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8-01)

용서와 회복으로 인도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
성도는 타인을 쉽게 단죄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율법적 잣대로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 따뜻한 이해와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실수한 이에게는 용서의 손길을 내밀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포용은 개인의 온전한 변화를 돕고, 공동체에 치유와 회복을 가져옵니다. 궁극적으로 편견을 내려놓고 자비로운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임을 깨닫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치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시며 침묵하시다가, 그들이 계속 다그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양심에 가책을 받은 자들은 하나씩 자리를 떠났고, 결국 여인과 예수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정죄 대신 용서와 새 삶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시험을 당하시는 예수님(53-6a)
사람들은 종종 타인의 잘못을 드러내고 단죄함으로써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마음의 교만과 왜곡된 정의를 낳습니다. 법이나 규범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타인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을 때 사랑과 공의는 사라집니다. 문제의 본질보다 남을 몰아세우려는 의도가 앞서면 진정한 정의는 왜곡되고, 관계는 파괴됩니다. 현대인은 타인을 함정에 빠뜨리기보다, 스스로의 동기를 성찰하며 정의와 자비가 조화를 이루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1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53-6a)
초막절 명절을 마치고 평상적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예루살렘에 남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나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 사역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편안한 시간이 아니라 항상 위험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1) 다시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7:53-8:2)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초막절 논쟁이 끝난 후(요한복음 7장)의 상황입니다. 초막절은 끝났고, 유월절과 달리 초막절이 끝난 뒤에는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에 남아 습관처럼 감람산으로 향하셨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8:1). 이 발걸음의 깊은 의미는 누가복음 22장 39-40절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이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을 찾으신 것이 단순한 피난이 아닌, 기도를 통한 영적 준비와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시거나 쉬신 후, 매우 이른 시간부터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이미 가르치실 준비가 되어 계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다시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2). 비록 당신을 해하려는 이들이 성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굴하지 않고 성전의 뜰에 앉아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2). ‘앉아서 가르치는 것’은 권위 있는 교사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모여들었고,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존경심을 보여줍니다.
이 평화로운 일상의 장면은 곧 이어질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교활한 시험과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공격하며, 교묘한 함정을 파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악한 영은 쉬지 않습니다.
(2) 간음한 여인을 통해 시험당하시는 예수님(3-6a)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였습니다(2). 갑작스러운 소란과 함께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거의 던져지듯 끌려 나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은 여인을 데려온 것이었습니다(3). 본문에서 서기관들이 특히 강조되는 이유는, 율법에 정통한 그들이 율법을 이용해 예수님을 올무에 걸어 정죄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4-5).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그녀를 붙잡아 온 사실은, 이 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의도적 음모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여인은 불쌍한 한 영혼이 아니라,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자는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신명기 22:23-24). 역사적으로 실제 돌로 쳐 죽인 사례는 많지 않았으나, 율법의 명령 자체는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굳이 예수님께 나아와 물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지도자도 심판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 난데없이 죄인을 데리고 와서 처분을 묻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속셈은 달랐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돌로 치라 명하신다면, 그것은 곧 사형 선고가 되며, 당시 로마 법은 피지배 민족이 스스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습니다(요한복음 18:31). 특히 간음죄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여인을 놓아주라고 말씀하시면, 그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무시하는 자로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6a). 이는 과거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세금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마태복음 22:15-22; 마가복음 12:14-15; 누가복음 20:20-26).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예수님(6b-9)
모든 문제를 직접적인 대결이나 논쟁으로 해결하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즉각적인 반응을 멈추고 ‘침묵’과 깊은 ‘숙고’를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던지는 ‘단 한마디의 본질적인 질문’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풀어내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대결이 아닌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지혜로운 접근법입니다.
