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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3-01)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요한복음 3장 1-15절


중세 사람들은 수평선 너머가 세상의 끝이자 낭떠러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미지의 바다 너머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두려워하는 바다의 끝을 향해 서쪽으로 항해하여 결국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역사적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비전의 사람입니다. 진정한 비전(vision)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통찰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들은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 본문은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려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즉 '거듭나야' 한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이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비유를 통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진정한 거듭남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렸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만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영적인 거듭남의 필수성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1-2)

거듭나지 않은 이들에게 세상은 짙은 안개와 같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가로막힌 안개로 인해 지극히 가까운 것만을 인지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실은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눈을 가린 영적인 안개를 걷어내주실 때에야 비로소 더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1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1-2)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였으며, 로마가 인정한 최고 종교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1). 세상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랍비’로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성공한 사람이었겠지만, 그는 깊은 영적 갈급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따르고, 사람들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마음의 허전함은 커져만 갔고, 이 영적인 갈증을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시며, 수많은 사람을 치유하시는 놀라운 사역들을 들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가르침 방식은 전통적인 방법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성전 청결 사건 이후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적대시했지만, 니고데모는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고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2). 이는 바쁜 낮 시간을 피해서라기보다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 경우 발생할 위험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가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2). 이는 당시 예수님을 부정하던 다른 유대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존경의 의미인 ‘랍비’로 칭하고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인정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 특히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과 같은 사건들이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역사임을 어렴풋이나마 인정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니고데모는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10:15). 비록 사도들처럼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요한복음에는 그의 헌신적인 모습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요한복음 7:50-51; 19:39). 성도는 니고데모와 같이 순수한 마음과 진리를 향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역사를 믿음으로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신 예수님(3-8)

진정한 영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개선을 넘어선 존재 자체의 깊은 쇄신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인간의 논리와 이성을 초월하는 영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보이지 않는 진리들의 실재와 그 영향력을 신뢰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교훈은 신앙이 지식이나 전통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변화와 초월적인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이 더 높은 가치와 의미를 향해 나아가며 참된 자유와 소망을 발견하도록 돕는 길을 제시합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8)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자,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한 심오한 회답을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역사'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고백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 나라를 본' 사람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인정하는 지각이 오직 영적으로 거듭난 자에게만 허락됨을 분명히 하신 말씀입니다.

 

(1) 영적인 충만함(3-5)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본격적인 대화는 영적 거듭남이라는 심오한 주제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유대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됨을 의미한다고 믿었던 당시의 정통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이 말씀을 육체적인 재탄생으로 이해하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오리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오리이까?”(4)라고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고 대답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정통한 선생이었던 니고데모는 이 말씀이 에스겔서 36장의 예언을 언급하고 있음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 예언은 메시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우시고, 물로 정결케 하시며 새 영을 마음에 부어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부드러워진 마음을 통해 비로소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은 육체적인 출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영적인 재탄생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 거듭남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는 영적 실체를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으며,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영적 세계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음을 명확히 하신 것입니다.

 

(2) 성령의 사역(6-8)

 

예수님께서는 이제 ‘거듭남’의 본질적인 원리를 구체적으로 해명하십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열매가 그 출처에 따라 나타나듯이, 육체적 출생은 단순히 육적인 존재를 낳을 뿐이며, 성령으로 난 자만이 새 생명, 즉 영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명확히 하십니다. 이는 당시 유대교가 중요시했던 훌륭한 인격이나 도덕적 삶 역시 ‘육’의 영역에 머물 뿐, 참된 영적 변화를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수적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원리를 설명하시며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너희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의 신비로운 원리를 바람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헬라어의 ‘프뉴마’와 히브리어의 ‘루아흐’가 ‘바람’과 ‘영(성령)’을 동시에 의미하는 점에 착안하여, 예수님께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어와 그 소리는 들리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는 것 또한 그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성령의 사역이 그 효과와 결과를 통해 분명히 경험되지만, 그 작용의 방식이나 과정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함을 강조하는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거듭남’의 의미(9-15)

아무리 뛰어난 종교적 배경을 지녔다 할지라도,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구원의 길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는 옛 시대에 광야에서 구리 뱀을 바라봄으로써 생명을 얻었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믿는 온전한 신뢰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단순한 지식적 이해나 행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그분을 통한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집중되어야 합니다.

 

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9-15)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며, 하늘의 일과 구원의 길을 증언하신다고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가 들려야 하며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된다고 선언하십니다.

 

(1) 니고데모의 의문 제기(9)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한밤중에 예수님을 먼저 찾아올 만큼 열심과 관심을 가졌으나, 여전히 자신의 관점과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들었기에, 하나님 나라의 참된 실체를 온전히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시선과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변화가 필요함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답변(10-15)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9-10). 당대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율법 지식을 소유했던 바리새인이자 선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당시 바리새인들이 문자로써는 하나님의 말씀을 숙지하였을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비밀 앞에서는 영적 무지가 드러났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는 오직 인간의 이성과 능력만으로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영적 비늘이 벗겨져 시력을 회복했듯이, 거듭남을 통해 우리의 영적 눈에서 비늘과 같은 장벽이 제거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심오한 비밀은 영원히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비늘이 벗겨지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증거들을 믿음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시며,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3-15). 예수님께서는 민수기 21장 6-9절의 사건을 인용하시며 하나님께서 새롭게 베푸실 구원의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어가던 때, 모세가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나무에 높이 달자, 그것을 믿음으로 본 자들은 모두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 또한 그 놋뱀처럼 십자가에 들려 올려질 것이며, 당신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사역을 믿는 사람만이 영적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게 될 것임을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볼 때 생명을 얻었듯이, 우리 또한 믿음으로 놋뱀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단순한 종교적 경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인간의 힘과 이성만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깨달을 수 없으며, 오직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하며, 마음과 삶의 모든 초점을 그분을 통한 구원의 은혜에 맞추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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