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요한복음(06-01)

 


오병이어를 행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6장 1-15절


 

우리나라에도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배고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해도, 미국 원조로 받은 우유가루와 옥수수가루를 학교에서 배급받아 먹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당시 먹을 것이 귀해 노란 옥수수 빵이나 죽을 만들어 먹었는데, 허기진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수업 후 종례 시간에 직접 나누어 주셨고, 아이들은 노란 양은도시락을 깨끗이 씻어 와서 받아 가곤 했습니다. 한 움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선생님께 잘 보이려 했던 그 시절의 간절함은,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렇듯 소중했던 양식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먹거리의 의미와 삶의 본질적인 필요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의 긴 ‘생명의 떡’ 설교가 기록되었습니다. 이 강화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수많은 무리가 디베랴(갈릴리) 바다 건너편, 곧 빈들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지만, 시간이 흘러 군중들의 허기가 깊어지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오천 명이라는 엄청난 무리를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 오병이어 기적은 단순히 육체의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예수님께서 참된 ‘생명의 떡’이시며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드러내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 오병이어의 서막(1-4)

때로 우리의 시야는 눈앞의 외적인 현상이나 즉각적인 결과에만 쉽게 제한되어, 보이는 성공이나 어려움에 일희일비하며 그것이 삶의 전부라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의 여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만을 쫓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선을 넘어, 눈에 보이는 현실 저편에 숨겨진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그분의 뜻을 분별하려는 간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영적 통찰력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을 신뢰하며 삶을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1-4)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고, 많은 무리가 그가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을 보았기에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으며, 그때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1) 갈릴리 호수 건너심(1)

 

본문에는 ‘그 후에’라는 표현으로 다음 기사로 시공간적 배경이 바뀌고 새로운 사건이 전개됩니다(1). 시간적으로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 이후이며, 유월절이 가까운 시점입니다(4). 만일 38년 된 병자를 고친 일이 초막절과 관계있다면, 이 시간은 약 6개월 뒤인 주후 29년 4월인 듯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둔 약 1년 전입니다.

 

(2)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름(2-3)

 

예수님과 제자들이 향한 곳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요한복음에서는 이곳을 특별히 디베랴 바다라고 언급합니다. 이는 갈릴리 바다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익숙한 지명인 디베랴를 사용한 것으로, 저자인 요한이 독자를 배려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장소는 산과 잔디가 많은 구릉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이곳을 빈들(광야)이라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특히 예수께서 산으로 오르신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을 연상시키며 신학적인 의미를 더합니다.

 

이 기적의 배경에는 예수님과 무리, 그리고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많은 무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표적, 특히 병을 고치신 치유 사역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에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의 동기를 보여줍니다. 이 사건에서 빌립과 안드레는 예수님과 함께 기적을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3) 유월절의 배경(4)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오병이어 기적은 유월절이 가까운 시점에 일어났습니다(4). 이는 단순한 시간적 배경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기적을 유월절과 연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제시하시는 중요한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예수님께서 떡을 나누어 주신 사건으로, 이는 성만찬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 이후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선언하시며, 당신의 살을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6:51).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성취될 희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성전 정화 사건 역시 유월절에 일어났는데(요한복음 2:13), 이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했습니다(요한복음 2:22).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유월절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당신이 세상에 주시는 생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오병이어 기적 또한 이러한 맥락 안에서, 예수님의 희생과 그로 인한 영원한 생명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자들을 시험하신 예수님(5-9)

우리는 종종 문제에 사로잡히면 작은 일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해결책을 찾기보다 오히려 수렁에 빠져드는 듯한 절망에 갇히고, 결국 자포자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 곁에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을 가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문제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문제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5-9)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나오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병자들을 위해 치유 사역하다가 보면, 늦은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치유 사역 이후에 이적을 행하셨다고 합니다(막 6:30-44).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장면을 생략하고 질문을 언급합니다.