6b…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6b-9)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노리며 교묘한 함정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지나친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고소하려던 그 함정에 자신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1) 자비를 보인 예수님(6b-8)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지혜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단적인 예는 바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의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주의적 잣대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교활한 함정을 파 놓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8:4-5). 이 질문은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거나, 아니면 자비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는 절묘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예수님께서 속절없이 걸려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날카로운 추궁 앞에서 예수님의 첫 반응은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전 바닥에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셨습니다(6). 이 장면은 얼핏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마주치기를 거부하시거나, 자신 앞에 펼쳐진 위선과 악을 눈 뜨고 마주보기가 어려워 잠시 피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이 행동을 예수님께서 난처한 질문에 당황하여 대답을 회피하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욱 거세게 답변을 요구하며 예수님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답변을 주셨습니다. 고개를 드시고는 단 한 마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7). 이 말씀은 고발자들의 심장을 꿰뚫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이 한 마디는 그들이 던진 율법의 돌을 고스란히 그들 자신에게 돌려주면서, 겉으로 드러난 죄뿐 아니라 내면의 숨겨진 죄악까지 조명하는 신적 지혜를 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땅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셨고(8), 그 짧은 침묵 속에서 고발자들은 스스로의 양심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은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의 죄를 끄집어내셨습니다. 그 결과, 양심의 가책을 느낀 고발자들은 나이 든 자들로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씩 모두 떠나가고,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게 되었습니다(9). 다른 이를 향한 맹목적인 정죄는 결국 우리의 죄를 드러내게 만드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땅에 두 번에 걸쳐 무언가를 쓰신 행위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대답을 회피하거나 시간을 벌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성경을 되짚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첫 언약의 돌판을 직접 손가락으로 쓰셔서 주셨습니다(출애굽기 32:16).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율법을 수여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님께서 땅에 글을 쓰신 행위는 자신이 옛 언약을 완성하고 새로운 언약의 계명을 주실 분이심을 보여주는 비유적인 행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에 율법을 기록하셨다면, 이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의 심판 기준을 친히 땅에 기록하심으로써, 곧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질 용서와 사랑의 율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예레미야 31:33-34에서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2) 떠나는 무리(9)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심오한 말씀을 던지신 후, 다시금 몸을 굽혀 땅에 글씨를 쓰고 계셨습니다(7-8). 이 짧지만 강렬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무리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강력한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으며, 마치 자신들의 죄가 백일하에 드러난 듯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많던 무리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예수님과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만이 남게 되었습니다(9).
예수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은, 간음한 여인의 죄를 정죄하기 이전에 각자 자신의 죄를 먼저 돌아보고 스스로를 심판하라는 준엄한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극적인 상황을 통해 무리들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성찰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간음한 여인처럼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야 마땅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깨닫자마자 그저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데 그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리들이 하나둘씩 그 자리를 피한 것은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시험하고 죽이려 했던 그들의 행위는, 사실 그들 자신이 율법을 어기고 영적으로 하나님께 ‘간음한 자’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칠 자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그 죄로 인해 돌에 맞아야 할 자들이라는 역설적인 진실이 그 순간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으로 돌을 던질 자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랑과 용서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유일하고 완전한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긍휼이 여기시는 예수님(10-11)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죄 용서함을 허락하셨으니, 우리는 마땅히 죄책감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그분의 말씀 안에서 사죄의 은총과 진정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성도들은 비록 연약하여 죄를 짓기도 하지만, 마음속 깊이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거룩한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복해서 짓게 되는 죄는 무엇이며, 과연 그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하고 진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10-11)
모두가 떠나가고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11)고 말씀하시며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여인은 이를 통해 참된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자신의 선포(요한복음 3:17; 12:47)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본문의 핵심은 예수님의 죄 용서에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오직 예수님을 고발하고 여인의 죄를 정죄하며 심판하는 데 몰두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용서하시고 나아가 그 여인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이끄시는 데 더 깊은 관심을 두셨습니다(11-12). 이는 율법주의적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과, 율법이 지향하는 진정한 거룩함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즉,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우선순위가 인간의 구원과 거룩한 삶에 있음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나아가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극명하게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며 모세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시기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능을 지니셨습니다. 이처럼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공관복음서에서도 일관되게 증언됩니다(마태복음 9:1-8; 마가복음 2:1-12; 누가복음 5:17-26).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이 죄 사함의 권능(마가복음 2:7)을 예수님께서 행하심으로써, 당신의 신적 권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신적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그리스도이시기에,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사역을 능히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11)고 하시며 그녀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행위가 이를 증명합니다. 다시 말해, 죄 용서 사역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신적 권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부터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체성이 부정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며(요한복음 10:36), 아버지를 온전히 대신하시는 분으로서(9)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본문은 율법을 내세워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정죄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여인을 돌로 쳐 죽일 것을 주장하며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땅에 글씨를 쓰시며 그들의 숨겨진 죄와 위선을 침묵 속에 드러내셨습니다. 이어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던지자, 나이 많은 자로부터 시작하여 모두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예수님은 홀로 남겨진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시며, 정죄 대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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