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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1-05)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장 43-51절


 

우리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은밀한 곳에 있을 때조차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상황과 마음을 깊이 주목하고 계심을 성찰하게 됩니다. 이에 더하여,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큰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진실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참된 믿음은 인간적인 판단을 넘어 주님의 신적인 부르심에 겸손히 순종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의심과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으며, 이러한 진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깨달음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빌립을 부르시자, 빌립은 곧 나다나엘에게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고 전합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예수님은 그를 보자마자 “간사함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 말씀하시자, 나다나엘은 놀라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며, 앞으로는 그가 더 큰 일, 즉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립을 만나신 예수님(43-44)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때로는 예기치 않은 만남이나 명확한 부름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러한 부름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응답하는 태도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나아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나 기존의 관계가 새로운 기회나 의미 있는 동반자로 이끄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43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43-44)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갈릴리로 가시려다가 빌립을 만나 부르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함께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1) 감격 속에서 시작된 첫 제자도의 여정(43)

 

세례 요한을 따르던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분과 함께하며 경험한 기이한 감격 속에서 새로운 제자도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감격은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요한복음을 기술하게 할 만큼 강력한 동기와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동반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안드레는 예수님과의 하룻밤 만남 후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는 가슴 벅찬 함성으로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하며(41), 이처럼 시작된 제자도의 여정은 또 다른 이들을 불러 모으는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빌립 요한은 ‘이튿날’로 시간적 배경을 이동시키며, 세례 요한의 무대가 사라지고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우연 같지만, 빌립이 십이사도에 속했다는 점에서 이는 예수님의 주권적 계획 안에 있는 필연적인 만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많은 경험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갈릴리로 가시던 예수님은 빌립에게 직접적으로 “나를 좇으라!”고 명령하셨고, 빌립은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께서 그분께 주신 ‘선물’이며, 빌립의 부르심 또한 그렇습니다. 성경은 빌립이 벳세다 출신이며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44), 이는 주목받지 못했던 나사렛과 마찬가지로, 갈릴리의 어촌 마을 출신들이 메시아의 사명을 이을 자들로 부름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의 직업이나 출신 같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 훨씬 더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신 후의 자세한 상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앞서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고 하신 후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 거했다”(39)는 표현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요한복음에서 ‘거하다’는 단어는 단순히 같은 장소에 머무는 것을 넘어, 예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과 같은 친밀한 교제를 의미하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입니다.

 

(2)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전도적 확산(44)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빌립의 즉각적인 반응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으나, 그가 곧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한 것은 빌립이 예수님의 초청에 긍정적으로 응답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장 12-13절에서 언급된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 반응의 또 다른 예시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그분으로부터 놀라운 진리와 능력을 경험했을 것을 암시합니다.

 

나다나엘을 만나신 예수님(45-5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답게 오셨다면, 사람들이 거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똑같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셨겠습니까! 또 사람으로 오시려거든, 로마의 왕가(王家)나 예루살렘의 유력한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오셨다면, 예수님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낮고 처한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온 인류룰 구원할 메시아입니다.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45-51)

 

본문은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연속적인 장면 중 하나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경험하며 메시아를 고백하는 과정,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한 더 큰 계시를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단락은 편견을 넘어선 만남, 예수님의 초월적인 지식, 그리고 예수님 자신을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 계시하는 중요성을 담고 있습니다.

 

(1) 빌립의 메시아 증언(45)

 

예수님께 부름받은 빌립은 곧바로 나다나엘에게 달려가, 자신이 만난 분이 누구인지를 열정적으로 증언합니다. 그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선언하며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이 증언에서 빌립은 예수님을 구약 성경 전체가 오랜 기간 동안 예언하고 기다려왔던 메시아로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신명기 18장 15절, 이사야 11장 1-9절, 에스겔 34장 23-24절 등 구약의 예언들이 신실하게 성취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빌립의 이러한 증언은 메시아의 참됨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성경의 약속과의 부합 여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방식은 예수님의 인성과 세상적인 배경을 나타내는 동시에, 듣는 이의 편견을 자극할 소지를 안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미 5:2)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나사렛이라는 출신지는 빌립의 증언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지점이었던 것입니다.

 

(2) 나다나엘의 편견과 빌립의 초청(46)

 

예수님에 대한 빌립의 증언을 들은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이 질문에는 나사렛이라는 지명에 대한 사회적 무시나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나사렛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변변찮은 마을이었고, 또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미 5:2)과 나사렛이라는 출신지가 모순된다는 신학적 의구심 또한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의 이러한 의문에 대해 빌립은 논쟁하거나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간결하지만 강력한 “와 보라”는 초청으로 응답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요한에게 던지셨던 초청(39)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적인 설득보다는 직접적인 경험과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빌립의 지혜로운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빌립의 태도는 개인적인 만남이 편견을 뛰어넘고 진리에 이르는 중요한 열쇠임을 강조합니다.

 

(3) 예수님의 신적 통찰력과 나다나엘의 고백(47-49)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해 놀라운 말씀을 건네십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47). 여기서 ‘간사함(δόλος/dolos)’이 없다는 표현은 위선이나 거짓이 없는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과거 야곱(이스라엘의 옛 이름)이 속임수를 썼던 것과 대비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지녀야 할 내면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묻자(48),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보았노라”고 답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는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묵상하거나 개인적인 기도를 드리는 은밀하고 경건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빌립조차 알지 못하는 나다나엘의 지극히 사적인 행동과 마음을 예수님께서 꿰뚫어 보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초자연적인 지식, 곧 신적인 통찰력(옴니션스)을 명백히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이 놀라운 경험 앞에서 나다나엘은 망설임 없이 즉시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49). 이는 이성적인 편견과 의구심을 넘어선,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직접 목격하고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한 깊이 있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두 호칭은 모두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적 왕권을 강조하는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4) 더 큰 계시를 약속하시는 인자 예수님(50-51)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초월적인 통찰력을 통해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한 놀라운 약속을 이어가십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경험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의 만남이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이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깨달음을 넘어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능과 영광이 앞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며, 이를 통해 제자들이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하는 예고였습니다.

 

이어지는 약속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가장 중대한 선언이나 절대적인 진리를 말할 때 사용되는 독특한 강조 표현인 ‘진실로 진실로’(Ἀμὴν ἀμὴν/Amen Amen)로 시작됩니다. 이는 말씀의 권위와 진리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며, 듣는 이로 하여금 예수님의 선포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는 깊은 의미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 창세기 28장 12절에 기록된 야곱의 사닥다리 환상을 직접적으로 소환합니다. 야곱의 꿈속에서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내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다시 잇는 진정한 통로이자 하늘의 계시와 은총이 땅으로 내려오고, 인간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유일한 중보자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지칭하는 ‘인자’(Son of Man)라는 칭호는 단순한 인간성을 넘어, 다니엘 7:13-14에서 예언된 하늘의 권세와 심판권을 가진 메시아적 인물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과 가장 가까이 연대하는 분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나다나엘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라는 복수형 사용을 통해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과 이후의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실제로 드러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온전한 교제가 회복될 것을 예고하는 위대한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1장 45-51절은 편견과 의심을 가졌던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신적인 통찰력을 통해 회심하고 메시아를 고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과 땅을 잇는 진정한 중보자 '인자'로 계시하시며, 그분을 통해 더 큰 영광과 계시가 드러날 것을 약속함으로써, 요한복음 전체의 신학적 핵심을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만난 사람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들은 더 나가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에는 다양합니다. 요한은 안드레에게,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빌립은 자기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만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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