 

(1) 예수님과 빌립의 대화(5-7)

 

예수님께서는 큰 무리를 바라보시며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광야에서 모세가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민 11:13)라고 하나님께 호소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질문 모두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특별히 지목하신 이유는 단순히 대안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6). 당시 랍비들은 제자들의 이해와 믿음을 점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빌립에게 주어진 이 질문은 단순한 계산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가에 대한 믿음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주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 채, 상황을 현실적 계산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라고 대답했습니다. 빌립은 많은 군중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현실을 강조하면서, 결국 사람들을 해산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한계적인 대답이 오히려 예수님의 기적을 더욱 극대화하는 배경이 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의지하겠느냐?” 우리의 답은 계산이 아니라, 믿음이어야 합니다.

 

(2) 예수님과 안드레의 대화(8-9)

 

예수님께서는 빌립에 이어 안드레와도 대화를 이어가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예수님께 알렸습니다(8).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라고 덧붙이며, 이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안드레의 반응은 빌립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적의 배경을 극대화합니다. 그는 현실적으로 아이가 가진 음식의 양을 확인했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실 능력을 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질문이 현실성 없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안드레는 상식적인 분석과 계산은 했지만, 주님의 전능하심에는 눈을 열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보리떡은 당시 가난한 이들이 먹던 음식이었기에, 한 아이가 가진 미약한 양식은 더욱 초라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는지를 보십니다.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예수님께 맡겨드릴 때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10-15)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썩어 없어질 양식을 향해 달리도록 부추깁니다. 마치 강력한 자석처럼 우리의 시선과 에너지를 끌어당기며, 오직 물질과 정치적 힘, 그리고 세속적인 권력이 전부인 양 속삭입니다. 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썩을 양식’을 더 많이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척도이자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처럼 제시됩니다. 우리는 소위 ‘성공적인 삶’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며,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망각한 채 그 허상만을 좇게 됩니다.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0-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수많은 무리를 먹여야 하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염려할 때,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지극히 적은 양식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작은 양식을 받으시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으며,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놀라운 풍성함이 허락되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은혜를 보여주며, 우리의 작은 헌신과 감사를 통해 주님께서 어떻게 무한한 축복을 허락하시는지 깨닫게 하는 귀한 교훈입니다.

 

(1) 오병이어으로 먹이신 예수님(10-13)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떡을 구하도록 명하신 후, 사람들을 잔디밭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곳에 잔디가 많았다는 사실은, 시기적으로 유월절이 가까워 왔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잔디밭에 앉은 사람들의 수는 약 오천 명에 이르렀습니다(10). 요한복음은 단순히 ‘오천 명’이라고 기록하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남자의 수가 오천 명”이었다고 명시하여(마가복음 6:44; 누가복음 9:14), 요한복음의 기록 또한 여인들과 아이들을 포함할 경우 전체 무리가 대략 15,000명에 달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소년이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시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양식들을 무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시작하셨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부족함 없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11). 모두가 배부르게 먹은 후에, 남은 조각들을 모았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기적을 넘어선 메시아적 풍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오병이어 기적 사건은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될 만큼 초대교회로부터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마다 세부적인 기록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기적의 본질적인 요소들 –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예수님의 감사 기도와 음식을 나누어주심, 약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은 사실, 그리고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찬 남은 음식들 – 은 모든 기록에서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이 오병이어 기적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2)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14-15)

 

오병이어 기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명기 18:15-18에서 약속된 ‘그 선지자’로 인식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모세와 같이 백성을 구원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4:42-44에 기록된 엘리사 선지자의 기적과 유사점을 발견하며, 예수님을 강력한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엘리사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적은 보리떡으로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고도 음식이 남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지도자, 즉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배고픔과 같은 육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분으로만 여긴 것입니다. 이들은 굶주린 배는 채울 수 있었지만, 죽은 영혼을 살릴 메시아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의도를 아신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홀로 산으로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떡을 제공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친히 십자가 위에서 생명의 떡이 되어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은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정치적 욕망을 거절하고 산으로 떠나신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진정한 구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이미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셨습니다. 육체의 허기를 채우시는 분이지만,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유대인처럼 예수님을 통한 육적인 유익만을 구하는 분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으로 맛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영적으로 갈급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만들지 않고 당신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으로 모셔야 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