳐 이르시되”(28)라고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선언했던 모습을 의도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여기서 ‘외쳐’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문맥상 없어도 의미 전달에 지장이 없지만, 예수님의 메시지가 가진 특별한 중요성과 예언자적인 권위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28)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시 유대인들이 그분을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 갈릴리 출신이라는 지상적 기원을 알고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5-46; 6:42). 그러나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알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28-29)는 말씀에 담긴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근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적인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분을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이러한 온전한 이해를 통해서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 계획을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음(30)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지만, 그 누구도 그분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30)라고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단순히 인간의 계획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때, 곧 유월절에 성취되어야 할 중요한 구속 사역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인간의 예측이나 의도를 초월하여 주권적으로 섭리하신다는 깊은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각이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조정하거나 서두르려는 교만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완벽한 때를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겸손히 순종하며 기다리는 것임을 이 본문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일깨워 줍니다.

 

(3) 예수님께서 행한 표적(31)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은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소문으로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놀라운 표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31)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기적을 당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연결 지었습니다. 즉, 메시아가 오시면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할 것이라는 메시아 대망 사상이 그들의 믿음의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라는 점에서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한계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만 믿으려는 태도를 비판하시며(요한복음 4:48),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20:29). 단지 기적 체험이나 신비한 경험을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인격적인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 어렵습니다. 신비한 경험에만 기초한 신앙은 지속적으로 더 자극적인 표적만을 추구하게 되면서,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영적인 갈증에 늘 시달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32-36)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세상의 어떠한 일도 결코 일어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그분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의한 일에 동참하려 할지라도, 성도들은 그러한 부정한 잔치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모든 상황은 역전되어 의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당신의 완전한 뜻대로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주변 상황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여 찾아야 합니다.

 

32예수께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3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32-36)

 

예수님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동시에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반대자들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깨닫고, 그분을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 믿는 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기회를 잡은 것이며, 진리와 생명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 성전 경비대의 파송(32)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문이 퍼지자(7:12, 25-26), 바리새인들은 이를 먼저 인지하고 대제사장들과 함께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성전 경비병들을 파송했습니다(32). 평소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지니며 대립하던 두 세력, 즉 주로 사두개인들로 구성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체포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철저히 연합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대제사장들보다 일반 군중의 동향과 반응을 더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당시 유대교의 전통적인 대제사장은 한 명이었으나, 로마 제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대제사장이 임의로 임명되면서 여러 명의 대제사장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제사장들은 유대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성전 구역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성전 경비병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요한복음 7:32; 18:3), 이러한 조직적 역량을 예수님 체포에 활용한 것입니다.

 

(2) 보내신 이에게 돌아가는 예수(33-34)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지하시고, 성전 경비병들이 자신을 체포하러 온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32),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33)고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체포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자신을 아무리 찾아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34, 36)고 단호하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다는 그분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해 부족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기존의 관념에 갇혀 겸손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참된 진리를 들을 수도 없고 올바로 알 수도 없다는 영적인 교훈을 이 본문은 우리에게 깊이 일깨워 줍니다.

 

(3) 유대인들의 오해(35-36)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고 나를 찾으려고 해도 만나지 못할 것”(34, 36)이라고 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실 유일한 장소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35)을 상상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그 장소에서 하실 일이라곤 헬라인들을 가르치는 것이리라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의 추측은 예수님의 복음이 단순히 특정 민족이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온 인류에게 전파될 것임을 역설적으로 암시하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36)는 예수님의 말씀이 34절에 이어 반복되는 것은 이 중요한 진리를 강조하기 위한 본문의 문학적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본질적인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이미 잘못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고, 자신들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들은 예수님의 ‘땅의 기원’만을 중요시하며 그분의 부모와 고향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요한복음 6:42). 따라서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셨다는 신적인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인간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하나님의 진리를 어떻게 가로막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기원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명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존 생각에 갇혀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인간의 뜻이나 방해를 넘어 하나님의 완벽한 때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뜻을 겸손히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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