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8-03)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8장 21-30절
우리는 종종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를 쉽게 전해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이를 ‘우이독경(牛耳讀經)’ 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나 말에게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들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진정 중요한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에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참된 진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전하신 생명의 말씀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인 맹목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장에서부터 계속 초막절 이후에도 내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해 암시하시지만, 유대인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와 기원에 대해 밝히시지만, 그들은 깨닫지도 믿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시면, 유대인들은 오해하고 반박하며, 이어서 예수님의 새로운 선언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범위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이동풍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님(21-24)
창세기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을 기록한다면, 요한복음은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聖肉身) 사건을 다룹니다. 마치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가 되어 수많은 사건으로 나타나는 현장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본질을 발견하도록 이끕니다.
21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21-24)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대화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한 주제입니다.
(1) 십자가 사역에 대한 암시(21)
예수님께서는 이미 유대인들에게 “조금 더 있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며, 자신을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고 “자신이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7:33-34).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21)고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처럼 예수님의 수난을 직접적으로 예고하기보다, ‘간다’는 표현을 통해 당신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오고 간다’는 표현은 요한복음 8장 14절의 맥락과 연결되며 세 가지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빛과 어둠의 영역을 넘어 빛의 근원인 하나님께로 돌아감으로써 당신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그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그분이 가시는 구원의 길에 결코 동참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그리고 셋째, 예수님께서는 이전 7장의 경고에 더하여, “너희는 너희 죄들로 죽을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첨가하셨습니다. 이러한 심오하고 상징적인 표현들로 인해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 가운데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예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삶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허무하게 끝날 뿐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또한 나의 하나님으로 온전히 고백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유대인들의 반응(22)
예수님께서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21)는 심오한 말씀을 선포하시자, 이를 들은 유대인들의 즉각적이고도 오해 가득한 반응이 뒤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선민이며 율법에 해박하다고 자부하는 종교 지도자이자 바리새인들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깊은 영적 맹목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긴 구속적인 의미, 즉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인류 구원의 여정을 파악하기는커녕, 육적인 시각과 자신들의 편견으로 말씀을 왜곡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이 말씀을 오해하며 조롱 섞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가 자결하려는가?”(22) 하고 서로 수군거린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스스로가 이미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사회에서 창세기 9장 5절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극단적인 죄로 간주되었던 자살을 언급하며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자기 희생적인 죽음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비아냥거림은 의도치 않게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실 위대한 희생의 역설을 암시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편견과 오해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 없는지 스스로를 철저히 성찰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에 근거하여 올바른 믿음을 세워가며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3) 예수님의 응답(23-24)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차이를 출생의 기원을 통해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23)고 선언하시며, 당신의 기원이 하늘에 있음을, 반면 유대인들의 기원은 땅에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시며, 유대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 속해 있기에 그가 가는 곳에 그들이 올 수 없음을 설명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믿지 않음이 곧 죄악임을 더욱 직설적으로 선언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고 엄중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죄’(하마르티아)는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으로, 유대인들이 율법 준수를 통해 자신들은 의인이라 여기며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개별적인 모든 죄의 행위와 그 죄 된 상태 전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도 예외 없이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죄인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선포하려 오신 예수님(25-29)
사람들은 부지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신속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십니다.
25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25-2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본질에 관해 여러 차례 말씀하셨지만, 이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존재였기에 사람들은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자연스럽게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 정체성에 대한 유대인들의 질문(25a)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을 기존의 유대교 틀 안에서 파악하려 했던 한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전부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임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내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답변은 단순히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신성과 영원성을 암시하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처음부터’라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이사야 44:6)고 자신을 계시하신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영원하신 하나님,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임을 간접적으로 밝히신 것입니다. 더불어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며, 그들이 진실로 누구에게 질문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질문하셨던 것처럼 세례 요한은 동일한 “너는 누구냐?”(요한복음 1장)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을 메시아나 엘리야, 혹은 선지자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1:23)라고 답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대답은 그의 사명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오직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받은 자로 겸손하게 규정했습니다. 자신을 ‘소리’에 비유함으로써, 그 소리가 가리키는 ‘말씀’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본질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힘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이유가 바로 메시아를 증언하는 데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대답(25b-29)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너는 누구냐?”라는 물었을 때, 자신을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25)라고 밝히셨습니다. 이는 그분이 단순히 인간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전에도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편견으로 인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귀가 없었기에, 수없이 반복된 예수님의 자기 계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탄식했듯, 유대인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듣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나 그리스도로 이해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일관되고 공개적으로 밝히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러한 명확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기에, 각자는 스스로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묻고 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26)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아시고, 자신이 세상에 온 근거가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오해를 아시는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께 들은 대로 증언했듯,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세상에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동일하다고 강조하십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증언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또한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이어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칭하며 ‘십자가에 높이 들려질 것’을 암시하십니다(28). 요한복음에서 ‘들림을 받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야 유대인들이 비로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의적으로 행동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씀하고 행동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들려지는 순간은 계시의 절정이며, 이는 십자가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그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인자가 들림을 받는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며, 그 운명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안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심을 강조하십니다(29). 이는 예수님께서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홀로 두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30)
말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진실되고 진정성 있는 말은 듣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주어, 단순한 동의를 넘어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닫는 열쇠와 같습니다. 우리가 진심을 다해 전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0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30)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은 단순한 자기 계시를 넘어,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권위 있었고, 진리에 기반했으며, 듣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힘은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수님을 단순히 한 인간이나 선지자로 보지 않고, 그분의 진정한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더라”는 표현은 믿음이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한 응답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이자 ‘아버지와 함께 있는 자’라고 밝히셨을 때, 많은 유대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메시아임을 영적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의 일치에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더불어, 그분의 삶 자체가 보여주는 진실함과 능력을 보며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믿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누구를 믿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요, 인자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일관되게 증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 그분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그분의 정체성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귀가 열려야만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올바로 깨달아 진정한 믿음의 고백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전히 깨닫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만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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